(수필) 2016-07-13
< 개초보 >
문하 정영인
서울 딸네집을 갔다오는 길이다. 내 앞에 가는 앞차 뒷유리에는 왕초보도 아닌 ‘개초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옆에 지나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탔다는 차에는 ‘나는 안 되겠어요. 먼저 가세요. 그런데 아기가 타고 있어요’ 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Baby in Car, 병아리 초보, 한번 봐 주세요, 삐약삐약’ 같은 고전적이고 애교스러운 스티커는 한물 갔는가 보다.
이젠 초보 운전자임을 알리는 스티커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어떤 것은 섬뜩하게 변해 가고 있다. 흘기는 눈과 함께 ‘뭘 봐!, 초보인데 어쩌라고?, 당신은 처음부터 잘했수?, 한번 받아보시지 나만 좋지!’ 등으로….
이런 문구들은 세태의 흐름과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 읍소형이 있는가 하면, 저돌형, 막가파형도 점점 늘어만 간다. 차라리 ‘개초보’는 운전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결국 세태가 점점 가파르고 각박해져 가고 여유가 별로 없는 것이리라.
하기야 나도 말마따나 ‘개초보’일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대개 오토지만, 그 당시는 매뉴얼이 보통이었다. 특히 비 오는 날, 언덕길에서 밀리기만 하면 진땀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햇병아리 신세를 벗어날 즈음엔 병아리 초보들을 깔보기 시작한다. 마치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 것처럼 “초보군, 되게 달팽이야!” 하면서 보란 듯이 추월하기 다반사였다. 사실, 초보운전 스티커는 안전운행을 위한 배려를 부탁하는 표시지, 톡톡 튀는 눈꼴 사나운 자극적인 문구가 아니다. ‘싸움 잘함, 초보인데 어쩌라고, …’ 라고 써 붙인 초보운전자를 위해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어찌 생기겠는가?
일본의 경우는 면허를 취득한지 1년은 ‘와카바(새싹), 75세 이상은 모미지(단풍) 마크’를 의무적으로 붙이게 하고 있다. 영국은 연수 차량은 ‘L(Learner. 견습생), 면허 딴 지 1년 안 된 운전자는 ’P(Probationary.임시) 마크‘를 붙이도록 권장한다고 한다.
우리의 꼴불견 초보운전자 스티커는 뒷차 운전자의 성질을 돋구고 욱하게 한다.
하기야 자율주행차 시대에 도달하면 초보운전자 스티커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까지 인공지능에게 맡긴다면 우리는 기계의 노예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규격화된 초보운전자 스티커를 1년 동안 의무적으로 붙이게 하는 것이 좋겠다. 초보 1년까지는 노랑병아리 스티커를, 실버운전자는 등 굽은 새우 스티커를….
초발심(初發心) 자경문(自警文)이라 했다. 아마 초보의 마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운전한다면 일생을 무사고로 운전을 마칠 것 같다.
‘개초보’라고 붙인 앞차는 개초보답지 않게 요리조리 미꾸리 운전을 잘도 빠져 나간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광고판의 시구를 바라보듯, 초보운전자의 번쩍이는 스티커를 보면서 운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스티커 한 장으로 이즈음의 세태를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햇병아리’, ‘뭘 봐!’
당신도 개초보 시절이 당연히 있었다. 좀 봐 주자. 초발심 자경문이다.
차라리 ‘개초보’는 귀엽기나 하지…. 갈수록 말들이 예사로리, 된소리를 거쳐 거센소리로 변해가고 있다. 박세게, 빡세게, 팍세게…. 말이 거칠면 마음도 거칠게 마련이고, 마음이 거칠면 말도 거칠게 나오게 마련이다.
첫댓글 모든게 세월탓인가봐요. 누구나...무엇이든...초보는 있기 마련이니까요.....삼복더위에 건강하시기를~~~ "뒤에서 박는거는 싫어" ㅋ ㅋ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