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와 목적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없다면, 산다는 것 자체가 그저 지루하고 따분해 질뿐이다. 이 세상의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과 쾌락은 그저 한 때 일뿐 곧 허무해지고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이것은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의미와 목적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이다.
무비스님은 말하기를 "화엄경에 보면 '아 신기하고 신기하다'는 표현이 있어요.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고 그만큼 투자를 하고 눈을 뜨고 보니까 투자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하고 똑같은 거예요. 포장은 다르지만 내용물이 똑같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너무 억울한 거죠. 그래서 참 신기하고 신기하다고 말씀하신 거예요."라고 하였다. 무신론자이었던 버트란드 러셀(Bertland Russel)도 말하기를 “인간이 하나님을 가정하지 않는 한, 인간은 그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결코 발견할 수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 우리는 나의 인생을 걸 영원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어디에서 찾아낼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민물의 돌아가는 이치를 연구해야 할 것이고, 인류 역사의 불멸의 경전들과 성현들의 말씀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사회에서 직접 부딪치며 살아가면서 스스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말하기를 “누구도 진리를 그대의 머릿속에 집어 넣어주지 않는다. 진리는 다만 그대 스스로가 그대의 힘으로 찾아 내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율곡 이이 선생은 “뜻을 세우는 것과 밝게 아는 것과 독실하게 행하는 것 모두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지지립 지지명 행지독 개재아이(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라고 그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말한 바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바는 자기 스스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께 이를 수 없다”고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 이런 말을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고 이후의 인류의 역사가 객관적이고 가시적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할 바는 인류 역사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 중 그 누구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진리는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 스스로 폭넓게 공부하고 정진해서 찾아야만 한다. 세상에는 이단(異端)들이 너무도 많이 널려있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어는 누구도 세상 사람은 백 퍼센트 믿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천국에 가보고 지금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모두 지옥에 갔다는 독선에 찬 주장은 객관적인 설득력이 없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영원한 생명과 평안이다. 진리는 서양 뿐 아니라 동양의 불멸의 사상들을 나름 포용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기독교처럼 서양문화 일변도의 해석은 옳지 않다. 인류역사의 모든 인간들은 모두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피조물이고 나름 의미와 목적이 있는 인생들이기 때문이다.
2023.10. 8.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