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유학 오는 꿈의 전원학교’로 손꼽히는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이성초등학교. 2008년 ‘평생교육대상’ 수상, 2009년 교과부 선정 찾아오는 전원학교 사업의 모델로 선정되기도 한 이성초등학교는 그러나 2007년까지만 해도 폐교 대상 학교였다. 60년이 넘은 유서 깊은 학교지만 완주군과 전주시, 김제시 등 3개 시·군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행정사각지역’인데다 전주로 전출하는 주민이 늘어나면서 2007년 3월까지만 해도 전교생 25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성초등교는 어떻게 폐교 위기에서 부활했을까. 이성초의 성공 스토리에서 전원학교의 롤 모델을 찾아봤다. # 지난 6일 오전 10시. 토요일 오전의 완주 이성초등학교 교실에는 아이들과 어른이 어울려 수업을 받고 있었다. 미술교실에도, 바이올린 교실에도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어우러져 그림을 그리고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모습이 생소하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느껴졌다. 폐교 위기서 가고 싶은 학교로… 맞춤형 개별화 학급/ 특기적성 교육
전주의 집 가까운 학교를 포기하고 자녀를 이성초로 전학시킨 이유를 학부모들은 모두 “다양한 특기적성 프로그램과 학년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4학년 이승하 학생의 학부모인 박미림 씨는 “매일 8교시 수업을 하는데도 아이가 전혀 지루해하지 않는다”며 “버스로 통학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도시의 어느 학교보다 좋은 교육 프로그램에 반해 결단을 내린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5학년 공규리 학생의 학부모 이도연 씨도 “사설학원에 보낼 때보다 아이의 외국어실력이 좋아졌다”며 “사교육비 부담 없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돼 너무 좋다”고 만족해했다. 서주상 학교운영위원장은 “이성초의 장점은 학생이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지역민 모두가 학교에 열심이라는 점”이라며 “많은 학부모나 일반인들이 학교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하고 강사로 참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실제로 이성초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8교시 수업(토요일은 4교시)을 받는다. 1학년과 6학년의 수업시간이 같은 것이다. 학생들은 영어와 중국어, 바둑, 독서논술, 컴퓨터, 수영, 태권도, 축구, 연극, 바이올린, 서예, 미술 등 다양한 교과를 정규 교과 시간에, 원하는 학생이 아니라 전교생이 모두 필수로 수업을 받는 것이다.
정규교과시간에 배우는 바둑은 이성초의 필수과목이다. 바둑특기생으로 중학교에 가는 학생이 배출되기도 했다. 김옥형 교무부장은 “국영수가 지루하다고 몇 달하다가 그만두지는 않지 않냐”며 “개인별 맞춤교육으로 꾸준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소질이 계발될 수 있다”고 필수로 진행되는 특기적성교육을 이성초 교육의 장점으로 꼽았다. 김 교무부장은 “이런 교육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기숙형자율학교인 화산중학교에 외국어 특기생으로, 백산중학교에 바둑 특기생으로 입학한 학생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초의 또 다른 장점은 각 학년별로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1학년은 ‘1(사실):3(의견) 일기쓰기’와 ‘책 많이 읽는 학급’ 등으로 학생들의 감성지수를 높이기 위한 교육이 진행되고, 2학년은 ‘경필쓰기’, 3학년은 ‘한자 학습’, 4학년은 ‘동시외우기’, 5학년은 ‘독서논술과 스피치’, 6학년은 ‘논리수학’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맞춤형 교육은 이성초 교사들의 특기를 십분 활용했고, 각 학급‧학생별로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기봉 교장은 “한 학급, 한 학급 이렇게 교사 중심으로 발전되어온 것이 이성교육의 힘”이라며 “교직원들의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성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평생교육의 장…토요 해피스쿨/ 일요 실버 스쿨
이성초는 학생들의 창의력과 탐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평생학습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이 같은 평생체험학습은 서 교장이 도교육청 평생교육과에서 근무한 경력을 최대한 활용해 구성됐다.서 교장은 교사들과 함께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학교예산은 물론 각종 공모대회와 평생교육자대상 등에서 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전문강사 초빙 등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쏟아 부었다. 학교가 지역문화센터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학부모는 물론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주중학교를 열고, 마을회관·복지관을 순회하는 야간학교를 열었다. 토요일에는 학생과 학부모·지역주민을 위해 4시간씩 도예와 한지공예교실 등 12개 강좌를 개설, 토요학교를 운영하고 매주 일요일에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웃음치료교실·아리랑한글교실 등을 열며 지역공동체의 평생교육을 지원했다.
토요학교에서는 학부모, 지역민이 함께 아이들과 특기적성 수업에 참여해 원하는 교육을 받는다. 공예, 그림, 바이올린 교실 등 12개 강좌에 지역민이 참여하고 있다. 학교의 노력에 동문과 지역사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교 60년 이래 총동창회조차 없었던 학교에는 총동창회가 구성됐다. 구용기 총동창회장은 “교장선생님이하 교원들의 열정에 감동 받았다”며 “모교 발전을 위해 모금도 하고 학생 교육활동에 후원도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자 평생교육부장은 “주말이면 학부모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다가는 풍경이 친근하다”며 “학교가 아이들만의 공간이 아닌 마을 주민 모두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서 교장은 “이론교육보다 체험활동은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며 “특히 주민과 함께하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은 지역사회의 유대관계를 넓혀가는 데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미래가 더 기대되는 학교… 교장도 교원도 CEO
소규모 전원학교의 성공에는 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따라붙는다. 학생 수가 일정수준 지속될 수 있을지, 프로그램을 운영할 재원이 계속 지원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서 교장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장도 교원도 CEO가 되어야 한다”며 “이성의 교사들은 모두 CEO라는 생각으로 노력한다는 점에서 발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서 교장은 “정부도 소규모학교 통폐합만 유도할 것이 아니라 제도를 융통성 있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6일 12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아이들의 함성과 웃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바둑교실에서도, 바이올린 교실에서도 아이들과 교사, 주민들이 함께 오늘의 수업을 이야기하며 함박웃음 지으며 하굣길에 나선다. ‘토요 해피스쿨’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이성 교육의 힘은 교사에게 있지요”
지역사회 학습센터 일궈낸 서기봉 이성초 교장
- 교장선생님께 이성초의 첫인상은.
“2007년 3월 제가 이 학교에 왔을 때는 유치원 4명, 초등 25명으로 2008년 폐교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다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지요. 학생 수가 계속 줄어 오래전부터 폐교가 예상되어 온 만큼 시설투자도 안되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를 촬영할 만큼 정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 학교를 살리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하셨나요.
“폐교가 되면, 이곳 어린이들은 어떻게 될까를 고민했습니다. 이 지역의 삭막한 모습을 그려보며 학교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지요. ‘학생들이 찾아오는 학교’를 만드는 일을 교직원들과 연구하며 외국어, 바둑, 바이올린, 수영 등을 교육과정으로 포함시킨 종일제 방과후학교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 ‘학원 돌리기’를 하던 도시의 맞벌이 부부에게 종일제 방과후교육은 이상적 교육시설로 인식되었던 거 같아요. 학생이 정말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사회, 학부모, 동창회 등의 협조 얻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엔 지역주민들도 이농현상과 학생 수 감소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성초가 지역사회학교 역할을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에 학부모,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평생학습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학부모, 동창회, 교회 등으로 발을 넓혀가다 보니 어느새 지역사회 모두가 학교교육에 적극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 전학생이 늘어남에 따른 부수적 문제도 있으리라 봅니다. 학생 수용 인원은 어느 정도인지, 주택 등의 문제는 없는 지, 중학교와의 연계 등에 대해 짚어 주세요.
“현재 학생 수는 유치원 39명, 초등학생 147명으로 포화상태입니다. 학교 옆 야산에 주택단지를 조성하기도 했지만 저희는 공동학구인 만큼 최근 몇몇 학교들처럼 땅값이나 집값 폭등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전주 등 도시지역의 자율중이나 특성화중에 갈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에만 올인하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 부임하신 지가 4년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가 걱정되기도 하는데요.
“우리 학교는 교장이 중심인 학교가 아니라 각 학급을 운영하는 교사들이 중심인 학교입니다. 교육에 열정을 가진 한분 한분들이 모인 학교이기 때문에 제가 떠난다 해도 이성의 교육이 흔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새 교장이 와도 지금의 기반위에 더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는 학생교육과 학부모, 지역주민들의 평생교육 활동장으로, 찾아오는 농촌학교로, 지역사회의 학습센터로,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힘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