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기독교적, 상징적, 저항적, 의지적
◆ 표현 : 역설적 표현. 상징어의 사용, 시·청각적 심상, 기승전결의 구성 방식, 속죄양 모티브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햇빛 → 추구해오던 대상, 정의로운 삶의 지표. 순결과 광명을 상징하는
이상의 빛, 조국광복
* 십자가 → 수평적인 지상의 역사성과 수직적인 신의 은총을 동시에 표상하는 상징물
시적 자아가 추구하는 종교적,도덕적 생활의 최고 목표
*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 스스로가 추구하는 세계에 도달하기 힘들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
상황 인식에 대한 단정이라기보다는 독자의 동의를 구하는 표현으로
설득력을 얻음.
*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그 어떤 희망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음. 신의 은총(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사랑)도 찾을 길 없는 절망의 상황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무기력하고 나약한 모습
*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그리스도
→ 가치있는 희생을 통해 인류를 구원한 예수님(역설)
고통받는 민족을 위해 기꺼이 속죄양이 되고자하는 거룩한
순절의식을 갖게 됨
* 모가지 →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겸손의 표현
* 꽃처럼 피어나는 피 → 가치있는 희생
* 어두워가는 하늘 밑 → 점점 더 암울해져가는 조국의 현실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내면적 자아에 대한 다짐.
과시적 행동이 아니라 순수한 행동임을 말함.
◆ 주제 ⇒ 조국광복을 위한 자기 희생 의지
고난을 짊어지려는 희생적인 의지(속죄양 의식)
◆ 윤동주 시에 나타난 속죄양 의식과 저항의식
" 괴로움, 슬픔, 부끄러움, 욕됨 " 등으로 요약되는 윤동주 시의 소극적, 부정적 정신과 시의식은 그가 자신의 분노와 비판의식 등 저항의식을 적극화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자기 혐오와 자책의 감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소극적, 자책적 저항의식은 다시금 자기 희생 또는 속죄양 의식으로 연결된다. 그러한 보기가 되는 시가 <십자가>이다. 이 시의 핵심은 수난의식과 속죄양 의식에 놓여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은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현실적인 괴로움에 연원한다. 현실에서는 고난과 역경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인류의 짐을 지고 괴로웠던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모든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양 의식은 윤동주의 그것과 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윤동주의 생애와 시에 있어서 그의 유년부터 가족적 신앙인 기독교 정신은 그 정신적 기조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윤동주의 저항의식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적 수난의식과 속죄양 의식이 그 핵심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점이 좀 더 적극적, 전투적 저항방식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한계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게 한다."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십자가에 걸린 햇빛
◆ 2연 : 십자가에 도달하기 힘든 현실
◆ 3연 : 암담한 현실상황과 소극적 자세
◆ 4연 : 자기 희생의 목표 설정
◆ 5연 : 자기 희생의 의지 - 주제연(비장미)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윤동주가 당대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면에서나, 대응 자세면에서 가장 치열한 작품이다. 또한 시인 자신의 역사관이나 인생관이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제재로 한 이 시는, 시인의 속죄양 의식을 볼 수 있는 작품이며, 그 당시 고통받는 우리 민족을 위해 시인이 보여주는 희생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소개]
윤동주[ 尹東柱 ]
<요약>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얼마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출생-사망 : 1917.12.30 ~ 1945.2.16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북간도(北間島)
주요작품 : 〈서시(序詩)〉,〈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 용정(龍井)에 묻혔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 <초한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씌어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네이버 지식백과] 윤동주 [尹東柱] (두산백과)
[출처] 십자가(윤동주)|작성자 옥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