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김탁환 이 작가를 만난지도 그다지 오래되진 않았다. 2003년 여름에 <방각본 살인사건>으로 만나고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몇 권씩 빌려대던 때가 10배속 재생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그동안 김탁환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책은, 백탑파 시리즈의 첫번재 이야기, <방각본 살인사건>이었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틈만 나면 조선 실학자들의 많은 글들과 산문집을 읽어대곤 하였다.
자, 그렇게 나에게 서슴없이 다가온 <방각본 살인사건>에 이어 백탑파시리즈의 두번재 이야기, <열녀문의 비밀>가 내 손을 거쳤다. 책을 덮으면서 먼저 느낀 것은, 김탁환은 정말 누구든지 빨리 읽히는 작가구나, 하는 것이었다. 김탁환의 소설을 친구들에게 빌려주면 그들은 책이 정말 빨리 읽힌다고 한다. 내가 <열녀문의 비밀>은 적지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이틀만에 완전히 독파했다는 것은, 작가가 이 이야기를 손으로 꽉 쥐고, 정신없이 독자의 눈동자가 글자를 헤매도록 하는 재간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두번째로, 김탁환의 문학언어에 대한 놀라움이다. 한자어와 너무도 친절한 각주는 단점으로 꼽힐수도 있겠다만, <나, 황진이>에서부터 눈여겨온 우리말에 대한 애정에 대해선 어김없이 찬사를 보내고 싶다. 또한 조선시대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속담이나 어휘들은 정말 어떻게 보면, 대사에 넣는 족족 어색해보이기 십상인데, 전혀 어색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빨리 읽히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대사마다 느껴지는 운율은 문학언어만의 아기자기하고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지금 책이 수중에 없어서 인용을 하진 못하겠지만 마치 시조를 한 수 읊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낭창한 대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열녀문의 비밀>에서는 전작보다 더욱더 나은 추리를 보여준다. 확실히 <방각본 살인사건>보다는 훌륭하지만 본격 추리로서는 약간 부족하다 싶다. 하지만 추리와 역사를 접목한 실험적 소설로서의 자격에 미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결말'은 부족한 반면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여전히 꽃미치광이의 주도로 이루어지지만...)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방각본 살인사건>이 조선 개혁세력인 백탑파의 현위치와 장단점, 사상, 그리고 그에 대립하는 외적 세력을 그려냈다면 <열녀문의 비밀>은 어느정도 백탑파의 지위가 안정됨에 따라 필요로하는 '실천의 단계'를 그려내고 있다. 이 실천은 경기도 적성의 김아영이라는 여인네의 활동과정에서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백탑파의 현 위치에 대한 안타까움과 오직 정조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자신들의 개혁에 대한 고민들은 소설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 외에도 향청과 질청으로 나눠진 지방행정, 점차 세력을 넓혀가는 야소교, 조선 여성의 지위 하락에 강요되어지는 열(烈)의 관념등등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곁들어진 역사적 해석이 잘 조화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김탁환의 인물 구성때 너무나 완벽한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껄쩍하다. <부여현감 귀신체포기>에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전우치, <방각본 살인사건>에 이어 이번 작품에 까지 여전히 자기 혼자 추리를 이끌어가는 화광 김진 그리고 백탑파의 개혁 사상 실천을 앞서 이끌어가는 김아영... 중요 인물에 너무 완벽성을 추구하면 읽는 독자들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기 마련인데, 김탁환이 조금만 그것에 대해 고려해주길 바란다(고하면 너무 건방진건가).
풍부한 역사적 해석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김탁환의 소설이 점차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 또한 즐겁기 마찬가지다.
*김탁환은 백탑파 시리즈를 한 10년간 할 생각이란다. 격년간 써내기로 약속을 했으니까 대략 4~5권 정도 더 나올거라니 그의 창작욕은 못말린다. 거기다가 과학소설 같은 한국 소설이 취약하게 다룬 장르도 해보고 싶다니, 질려버린다
첫댓글 한 번 보고 싶네요!^^
방각본 살인사건 좋아했는데 꼭 봐야겠어요^^
며칠 전 <방각본...>정말 재미있게 보구..바로 <열녀문의 비밀>주문 했답니다~ 너무 기대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