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닉네임 탈리다쿰
정춘순(탈리다쿰)
어릴 적 하얀 편지지에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정감어린 글씨로 써서 수줍게 준 친구가 있다. 우린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라 항상 단편적인 글만 서로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친구가 글을 쓰기 시작하더니 수필가로 등단했다며 자신의 글이 나온 책을 부끄러운 듯 주었다. “너는 나보다 감성이 풍부하니깐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거야”란 말과 함께. 난 마음속으로 웃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 누구에게라도 보여주지 못할 일기장에 내 감정만 마구 써 놓은 적밖에 없는 나이었기에. 친구의 글을 읽어보니 수수하고 간결하게 썼지만 자신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8월 어느 날 친구가 여수에 간다는 말에 막연하게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따라나섰는데 마침 수필의 날이라 각지에서 수필가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마음 가는 데로 붓 가는 데로 글을 쓰신다는 수필가들과 더불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글로 펼쳐내는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이번 기회에 글쓰기를 배워 내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한번 알아볼까?”하는 막연한 동경과 함께 문예창작반에 접수를 했는데 걱정과 두려움이 함께 몰려왔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내 마음을 이야기하니 글이 써지지 않으면 그냥 개기고 꾸준히 다니기만 하라고 한다. 첫날 기대에 부풀기도 하지만 내가 과연 내 마음을 글로 표현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러나 뒤에서 조용히 앉아 문무님들을 바라보니 모두 같은 생각인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카페에 등록하기 위해선 닉네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난 나에게 항상 묵상의 주제인 탈리다쿰을 주저함 없이 닉네임으로 정하였다. 그런데 나의 닉네임이 부르기도 어렵고, 무슨 뜻인지 모르며 왜 그런 이상한 닉네임을 쓰는지 묻는 사람이 많아 정보교환차원에서 그 어원과 왜 나의 닉네임을 탈리다쿰으로 정했는지 몇 자 적어보기로 하였다.
탈리다 쿰은 신약성서의 마르코복음 5장 38절에서 42절 말씀에서 따온 구절이며 히랍어로 '탈리다'는 어린 소녀를 말하고 '쿰'은 '일어나라!'는 명령이다. 신약성서를 소개하면
“예수께서는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울며불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왜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코웃음만 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다음에 아이의 부모와 세 제자만 데리시고 아이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다 쿰!"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놀라 마지않았다.”
그 당시 난 즐거움이 없고 너무 심심하고 무료하였다. 이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살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인생에 대한 아무런 느낌이 없을 땐 난 가끔씩 성당에 혼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하거나 종교에 관한 서적을 읽곤 한다. 그런 때에 홀로 성당에 앉아 일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숲정이에서 신부님의 ‘탈리다 쿰“에 대한 강론을 읽게 되었다. 뭔가 설명할 수 없지만 나의 마음을 쿵하고 움직였다. ”바로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탈리다쿰“은 나를 살리는 말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화두로 삼고 내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소장품이나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모든 닉네임을 탈리다 또는 탈리다쿰으로 정하였다.
내 인생이 무료하고 힘들 때,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앞을 못 볼 때나 몸이나 마음이 지쳐 긍정적인 생각을 못할 땐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고 ”탈리다 쿰“하고 어서 일어나라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심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첫 수업에 김춘수의 꽃을 탈리다 쿰으로 패러디한 작품이다.
탈리다 쿰
김춘수의 『꽃』 패러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다만 성서 속의 한 구절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어둠속에 방황할 때
나의 모든 닉네임으로,
“탈리다 쿰”하고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깨어나 생명의 빛이 되었다
내가 절망과 슬픔에 휩싸일 때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희망과 기쁨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힘과
새날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빛과 소금이 되고 싶다...
지금도 내가 인생에 대한 회의나 이 거친 세상을 혼자 나아가기 힘들 때 글로 표현해보라는 누군가의 격려와 위로를 주는 힘으로 생각하고 “탈리다쿰”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나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첫댓글 정 춘순님의 닉네임은 정말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내리신 것 같습니다. 문예반에 오시게 된 동기가 순수하게 잘 나타났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탈리다 쿰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밝게 드러내시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 많이 기대합니다.
그렇게 깊은 뜻이!... 저는 무슨 꽃이름인가? 아님 무슨 주술문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좋은 단어일 줄이야.
탈리다쿰님, 알고 불러보니 저도 왠지 힘이 솟는 느낌입니다. 수줍게 편지를 건네준 그 친구가 누구인지 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감상했습니다. 좋은 철학과 좋은 닉네임을 가지셨으니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 믿습니다.
소녀여 어서 일어나란 뜻을 저는 예전부터 알고 있어서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이름대로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소녀는 일어섰습니다. 문학을 향해 질주할일만이 남았습니다. 탈리다쿰님! 화이팅! !
전에 몰랐던 생소한 이름에 대해 알게 되어 지식의 창고에 썩지않게 저장해 두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신 탈리타쿰님! 에게 응원의 박수 보내드릴께요.머릿속에 뒤범벅이 되어있는 시심을 끌어내려는 시도는 아무나 할수없는 도전이지요.앞으로 정제된 글이 쏟아질거라 믿습니다.문우님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의 글 감사 합니다.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