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요즘 누가 바둑을? 바둑학원만 전국에 수백 곳 있습니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41호(2023.04.15)
남치형 (영문94-98)
국제바둑학회 회장
지능계발 효과에 바둑 인구 증가
“명지대 바둑학과 폐과 철회를”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주임교수가 최근 발족한 국제바둑학회 초대회장에 취임했다. 최근 5년간 활동이 없었던 한국바둑학회의 조직을 이어받는 동시에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인이 뭉치는 조직으로 확대, 재편한 것. 바둑 관련 논문을 받아 한국어·영어·중국어 등 3개 국어로 된 학회지 창간호를 발행했고, 일본어 논문을 추가한 두 번째 학회지를 준비 중이다. 회원 수는 아직 100명이 채 못 되지만 중국, 일본은 물론 미국, 캐나다, 태국, 싱가폴, 독일, 프랑스, 호주, 파키스탄, 크로아티아 등 많은 국가의 바둑인들이 가입했다. 3월 30일 분당에 있는 카페에서 남치형 동문을 만났다.
“국내 바둑 연구자의 수가 정말 부족합니다. 논문을 모집하거나 바둑 관련 연구를 하는 데 인적 자원의 부족이 심각해요. 한국바둑학회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이유기도 하죠. 대신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바둑의 국제적 인지도는 훨씬 높아졌습니다. 바둑과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요. 글로벌 학회를 만들면 이러한 연구와 인적 자원을 포섭함으로써 바둑 발전과 저변 확대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국제바둑학회 창립의 또 다른 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명지대 바둑학과의 폐과 소식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둑학과 및 대학원을 개설, 운영하는 명지대는 지난 연말 철학·수학·화학·물리학과와 더불어 바둑학과의 폐과를 결정했는데, 폐과가 발표되자 국내외에서 철회를 탄원하는 성명이 빗발쳤던 것.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 등이 가입한 ‘대학바둑연맹’에서 폐과 반대 성명을 냈으며, 특히 모교 바둑부가 앞장서 ‘서울대에도 없는 세계 1위 학과를 명지대가 갖고 있다. 바둑학과를 없애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명지대에 바둑 유학 온 중국, 대만 학생들이 각자 자기 출생지에 폐과 반대 서명운동을 요청, 중국에서만 500여 명이 동참하기도 했다.
“명지대 바둑학과는 1997년 바둑지도전공으로 시작해 지난 26년 동안 7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중 유학생이 85명, 프로 기사가 70명쯤 되고요. 한국기원이 프로 기사를 배출하는 사관학교라면, 바둑학과는 바둑계 곳곳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교육 양성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둑의 수뿐 아니라 바둑사(史), 바둑 영어, 바둑 중국어, 바둑 교육론, 바둑의 사회적 영향 등을 공부해 한국기원, 대한바둑협회 같은 기관에 들어가거나 바둑 미디어, 바둑게임업체, 바둑 포털 사이트 등에 취업합니다. 학원을 차리거나 방과 후 수업으로 바둑을 가르치기도 하고, 베트남·필리핀·프랑스·호주·캐나다·독일 등 외국에도 많이 나가요. 실업팀 운동선수처럼 일반기업에 취직해 일하면서 회사 대표로 바둑 리그에 출전하죠.”
바둑학과가 생기면서 바둑을 직업으로 삼는 경로도 다양해졌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18세까지만 입단을 허용하는 룰 때문에 프로 기사의 꿈을 접고, 마치 고시 실패자처럼 번듯한 직장을 잡기 어려웠지만, 현재는 일반인 입단대회가 신설돼 성인이 된 후 ‘지각 입문’하는 것도 가능해졌고, 프로 무대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 기사들이 바둑학과에 들어와 다른 진로를 찾을 수도 있게 됐다.
한국 프로 기사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신공지능’이라 불리는 2000년생 신진서 9단은 승률이 90%를 넘는 세계랭킹 1위의 선수다. 선배 프로 기사 그 누구보다 뛰어나고, 돈도 더 잘 벌지만, 어지간히 바둑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조치훈·조훈현·이창호·이세돌까진 일반인에게도 낯익은데, 이후 프로 바둑 기사는 누가 있는지 잘 모른다. 바둑을 두지 않으면 바둑이 침체된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3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세계 최강을 지켜오다 보니, 오히려 미디어의 주목을 못 받고 있습니다. 1980년대 조치훈 9단 땐 국내 대부분의 일간지가 그의 활약을 발 빠르게 대서특필 했어요. 당시 일본 최고의 기사였거든요. 가위바위보 하나도 일본엔 질 수 없다는 국민적 정서가 큰 영향을 끼쳤죠. 한껏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가 1989년 조훈현 9단이 세계대회 우승을 하면서 또 한 번 각광을 받았습니다. 바둑 붐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고, 이창호 9단이 나왔어요. 일본도 중국도 다 이겼고요. 월드컵 축구는 어쩌다 16강만 가도 열광하는데, 바둑은 늘 세계 1위를 하니까 외려 관심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마니아층은 여전히 견고하고, 바둑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게 입증되면서 일찍 바둑을 접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기원 빼고 바둑학원만 전국에 수백 곳 있죠.”
배우기 어렵고 재미를 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둑.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엔 적합지 않아 보이는데, 인기의 비결이 뭘까. 남동문은 “가만히 앉아 긴 시간 머리를 쓰는 취미가 바둑 외엔 없다”고 답했다. 요즘엔 유튜브를 보더라도 5분씩 잘라서 시청할 만큼 길게 집중을 못 하는데, 바둑은 시청각적 자극 없이 몇 시간 동안 고요히 즐길 수 있다는 것.
세계 최강 한국 바둑의 위상과 바둑 인구의 저변 확대, 바둑계 인재 공급과 프로 기사 지망생의 진로 다양화 등 바둑학과의 존치 이유는 충분하다.
“인터뷰하는 거 좋아하지 않지만, 폐과가 발표되면서 사람들을 만나 자꾸 얘기하고 다녀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좀더 앞장서 뭔가 해야겠다고 다짐했고요. 총동창회에서 매년 꾸준히 바둑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큰 힘이 돼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계시니까 힘닿는 대로 바둑계를 지원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외국 선수를 이겨서, 세계 1등이라서…, 이런 이유가 아니라 바둑자체의 매력과 대회나 학회, 학과 운영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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