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해로’ 카터와 작별한 로절린 여사
호스피스 돌봄 이틀만에 자택서 별세
카터 재임중 국무회의-NSC 참석
단독 해외순방 나선 ‘공동 대통령’
퇴임후엔 해비탯 등 함께 봉사활동
19일(현지 시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로절린 여사가 1976년 뉴욕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결정된 남편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AP 뉴시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99)과 미 최장수 대통령 부부로 77년 4개월간 해로했고, ‘공동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왕성하게 활동한 퍼스트레이디였던 로절린 여사가 19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세.
카터센터에 따르면 치매 진단을 받은 로절린 여사는 건강 악화로 호스피스 돌봄을 받은 지 이틀 만에 조지아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부인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로절린은 내가 이룬 모든 성취의 동등한 파트너였다. 그녀가 세상에 있는 한 누군가 항상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2010년 플로리다주 키스 거북이 병원에서 거북이를 돌보는 부부. AP 뉴시스
로절린 여사는 1927년 태어나면서부터 카터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간호사이자 로절린 어머니와 친구 사이였던 카터의 모친이 로절린이 태어날 때 산파를 맡은 것이다. 카터의 모친은 당시 3세이던 카터와 갓 태어난 로절린을 함께 돌봤다. 두 사람은 1946년 카터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조지아주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거쳐 1976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로절린 여사는 ‘공동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국무회의와 국가안보회의(NSC) 회의에 참석했고 병원 개혁이나 여성 인권 운동은 물론이고 특사 자격으로 단독 해외 순방에 나서기도 했다. 미 의회가 영부인 활동을 위한 예산 지원에 나서게 된 것도 로절린 여사 때부터다.
2018년 로절린 여사가 남편과 인디애나주에서 집 짓기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강철 목련’으로 불린 로절린 여사는 카터 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자 카터센터를 설립하고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집 짓기 운동인 해비탯 운동과 정신질환자 지원, 간병제도 강화 등 공익 활동을 펼쳤다. 로절린 여사는 1994년에는 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많았다. 당시 1차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해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는 동안 로절린 여사가 대화를 기록하기도 했다.
부부는 퇴임 후에도 끈끈한 정을 유지했다. 91세이던 로절린 여사가 2018년 결장 제거 수술을 받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은 병상에서 밤새 기도했다. 뜬눈으로 새벽을 맞은 그는 “로절린이 무사하다”는 의사의 말에 손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남은 시간을 집에서 그녀와 함께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 후 5년여 만에 부인을 떠나보낸 카터 전 대통령은 자택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으며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