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뭐 했어?"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에 관한 관심의 표시일 수도, 아무 의미 없
이 물어본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질문을 받은 순간 너무 당황해서 어리벙벙하다가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대화가 끝났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답을 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아침에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죠.
'아침에 잠들어서 항상 점심쯤에 일어난다고 말하면 게을러 보이지 않을까? 그럼 아침에
일어나서 뭘 했다고 말하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바람에 아무 말 없이 눈만 굴려댔
습니다.
두 번째는 '정말로 뭘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서 대답을 못했습니다. '일어나서 뭐했
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일어나서 밥을 먹는 것 말고는 내가 뭘 했는지 정말 아
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집순이로서 '뭘 하겠다'라는 목표나 계획 없이 보냈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그때 그때 하고 싶은 대로 무작정 시간에 나를 맡겼습니다. 아무리 뭘 하
려 고 아등바등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인생에서 변하는 것도 없었죠. 이 지긋지긋한 하
루가 내일이 되어 찾아온대도 새로운 일들은 없을 테니까, 스탬프를 찍듯 똑같은 오늘이 나
를 짓누르고 지나갈 게 뻔했습니다.
그랬던 내가 내 의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고, 한 번 일어나면 다시는 눕지 않겠다
고 다짐했습니다. 무엇보다 돌아올 하루를 어제와 다른 날로 여기고자 했죠.‘ 어제는 어제
로 끝내자! 오늘은 새로운 하루다! 오늘 하루도 상쾌하게 시작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일어
나서 해야 할 행동들을 이른바 '나만의 아침 루틴'으로 정했습니다.
첫째, 잠깐이라도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느낍니다. 우울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는 오랫
동안 방 창문도, 방문도 꼭 닫은 채 좁은 방 안에서만 생활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짜증이 나
고 관심도 없고 전부 싫고 귀찮아서 그랬습니다. 마음속 창을 모조리 닫은 것처럼 방에 틀
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죠.
그럴 때 창문만 열었을 뿐인데 다시 세상과 연결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창문 너머
로 평상시에 듣지 못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저 멀리 '부아앙' 하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어디선가 대화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바깥을 느끼고, 밤새 내뿜었던 쾌쾌한 방 공기와 닫힌 내 마음을 환기시켜봅니다. 창문 앞
에서 잠시만이라도 햇볕에 나를 말립니다. 내 방과는 다른 온도를 느껴보고, 냄새도 맡고,
소리도 들어보고, 집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둘러봅니다.
둘째, 항상 달고 사는 비염과 알레르기를 완화하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자는 곳이나 머리
주변에 있는 먼지들을 닦습니다. 방 침대 헤드에는 큰 책장이 있는데, 책 구석구석에도 먼
지가 쌓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책에서는 책벌레가 기어 나왔죠. 책등과 표지
를 아무리 닦아줘도 먼지가 계속 쌓여 먼지가 쌓일 만한 물건은 아예 머리맡에서 치웠습니
다. 먼지와 병균에서 멀어지기 위해 책장을 옮기고 닦기 편한 헤드로 새로 설치한 뒤 자주
자주 닦았습니다.
베개와 이불에는 소독용 에탄올과 티트리 오일을 섞어 만든 진드기 제거제를 뿌리고, 조금
있다 털어냈습니다. 바닥은 청소기로 밀었죠. 저렴한 무선 미니 청소기는 흡입력은 그리 세
지 않지만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과 먼지, 작정 정도는 가볍게 빨아들였습니다. 유
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만족도 120퍼센트다! 강력 추천하고 싶은 아이템입니다.
‘꼭 이 순서대로 해야지'라는 강박으로 아침 루틴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떠
오르는 대로 한 가지씩 시도하고 있죠. 일어나자마자 딱히 할 게 없어 거실로 나가면 주방
으로 향하고, 주방에 가면 밥부터 생각나고, 밥을 먹으면 또 누워 자게 될까 봐 바로 거실로
나가지 않고 일부러 방 안에서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을 찾아 움직입니다. 이 루틴을 하루
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워밍업'으로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상쾌한 하루, 깨끗한 사람으로 또 다른 날을 시작해봅니다. 완벽하게 방을 치우는 건 아니
지만 기본적인 청결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길면 30분 이상 걸릴 때도 있는데, 나에게 ‘일어
나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라는 근사한 프레임을 씌우고 자기 만족감을 높였습니다.
덕분에 새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나답지 않게 긍정적인 생각이 스멀스
멀 올라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위 글의 저작권은 행복한가에 있으며 모든 페이지 내용의 소유권은 행복한가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을 공유하실 때에는 글 하단 또는 제목에 '행복한가'를 반드시 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