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문화
일상의 다이돌핀, 감동의 치유제 ‘영화’
송민희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 인사를 나누던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주변에선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고 한다. 40대 친구들뿐만 아니라 20대 제자들도 같은 말을 한다. 영화 편집 이론 중, ‘지루한 부분은 짧게, 재미있는 부분은 길게 하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인생도 하루하루 재미있어서 시간이 빨리 간 것이었길 바란다.
독자 여러분은 새해 목표를 세웠을까? 필자는 새해엔 문화예술 작품을 매월 한 개 이상 감상하기로 다짐했다. 지난 5년간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부끄럽게도 영화인으로서 매월 영화 한 편 제대로 보기도 어려웠다.
사무직이라면 공감할 허리디스크를 필자 또한 오래전부터 안고 있었다. 작년엔 허리디스크가 재발해서 한 달을 누워 지냈다. 신체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신 건강 또한 마찬가지다. 한 달 만에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운동을 열심히 하며 신체 건강을 챙겼다. 그런데 정신 건강은 무엇으로 운동시켜 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1》(2015)을 보셨을까.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기쁨, 슬픔, 분노의 감정들, 《인사이드 아웃2》(2024)의 불안, 당황, 따분함의 감정들. 그리고 감정들 간의 충돌 속에서 인간의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이 애니메이션은 아이·어른 할 것 없이 흥미롭게 볼 수 있어 각 497만·87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정신적으로 온전히 편안했던 날이 얼마나 있었던가. 영화는 그런 우리를 위로해 준다.
언제부턴가 광고에선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엔도르핀’보다 ‘다이돌핀’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다이돌핀은 인간이 ‘감동’ 받을 때 만들어지는 호르몬인데, 엔도르핀보다 4,000배 강력한 치료의 힘이 있다고 한다.
일상에서 감동을 느끼는 일은 흔치 않다. 때론 감동을 받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는 최근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회에 다녀왔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고흐 작품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고흐는 일생 중 10년간 그림을 그렸으며 무려 2,000점의 작품을 남겼다. 새삼 전시명에 붙은 ‘불멸’의 뜻을 되새겨본다.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말처럼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라는 말을 고흐전에서도 보았다. 코로나보다 더 강력하다는 독감이 한창인 데다. 연말연시 바쁜 일상에서도 사람들은 감동을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고흐를 좋아한다면, 《러빙 빈센트》(2017), 《고흐, 영원의 문에서》(2019)를 강력히 추천한다.
‘감동’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면 과한 표현일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감동’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별을 헤는 시인 윤동주처럼 별 하나에 동경과,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을 외치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려고 한다.
표지가 닳도록 읽은 인생 책이 있는가. 어느 화가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달려가는 전시회가 있는가. 같은 영화를 열 번 넘게 보면서 울고 또 운 적이 있는가. 필자에겐 그런 친구가 있다. 영화 《타이타닉》(1997)을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보며 울고 또 운 친구. 화가 고흐에게 빠져서 그에 관한 서적은 모조리 읽은 친구. 인생 책으로 꼽은 『어느 요기의 자서전』(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을 매년 읽는 친구. 그들은 ‘감동’과 너무나도 가까운 친구다.
동종 업계 지인들을 만나면 “가장 좋아하는 인생 작품이 뭐예요?” 물어본다. 그들의 대답에서 다양한 작품과, 그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들으며, 사람마다 감동 코드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특정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유독 좋아하는 작품들이 있다. 책이라면 베스트셀러, 영화라면 천만 영화가 아닐까.
필자는 최근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두 번 읽었다. 이 책은 2014년에 출판됐으나, 2024년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 등을 휩쓴 영화 《서울의 봄》(2023)과 닮아 있다. 두 작품을 보고 한동안 가슴이 아파 잠을 자기 어려웠다. 더 이상 아픈 시대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같은 장르로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변호인》(2013), 《암살》(2015), 《택시 운전사》(2017)와 같은 천만 영화는 익히 아실 것이다. 같은 장르에서 안중근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영화 《하얼빈》(2024)과 《영웅》(2022)을 추천한다. 특히 《하얼빈》은 배우 현빈의 새로운 얼굴과 아름다운 영상미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어서 2024년도 영화 흐름을 간략히 언급하며 감동적인 몇 작품을 더 추천하고 싶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AI, 휴먼 로봇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와일드 로봇》과 《원더랜드》를 추천한다. 《와일드 로봇》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사고로 섬에 불시착한 로봇 ‘로즈’가 홀로 남겨진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을 보호하면서 아름다운 모성애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며 여러 관객들이 감동의 눈물을 훔쳤다. 《원더랜드》는 《가족의 탄생》(2006), 《만추》(2011) 등의 대표작을 가진 김태용 감독의 최근작으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며, 죽은 사람을 AI로 복원해서 사랑을 이어가는 스토리다. AI 시대에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작품이다.
작년 영화계에서 주목할 점을 하나 언급하자면, 한국 시리즈 영화의 건재함이다. 바로 《범죄도시4》와 《베테랑2》의 성공을 보면 알 수 있다. 《범죄도시》<>는 2017년에 시작해 6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더니 《범죄도시2》(2022)에서 1,269만 명을 이루고, 《범죄도시3》(2023)에도 역시 천만 관객을 넘겼다. 《범죄도시》는 속 시원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주인공 ‘마동석’ 배우가 하나의 ‘장르’라는 말까지 있다. 한편 《베테랑1》(2015)은 1,34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베테랑2》도 그에 못지않은 이슈와 재미로 흥행했다.
한국 최초 ‘쌍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2017), 《신과 함께-인과 연》(2018)가 떠오른다. 한국 시리즈 영화에 날개를 달아준 《신과 함께》는 3편과 4편이 동시에 제작되고 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어, 이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기대할 만한 소식이다.
그 밖에도 《듄: 파트2》, 《에이리언: 로물루스》, 《데드풀과 울버린》, 《베놈: 라스트 댄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등 인기 있는 외국 영화 시리즈도 많았다.
한국의 시리즈 작품은 영화뿐만 아니라 OTT 드라마에서도 눈에 띈다. 익히 잘 알겠지만,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2021), Apple TV+의 《파친코》(2022) 시리즈다. 두 작품은 OTT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오징어 게임>은 시즌1에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최근 방영 중인 시즌2도 넷플릭스에서 글로벌 TOP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는 게임과 벌칙이라는 익숙한 플롯에 한국적인 게임 요소를 더해 특히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일으켰다. 거액의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협업이 필요한 게임 속에서 살아남은 집단의 환호와 패자 집단의 소멸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주는 집단 에너지의 힘은 거대한 북소리처럼 시청자의 심장을 자극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국가, 회사, 가정 등 집단에 속해있다. 이 작품은 본능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현실을 변화시키는 도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거창한 말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길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도파민을 불러일으키는 활동을 하길 권한다. 그것이 영화라면, 영화를 만드는 필자로선 기쁜 일이고, 그 어떤 활동이든 독자분들이 행복하다면 더없이 기쁜 일이다.
마지막으로 흥행 여부에 상관없이 도파민 분비를 위한 코믹영화 중 명작 하나를 추천해 본다.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2003)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보는 생각 ‘인간이 신이 된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통해 웃음과 감동,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