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9시 30분경, 비교적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겨우 12시 30분이었어요. 오밤중.
머리맡에 놓아둔 책을 읽다, 다시 잠든 게 새벽 5시경이었을 겁니다. 다시 깬 건 오전 7시였고요.
오늘은 11시에 우리춤 수업이 있으니, 10시에 집을 나서면 되고, 장장 3시간이 남아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피와 요구르트로 아침식사를 대충 마치고, 감성 수채화반에서 배운 서툰 솜씨로 엽서에 카네이션을 그리기로 했습니다.
딱히 몇 장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닌데, 그리다 보니 주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서 3장이나 그리게 되었어요.
그림만으로는 왠지 정성이 덜 든 것 같아 리본을 만들어 글루건으로 붙이다 시간이 꽤 걸렸어요.
내가 카페지기로 있는 인터넷 카페에 들러 인사를 하고 댓글을 쓰려면 최소 30분이 필요한데, 그럴 시간이 없어졌네요.
서둘러 우리춤 복, 카드 석 장, 페라로 초콜릿 세 개짜리 세 통, 태국에서 사 온 작은 코끼리 도자기 그리고 내가 만든 꽃 코사지(브로치) 하나를 챙겨 가방에 넣었어요. 머릿속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열심히 궁리하면서요.
먼저 우리춤을 배우러 대치노인복지관에 갔어요. 정문을 들어서자, 접수처에 앉아 노인 회원들을 맞던 관리기사 K가 벌떡 일어나 익살을 떨며 90도로 절을 합니다. 비교적 규모가 작아 사회복지사 3명을 포함 열 명 남짓한 여직원들 사이에 유일한 남자 직원입니다.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30대 초반의 청년이에요. 안경이 부러지거나 휴대폰 사용에 의문이 생기면 저를 도와주곤 해서 무척 고맙지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작은 코끼리 도자기를 그에게 주었어요. 실은 오후에 갈 세움센터의 수강생 S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지요. S는 세움센터에서 유튜브를 함께 배우는 뇌성마비 청년인데, 지난번 직장을 얻으려는 면접에서 떨어져 낙심하는 걸 보고 작은 선물을 줬더니, 남들보다 두 배는 좋아해서 이번엔 태국에서 행운을 의미하는 코끼리 도자기를 부적으로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손안에 잡히는 아주 작은 도자기인데, 그 수강생에게는 다른 걸 주면 되니까요.
행운의 부적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 같아요. 보잘것없는 선물인데도 무척 반기는 K와 대화를 나누는데, 사무실에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팀장 사회복지사가 나왔어요. 얼결에 초콜릿 한 통을 주며 세 명 사회복지사가 나눠 먹으라고 드렸어요.
그리곤 4층 관장실로 올라갔지요. 똑똑 문을 두드리니, '네. 들어오세요.' 관장님의 조용한 음성이 들립니다. 대치노인복지관은 조계종 봉은사 관할 하에 있어 관장이 여스님이십니다.
카네이션이 그려진 엽서를 드리니, "솜씨가 많이 느셨네요. 작년에 주신 것도 여기 붙여 놨어요." 하시며 문 한편을 가리키십니다. 거기에 내가 작년에 그려 드린 졸작이 떡 하니 있었어요. 그린 내 정성보다 그걸 일 년 내내 붙여 놓으신 스님의 마음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제 과거가 고스란히 드러났네요." 내가 농담 삼아 웃었어요. 가정의 달에는 스님들이 더욱 외로우신 달이 아닐까요? 달콤한 초콜릿을 사랑을 담아 드렸어요.
우리춤 수업을 마친 후, 점심을 복지관 식당에서 먹고 기업은행으로 갔어요. 만기일이 된 통장이 있었거든요. VIP 팀장이 점심 식사를 하다가 튀어나와 저를 반겼어요. 피부가 곱고 깔끔하고 지적인 인상을 지닌 직원입니다. 늘 정장을 입었었는데 오늘은 파란색 하늘거리는 재질의 블라우스를 입었습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정장에 단 브로치에 대한 제 언급이 마음에 걸렸어요. 직경 5cm의 원에 알록달록한 인조석들이 박혀 있었는데, 좀 유치하다고 악평을 했거든요. 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뒤돌아서 후회하면서도, 마음속 생각을 자제하지 못하는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합니다. 미안했다고 말하면서 카드 그림을 건넵니다. "전문직 지적 여성은 좀 비싸 보이는 단순한 디자인이 어울릴 것 같아 그랬다"라고 변명을 하면서요. 한참 수다를 떨다가 꽃구경 얘기를 했어요. 서울숲 튤립에 이어 곧 중랑천 장미가 아름다울 거라고 일러 줬어요. 휴대폰에 있는 서울숲 튤립 동영상을 보여줬더니, "어마 예쁘다! 나도 가봐야지." 합니다. 하하, 4월 초에 만개한 튤립을 이제야 보러 가겠다니, 그녀가 얼마나 바쁘게 약간은 삭막하게 살아가는지 알 것도 같아 함께 웃었어요. 성수동에 산다니, 서울숲은 지척인데도 말이에요. 중랑천 장미원도 같은 강동구에 위치해 있으니, 그건 놓치지 말라고 다짐했어요.
오후엔 수서에 있는 강남세움센터에 갔어요. 유튜브를 배우고 있는데, 강사님께서 실용적인 것보다는 교과서 위주로 가르치시다 보니 내게는 다소 어렵고 실제로 사용 가능성이 없어 그만 둘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슬슬 이별 준비를 마음으로 하고 있었어요. 강남세움센터는 영구임대 아파트인 수서 6단지 뒤에 있는데, 가는 길이 나무가 우거져 아늑하고 전체적 분위기가 마음에 듭니다. 센터 건물이 제법 큰데 주로 지적 신체적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공간들이 많습니다. 장애인들이 기쁨을 표현하는 방법은 순수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얼굴들이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입니다. 한 번은 20대 초반의 장애인 청년들이 양쪽에서 오다 마주쳤습니다. 그러자 한 쪽의 젊은이가 반대편 청년에게, "친구야! 반갑다." 하며 껴안는데, 보는 사람이 짙은 감동으로 울고 싶을 정도였어요.
내가 세움센터에서 좋아하는 공간은 도서관과 굿윌 가게입니다. 6층에 있는 도서관은 항상 비어 있어 마치 혼자 쓰는 서재 같습니다.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지 않지만, 양질의 유익한 도서들입니다. 굿윌 가게에서는 기증된 중고나 신제품들을 파는데 반값 내지 그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됩니다. 대전에서 서울로 이사 올 때 수십 박스의 의류와 도서, 수많은 가구들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거나 버렸던 나는 이제 슬슬 서울 생활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물건에 관심이 되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물건 사기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작은 평수로 옮겨야 해서 정들었던 물건들을 처분해야 했고, 심지어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과 가방도 기증했어요. 그때 트라우마가 심해서 다시는 충동적 구매를 삼가야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했었는데 제 버릇 개 주나요.
나이 들면 나이 든 대로, 가볍고 편한 옷을 찾게 되고, 구두는 발이 아파 운동화만 신게 되더군요. 젊었을 때 작은 키에 모양내느라고 하이힐만 고집했더니, 심한 무지 외반증에 안쪽으로 굽은 엄지발가락 대신 둘째 발가락이 기형적으로 길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편한 신발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얼마 전에 다시 대여섯 켤레의 구두를 버렸어요. 다시 한 두 켤레의 정장 구두가 필요해서 한 치수 위의 큰 사이즈로 사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또 막상 사면 발이 아프거나 헐렁할까 봐 고민이 되는 거 있죠. 이럴 땐 사서 버리게 되더라도 아깝지 않은 중고를 사도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헌 구두가 편하긴 하죠. 선입견만 없애면 말이지요. 운전면허증도 반납했으니, 오로지 발로 걸어 다녀야 하는 처지잖아요. 그래서 굿윌 가게를 들락거리며 눈팅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유튜브 하는 수강생 중에 휠체어를 타는 중년 여자가 있습니다. 내가 만든 꽃 코사지는 그녀의 휠체어에 달라고 줬어요. "언니, 고마워요! 가방에 달아도 되겠네요. " 별것도 아닌 것에 그녀가 활짝 웃으며 좋아했어요. 마지막 남은 카네이션 카드는 홍삼 드링크와 함께 강사님께 드렸습니다. 속으로는 조만간 수강을 그만둬야지 하면서요. 그런데, 강사님께서 수강생 중 가장 우수했던 K가 어젯밤 갑자기 문자로 수강을 취소했다는 거예요. 겉으로는 무심히 말씀하시지만, 9명이던 수강생이 5명으로 줄었고, 더구나 수제자인 그녀가 그만두었으니 섭섭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마 나도 그만두겠다는 말은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야지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다행히 강사님께서 어도브 애프터 이펙트 앱을 이용해 만든 영상을 유튜브로 올리는 방법을 자상하게 다시 설명해 주셔서 고마웠어요.
이렇게 나는 바쁠 게 하나 없는데도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읽기에도 정신없고 길죠?
첫댓글 다소 긴 이 글은 무등님의 '날마다 글쓰기'에 대한 답변 아니면 변명입니다. 지난 금요일 하루의 제 '허튼 소행'을 고백하는 글이지요. 카페지기라는 여자가 하루도 아니고 3일이나 무단 결석을 했으니, 무등님께서 실망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셨는데, 저는 지은 죄가 있어 뜨끔했어요. 바쁠 게 하나 없을 여자가 도대체 뭘 하느라고 카페지기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안 하고 그림자도 비치지 않나, 꼼꼼하고 철저한 무등님은 이해하기 힘드시죠? 그러니, 50년 넘게 산 제 남편은 얼마나 속이 터졌겠어요. 그래도 제 딴에 할 말이 있는 거죠. 남자는 요점만 15000 자를 말하고 여자는 요점도 없이 3만 자를 말하며 산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얌전히 웃기보다 푸하하, ㅋㅋ, 흐흐가 더 어울리는 '웃기는 여자'랍니다. 저는.
또박 또박 한 줄 한 줄 빙그~레 웃으며 읽었습니다. 행노님의 일상이 눈에 선~합니다.
나이듦이 결코 무료하거나 무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주셔서 깊은 감명으로 배웁니다.
역시 왕년의 녹록치 않은 카페지기의 연륜을 느끼며 감사드립니다.
저는 컴을 처음 배우면서 컴을 통하여 귀한 정보를 제공해주신 선배님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친근한 동료들이나 선,후배들의 단톡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훈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카페에서는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대단합니다. 10시간만에 조회수가 44입니다.그러나 댓글은 제가 처음입니다.
이러한 진솔한 글에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야 아름다운 모습일텐데..
그냥 일별하고 나가는 분들은 참 이기적이고 인정머리 없으신 분들입니다.
저는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이 글을 읽을 것입니다.감사드립니다.
흐흐, 조회수 57, 저는 조회수 같은 건 별로 눈여겨 보지 않는데, 무등님께서 말씀하셔서 봤네요. 글이란 그 자체가 생명이 있어서 읽는 사람에게 느낌을 주지요. 일별하고 나가는 사람이 이기적이고 인정머리 없다고 하시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제 글에는 인정을 베풀 만한 여지가 없어요. 낮은 자세로 임해야 동정이 갈 텐데, 제 자세는 시종일관 꼿꼿하지요. 가끔은 글을 쓰면서 너무 잘난 척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어요. 저라고 왜 인생 고민이 없고, 혼자 찔찔 울 때가 없겠어요. 하지만 저는 남의 위로나 격려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카페 초기에 열심히 수필이나 잡문을 올렸었는데, 댓글이 신통치 않더라고요. 뭐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예 네이버 블로그를 따로 만들어 그곳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것도 공개가 아닌 주로 비공개로요. 글을 쓰는 만족감이면 됐지, 댓글에 좋은 것도 있지만 악평도 있잖아요. 그런 악평에 내 감정을 좌지우지 하면서 살 게 뭐람, 그런 마음인 거죠. 지금도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가끔 올리고 있습니다. 주로 비공개로요. 흐흐.
하루 방문회원이 한 자리숫자이고 방문숫자는 20~30이었는데,
이 글이 이 카페, 이 코너에서 이틀만에 69라니...
응봉산 개나리이야기 이후 50일만의 경이로운 구독숫자입니다.
카페지기의 근황과 평소 자신이 관리하는 카페에 대한 소회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표현한 글에서 평소 카페와 카페회원에 대한 묵시적인 마음의 결단과
그 배경에 대한 심경을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비공개로 잠궈진 독백성 블로그에 어떤 글이 출렁이고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지금은 사위가 고요하고 적막한 심야 삼경,
윗 글의 내용대로 지금쯤 혹,, 다시 잠 깨어 머리맡 책을 읽고 계시는지도...
누구를 만나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든 노후의 일상은 쓸쓸하기 마련
이 카페에 자랑하듯 올려진 일상적인 낙수, 여행이야기..이런저런 자식이야기등..
결국은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오고 나가는 고독이 깔린 해변의 텅 빈 조개껍질을 보는 듯
노인당에서 가끔 발악하듯 합창하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소리,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려 승용차로 왕복 여섯시간을 달려 공연장을 다녀간 어느 노파의 하루
그들의 잠재적인 속내는 차마 공개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닐까합니다.
우리 '행복한 노후'카페의 카페지기 행노님의 일상의 글에 나흘만에 조회수 92 !
그러나 카페 정회원님의 방문수는 스물여덟분(천상마님,다정님,애쁜이님, 수련과 연꽃님,행노님, 산향기님 그리고 저..
그외 방문기록을 삭제하신 몇몇 분..) 오늘중 저처럼 두 번 들렀다면 약 50 ..
대충 나머지 40은 카페회원이 아닌 분이 들러 가셨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