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의 소비 형태가 ‘쇼핑 중심형’에서 ‘경험 중심형’으로 뚜렷하게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여행의 의미가 ‘무엇을 사느냐’보다 ‘무엇을 느끼느냐’에 무게가 실리면서, 서울 관광의 축도 체험·문화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관광재단이 지난 10월 발표한 **「2025 서울관광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항목 중 체험·문화활동 비중은 2019년 대비 약 38% 증가한 반면, 쇼핑 비중은 25% 감소했다. 특히 20~30대 관광객은 면세점·대형 쇼핑몰보다 성수, 망원, 한남 등 ‘로컬 감성’ 지역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서울관광재단 관광연구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여행객들은 ‘서울을 살아보는 경험’에 가치를 둔다”며 “기념품 중심 소비보다, 공간과 문화를 통해 도시의 일상을 느끼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관광업계와 지자체도 체험형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종로구 문화관광과는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해 한복 착용 체험·전통 다도(茶道) 시음 행사를 정례화했고, 성동구 관광진흥팀은 ‘성수 팝업 투어’를 기획해 브랜드 협업 공간·카페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형 관광’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마포구 소재 A여행사에서 상품기획을 담당하는 김모(35) 씨는 현장 취재에서 “예전에는 ‘면세점 쇼핑 코스’가 기본 일정이었지만, 최근에는 ‘사진 잘 나오는 카페 투어’, ‘도자기·공예 클래스’, ‘야간 한강 피크닉’ 등 소규모 체험 코스를 문의하는 고객이 훨씬 많다”며 “관광의 중심이 구매에서 경험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의 인식 변화도 뚜렷하다. 일본인 관광객 다나카 유미(27) 씨는 북촌 한옥마을에서의 현장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명동에서 화장품을 사는 게 전부였지만, 이번엔 친구들과 한복을 입고 서울의 분위기를 느끼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며 “기념품보다 이런 경험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이를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관광의 질적 전환으로 해석한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정은지 교수는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MZ세대는 SNS로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세대”라며 “서울 관광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쇼핑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상생형 체험 콘텐츠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시도 2026년까지 ‘생활형 관광도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관광정책과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서울을 단순히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잠시 살아보는 도시’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지역 상권과 연계한 체험 인프라를 확대해 관광객이 문화적 경험으로 서울을 기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해외 주요 도시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교토시는 ‘체류형 체험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예·요리·전통예절 등 로컬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프랑스 파리시는 쇼핑 중심 관광코스를 줄이고 ‘생활 예술 체험’과 ‘로컬 워크숍’을 대표 콘텐츠로 홍보하고 있다.
관광 전문가들은 “앞으로 서울 관광의 경쟁력은 화려한 소비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여행 콘텐츠 기획자 B씨는 “서울의 매력은 빠른 트렌드뿐 아니라 골목길, 시장, 일상의 정취에 있다”며 “경험 중심 관광이 자리 잡으면 서울의 글로벌 경쟁력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