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4](월) [동녘이야기]
[성소부부고 톺아보기] 037# / ✦권5 문부2 서(序)
당절선산(唐絶選刪) 서(序)
https://youtu.be/AwA0XEoRbaA
오늘은 당절선산(唐絶選刪) 서(序)를 읽을 차례입니다. 당절은 당나라 절귀 시를 가리킵니다. 그 당나라 절귀 시 중에서 골라 뽑아 엮은 것으로 전체 10권에 이릅니다. 여기에 있는 서(序)는 골라 뽑은 목판본인 선산(選刪)에 덧붙인 글인 듯싶습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일찍이 이르기를 ‘시의 도는 삼백편(三百篇)에 크게 갖추어져 있다’고 했거니와 화하고 부드럽고 인정 도타워서 족히 선심을 감발시키고 악을 징계할 만한 것은 국풍(國風)이 가장 훌륭하고, 아(雅)와 송(頌)1)은 이로(理路)에 관계되어 성정(性情)의 거리가 좀 멀어졌다.
한(漢)·위(魏) 이후로는 시를 지은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니요, 또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너무도 상세하고 세밀한 데로 잘못 빠져 들었다. 이는 특히 아(雅)·송(頌)의 류(流)가 범람한 것이니, 어찌 성정의 도에 허여할 수 있겠는가?
당나라에서 시로 이름이 있는 자가 거의 수천 명이지만 대개는 이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심지어 기려와 풍화(風花)가 바른 기운을 손상했고, 흘러서 교화주(敎化主)2)의 질책을 받게 되었다. 이 어찌 시도(詩道)의 재앙이 아니겠는가?
당나라 시인의 오언·칠언 절구가 판각되어 전하는 것이 무른 1만 수로, 그 말은 짤막하나 뜻은 멀고 그 사(辭)는 화려하되 사치하지 않으며 바른 말은 뒤집는 듯하고, 무심한 듯한 말은 조잡한 듯하다. 바른 위치를 범하지도 않고 언어의 적상(跡象)에 떨어지지도 않았다. 풍간을 머금어 흥(興)에 붙었고, 빗대어 실없는 말로 놀리는 기롱을 한 것은 중(中=中心)을 얻어서 그것을 읽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거듭 감탄하고 감탄하게 한다. 참으로 국풍(國風)의 여음(餘音)을 얻어 《시경(詩經)》 3백 편과 거리가 가장 가깝다 하겠다.
이 때문에 당시의 악인(樂人)들이 취하여 가곡(歌曲)에 메웠다. 왕유(王維)나 이익(李益) 무리의 작품은 천금을 주고 사서 악부(樂府)에 넣기에 이르렀으며 왕소백(王少伯)3)·고달부(高達夫)4)의 사(詞)는 운소원(雲韶院)5)의 여러 기생들도 모두 부를 줄 알았으니 이 어찌 훌륭하지 아니한가?
당나라의 여러 시인들이 매우 훌륭하나 중당·만당에 이르러 차츰 스러지고, 유독 절구만은 성당·만당을 막론하고 시인의 뛰어난 작품을 얻어 모두 읊조리고 욀 만하다. 비록 여항6)의 부인(婦人)이나 방외(方外) 선괴(仙怪)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또한 모두가 뛰어났으니 당나라의 시는 이에 이르러 극도로 갖추어졌다고 이를 만하다.
내가 한가한 날 창명(滄溟)7)의 《고금시산(古今詩刪)》8)·서자충(徐子充)의 《백가선(百家選)》·양백겸(楊伯謙)의 《당음(唐音)》9)·고병(高棅)10)의 《품휘(品彙)》11) 등의 책을 가졌다. 그 절구들 가운데 묘한 것은 약간 수씩을 뽑아 나누어 10권을 만들고, 《당절선산(唐絶選刪)》이라 제목하여 책상 머리에 놓아 두고 아침 저녁으로 읊조리고 외고 한다.
아! 당나라의 절구는 여기에 다하였으며 삼백 편의 유음(遺音)도 이로써 또한 미루어 구할 수 있다. 그 성정(性情)의 도에 혹 작은 보탬이나마 없지 않으리라 여긴다.
이런 오늘도 교산 허균의 《당절선산(唐絶選刪) 서(序)》를 읽었읍니다. 이해하면서 읽자니 짧지만 시간이 많이 드네요. 당나라 시에 밝은 교산 허규에 대하여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이 만족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1)중국 시(詩)가 맨 처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기원전 11~6세기 정도인 약 500년간 서주(西周) 초에서 동주(東周 말까지 이르는 시기로 봅니다. 그 후 그때의 시를 세 갈래인 풍(風), 아(雅), 송(頌) 세 부분으로 갈라 놓았는데 풍(風)은 주나라의 민간 가요이고, 아(雅)는 주나라의 정통 음악이며 송(頌)은 주나라 왕실과 귀족이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음악을 이릅니다.
2)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쉽게 노래할 수 있는 시를 짓자는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을 주도했는데 이런 백거이를 높이 칭찬하여 이른 말로 불교 용어를 써 광대교화주라고도 부릅니다.
3)소백은 왕창령의 자로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나 ‘칠절성수(七絶聖手)’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함.
4)달부는 고적(高適)의 자이며 당나라 시인으로 칠언고시(七言古詩)를 잘 지었다고 합니다.
5)당나라 궁중에서 음악과 가무를 가르키던 곳입니다.
6)조선 선조 때부터 시작된 중인, 서얼, 서리 출신의 하층민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학을 일컬음.
7)창명은 명나라 문장가 이반룡의 호이며 자는 우린(于鱗)이다. 늘 옛글에 심취하여 읽었으며 그로 인하여 미친놈으로 부렸으며 어머니의 애닲음을 이기지 못하여 그로 인하여 목숨을 잃음, 5자(사진, 오유학, 양유예, 황세정) 중의 한 사람입니다.
8)반룡 이창명이 죽은 후, 그를 기려 왕시원(汪時元)이 왕세정(王世貞) 서문을 붙여 엮은 시집입니다.
9)원나라 양사굉(楊士宏)이 당나라 시인들의 작품을 시기별로 나누어 엮은 시집입니다.
10)명나라 초기의 시인이며 자는 언회(彦恢)이고, 호는 만사(漫士)입니다.
11)이는 ‘당시품휘’로 명나라 시인인 고병이 엮은 당시(唐詩) 선집(選集)입니다.
첫댓글 오늘은 월요일이라
교산 허균의 '성소부부고 톺아보기' 시간을 가졌읍니다.
뭔가 잘 정리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좀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