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正見] (352) 깨어남눈 앞에 다 나타나 있다
일체의 바탕자리는 모든 것을 인식하는 단 하나의 의식이다. /셔터스톡
깨어남이란 내가 어딘가 은밀하게 숨어있는 성품자리를 보는게 아니고 누가 무엇을 본다는 것이 전부 다 내 생각 분별일 뿐이며 실제로는 일체가 다 하나인 [이것]의 활동 기능임을 보는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일체가 다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게 다 의식의 바탕 위에 일어나는 보고 듣고 느끼며 맛보는 오감의 다양한 정보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없다면 과연 이 모든 색성향미촉법이라는 육식활동이 있거나 없다고 인식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일체의 바탕자리는 모든 것을 인식하는 단 하나의 의식인 것입니다.
의식이 살아있기에 이렇게 삼라만상이 비춰지며 소리가 들리고 감각느낌도 생멸합니다. 지금 눈앞의 모든 풍경과 오감활동들이 다 살아있는 의식의 움직임이자 그 기능의 현현이란 말이지요.
하지만 의식의 빛도 밤이 되면 생명의 품 안으로 사그라집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걸 있게 하는 가장 궁극적인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그러나 의식이나 생명이란 말을 수 없이 반복한다고 해서 깨어날수 있는건 아닙니다.
왜냐면 그건 다 실제로는 죽어있는 생각 속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생각가지고는 천년 만년을 생각해도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의식이나 생명이란 말 대신에 부득이 [이것]이란 말을 쓰는 겁니다. [이것]은 살아있음(생명)을 가르키는 손가락(지칭대명사)입니다.
지금 보시면 자기 눈앞에 뭐가 나타나 있습니까?
중생은 보이는 물건들의 형상과 이름(생각)들을 또 쫓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난 자는 매 순간 그런 형상들을 있다고 인식하는 살아있는 [이것]도 같이 보고 있습니다.
의식이 의식 자신을 돌아보면서 생각이 사라지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러면 거기에 전에는 보지 못해 알아채지 못했던 것, 즉 온 세상을 다 비춰서 있게 하는 세상의 배경바탕(영화스크린)이 되는 살아있는 [이것]을 보게 됩니다.
이 자리를 [봄]이 곧 견성(見性)할때의 견(見)이며 바로 성(性)인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인 성(性;성품)은 지금 눈앞에 나타나 나를 포함한 온세상을 두루 비춰주며 모든 것을 상(相)으로서 보이게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마세요.
그러기 위해선 모든 것을 있게 인식하는 근본 바탕인 [이것]이 먼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성상일여(性相一如)에 활짝 깨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