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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숭배하고 공동선을 경멸하는 행위를 중단하십시오. 하느님 대신 돈을 숭배하는 사람은 악의 숭배자로 전락하고, 불의와 폭력에 의지해 살게 됩니다. …마피아 단원들처럼 악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신과 교감하지 않습니다. 마피아 단원들은 파문됐습니다.”
영화 <대부>의 한 장면
지난해 6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주 카사노알리오니오를 방문해 미사를 봉헌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언입니다. 원고에도 없는 즉흥적인 연설이었습니다. 교황이 마피아에게 ‘파문’을 선언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칼라브리아는 이탈리아의 3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은드란게타’의 본거지입니다. 교황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몇 달 전 이곳에서 세 살배기 아이가 할아버지와 함께 마피아 조직범죄에 휘말려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뒤였습니다.1) 교황은 마피아의 자금세탁 창구로 의심받고 있는 바티칸 은행 개혁을 추진하며 이미 마피아들의 공적이 됐던 터였습니다. 파문 선언 후 교황이 마피아의 암살 표적이 됐다는 우려도 나왔죠.
마피아라는 단어는 영화 <대부>나 학창시절 친구들과 하던 ‘마피아 게임’의 추억으로 익숙할 겁니다. 마피아는 원래 19세기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탄생한 범죄조직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계 범죄조직과 이탈리아 내에 퍼져 있는 범죄조직들을 보통 마피아라고 부르지만, 마피아 조직이 워낙 유명해지면서 범죄조직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쓰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범죄조직은 ‘러시아 마피아’, 일본 야쿠자는 ‘일본 마피아’라고 부르는 식이죠.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관피아’, 재무부(MOF·현 기획재정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모피아’와 같이 과거 인맥과 직책을 이용해 부적절한 권한을 휘두르는 집단에게 마피아에서 유래한 별명이 붙기도 합니다.
마피아의 어원은 확실치 않습니다. ‘으스대는’, ‘대담한’ 이라는 뜻인 시칠리아 방언 ‘mafioso’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고요, 아랍어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1865년 시칠리아 경찰이 ‘마피아’라는 말을 ‘범죄조직의 일원’이라는 뜻의 공식 용어로 사용하면서 마피아가 범죄조직을 의미하는 용어로 굳어지게 됐다고 합니다.2)
어원이 불확실한 것만큼이나 마피아가 정확히 어떻게 형성됐는지도 아주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시칠리아 마피아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비밀로 하는데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리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다만 마피아가 19세기 초 시칠리아에서 봉건제가 무너지고 아직 근대국가 시스템이 성립되지 않은 틈을 타 태동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네요.
소수의 지주들이 영지를 독점하던 봉건제가 붕괴한 뒤, 시칠리아에서 토지를 소유한 시민의 수는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1812년 이 섬의 토지 소유자는 2000명이었지만 불과 50여 년이 지난 1861년에는 2만명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상업도 발달했고요. 농노였다가 지주나 상인이 된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자기 재산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거래나 계약의 규칙도 필요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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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대부>의 포스터 2 시칠리아의 마을 풍경. 면적이 제주도의 14배에 이르지만 대부분 산악지대이다. <출처: (cc) Bert Kaufmann at Flickr.com> |
하지만 근대국가로서 규율을 제공해야 할 정부는 필요한 일들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1861년부터 시칠리아를 통치하게 됐지만 초창기라 변방인 이곳까지 행정력이 제대로 닿기 어려웠고, 근대국가체제나 자본주의에 대한 경험도 없었죠. 인력도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당시 시칠리아 전체의 경찰 인력이 고작 350명에 불과했다니 행정과 치안 공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일부 마을에는 상주하는 경찰 인력이 없어 몇 달에 한 번씩 군인이 순찰을 돌았을 정도였습니다.
혼란 속에서 사유재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자력구제를 위한 해결책을 찾게 됩니다. 거래를 관리해줄 중재인, 재산을 지켜줄 보호자가 필요했죠. 이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초기 마피아들입니다. 경찰이 없는 시골마을에서 지역의 부유층은 도둑을 잡기 위해 젊은이들을 모집해 사병조직을 만들었고 이 조직이 마피아의 유래가 됐습니다.3)
지중해 한복판에서 수많은 나라들의 지배를 겪어와 지배계층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는 시칠리아인들의 뿌리깊은 문화적 전통은 마피아 조직의 특성에 영향을 줬습니다. 이들은 내부자들끼리 가족적인 문화를 유지하며 외부인에게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국가기관과 협조하는 것은 금기시됩니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이 당한 범죄행위라 할지라도 국가기관의 수사에 절대 협조해서는 안 됩니다.4)
이 같은 시칠리아의 문화적 코드 내지 계율을 ‘오메르타(omerta)’라고 부릅니다.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아니라 집안 어른이나 마을의 지도자가 해결하거나 사적으로 복수해야 합니다. 오메르타는 지금 마피아 조직의 가장 중요한 계율입니다. 경제적 상황과 문화적 전통이 긴밀하게 결합해, 마피아는 점차 조직범죄 집단으로 변해갔습니다.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마피아들은 이탈리아 남부에 퍼져 있다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대이주하던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떠난 사람은 무려 900만명이나 됩니다. 이 중 다수가 가난한 남부 출신이었습니다. 이 중에는 마피아들도 포함돼 있었죠. 이렇게 건너간 이들은 뉴욕과 뉴올리언스 등 미국의 대도시 외곽에 자기들만의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고 세력을 키워갔습니다. 1890년에 이미 마피아가 뉴올리언스에서 경찰국장을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를 정도였답니다.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 집권한 베니토 무솔리니가 마피아들을 강력 진압하면서 더 많은 조직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마피아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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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0년 마피아 ‘마트랑가 패밀리’의 손에 뉴올리언스 경찰국장 데이비드 헤네시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 지역지 ‘The Mascot’에 실렸다. <출처: New Orleans Public Library> 2 미국 금주법 시대의 마피아 이야기를 다룬 영화 <언터처블>. ‘언터처블’이란 ‘돈으로 매수할 수 없는 경찰’이란 뜻으로, 마피아의 뇌물이 횡행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
마피아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금주법을 틈타서입니다. 주류의 제조와 판매, 운송, 수입, 수출 등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18조가 1920년 1월 비준되면서 미국에서는 종교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포도주 등을 빼고는 술을 개인적으로 소비하는 것까지 완전히 금지됐죠. 술로 인한 병폐를 막겠다는 명분 하에 이뤄진 개혁이지만, 금지한다고 해서 술이 없어질까요? 소비량이 절반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마피아들은 이 시기에 밀주를 팔아 성장했습니다. 시장에 정상적으로 풀린 술이 없다 보니 주류가격이 급상승했거든요. 불법 양조장을 차려놓고 술을 몰래 제조하거나,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위스키 등을 몰래 수입해 오기도 했습니다. 밀주 판매는 성매매나 갈취, 도박, 보호세보다 마피아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줬습니다. 주요 마피아 가문들은 14년 가까이 계속된 금주법 시대를 재산 축적의 기회로 삼았답니다. 자연히 마피아 조직 간의 밀주 판매 경쟁이 치열해졌고 폭력사태로 비화하기도 했죠.5)
1963년 FBI가 만들었던 미국 마피아 지도
1933년 금주법이 사라진 뒤 마피아 조직들은 1920년대에 밀주를 팔아 거둬들이던 수입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도박과 대출, 마약밀매 등 다른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마피아들은 라스베이거스의 합법도박장과 월스트리트에까지 침투했고 바다 건너 쿠바에도 진출합니다. 노동쟁의가 이어지는 틈을 타 사용자와 노동조합 양측을 장악하고 파업을 실시하거나 풀어주는 대가로 돈을 뜯어내는 등 온갖 범죄들로 돈을 끌어모았어요.
미국은 1970년 ‘리코 법(RICO Act)’이라는 조직범죄처벌법을 제정해 마피아와의 전쟁을 본격 시작했습니다. 조직범죄집단이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몰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법의 골자인데, 마피아의 돈줄을 끊어놓는 데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고 하네요. 오늘날에도 미국 마피아들은 남아 있지만, 미국 전역에서 위세를 떨쳤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전통적 근거지였던 동북부 지역과 시카고에서 주로 활동합니다.6) 마피아 조직의 인력풀이었던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이제 미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는 바람에 마피아가 ‘구인난’에 시달리게 된 것도 몰락 요인 중 하나라는 설도 있습니다.
앞서 이탈리아에 3대 마피아 조직이 있다고 잠깐 언급했죠. 프란치스코 교황이 찾아갔던 칼라브리아의 ‘은드란게타’, 나폴리의 ‘카모라’, 그리고 마피아 발상지인 시칠리아의 ‘코사 노스트라’가 3대 조직입니다.
무솔리니가 대대적으로 소탕했던 마피아가 이탈리아에서 다시 힘을 얻은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협력을 통해서입니다. 미국은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마피아를 이용하기 위해 수감 중이던 뉴욕 5대 마피아 조직의 수장 살바토레 루치아노를 통해 시칠리아 마피아의 협력을 얻어냈습니다. 연합군은 시칠리아 상륙작전에 성공했지만 종전 후에도 마피아와 결탁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전쟁 협력을 대가로 루치아노를 풀어준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고요.
그간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마피아 조직이 저지른 범죄는 셀 수도 없습니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현 이탈리아 대통령의 형도 시칠리아에서 마피아 퇴치 운동을 하다 암살당했습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국민들을 가장 분노하게 한 사건은 1992년 시칠리아에서 마피아와의 전쟁을 치르던 조반니 팔코네 검사가 살해당한 사건입니다. 팔코네 검사는 아내, 경호원 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에 미리 설치돼 있던 350㎏ 규모 폭탄이 터지며 숨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인 파올로 보르셀리노 판사도 시칠리아 마피아의 손에 암살당했죠. 두 사람의 죽음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시칠리아 주도 팔레르모에서 열린 팔코네 검사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몰려 마피아 소탕에 소홀한 정부에 항의했고, 노동자들이 항의 차원에서 파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이탈리아 정부는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듬해인 1993년 1월에는 시칠리아 마피아의 수장인 살바토레 토토 리나를 체포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오랜 퇴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피아가 지금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은 이탈리아 정재계와 마피아가 끈끈하게 유착돼 있기 때문입니다.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마피아는 기업들을 상대로 대부업을 하거나 부패 정치인들의 돈줄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가톨릭 성직자들과도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피아들의 대다수는 가톨릭 교도이고 조직원의 가입의식에는 꼭 종교적 의식이 동반되곤 한다고 전해집니다. 과거 은드란게타 두목의 딸이 결혼식을 할 때 당시 재임했던 교황의 축복이 도착했다는 증언도 있을 정도입니다. 차명거래가 쉽다는 점을 악용해 바티칸 은행을 통해 돈세탁을 하기도 합니다.
정치와 경제, 종교를 등에 업은 마피아의 위상은 단순한 범죄조직을 넘어섭니다. 이탈리아 3대 마피아의 수입은 한 해 1160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7) 은드란게타 한 군데서 2013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만 530억 유로라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3.5%에 달하며, 맥도날드와 도이체방크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액수죠. 마피아는 이탈리아에서 보호세를 명목으로 상인들에게 돈을 갈취하며, 남미와 유럽 사이에 마약을 운송하는 등 여러 수단으로 돈을 벌어들입니다. 시칠리아에 있는 업체 중에서 약 80%가 마피아에게 ‘보호세(피조)’를 내며 액수는 월평균 457유로에 이른다고 합니다.
마피아들은 이제 예전처럼 살인을 일삼지도 않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가 저지른 살인사건은 지난 20년간 80%나 줄어들었다고 해요.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대신 돈이 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겁니다.8) 최근에는 마피아가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을 인신매매하는 데 가담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옵니다.9)
프란치스코 교황은 암살 위협 속에서도 올해 초 카모라의 근거지인 나폴리를 방문해 주민들을 향해 “마피아의 착취에 저항하라”고 촉구하고, 마피아 조직원들에게는 “신의 은총 속으로 돌아오라”고 일갈했습니다. 정치와 경제, 종교 등 사회 각계의 지도층과 긴밀하게 결탁된 마피아를 뿌리뽑기란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탈리아가 꼭 해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마피아 근거지에 찾아가고, 가톨릭 안팎의 반발에도 바티칸 은행에까지 손을 대며 마피아와의 결탁을 끊으려고 온 힘을 다하는 교황의 행보는 이탈리아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