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공중보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열대빈대 증가… 취업자·여행객 유입 원인
서구식 주거문화 빈대 확산에 기여
모니터링 강화, 전문가 협업 서둘러야
남에게 빌붙어 득 본다는 뜻으로 ‘빈대 붙다’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 대다수는 빈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을 통해 실제 빈대 사진을 보면 “이렇게 생긴 거였어?”라 할 정도다. 이 빈대가 다시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갑작스러운 ‘빈대의 위협’은 과연 실제일까, 과장된 공포일까?
필자는 33년간 다양한 위생곤충을 사육하면서 연구했다. 그런데 특히 빈대 실험이 있을 때는 더 조심한다. 자칫 놓쳤다가는 실험실 어딘가에서 계속 번식해서 연구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실험실에서 빈대 사육종이에 붙은 빈대를 떼어내던 중 종이가 튕기면서 빈대 한 마리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사라진 빈대를 찾기 위해 1시간 동안 온 실험실을 뒤졌고, 결국 찾았다. 전문가인 필자도 이럴진대 일반인들이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느끼는 건 당연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빈대의 출현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적인 상황이라 더욱 심상치 않게 인식된다. 세계 곳곳에서 빈대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니 ‘빈대가 세계화를 상징하는 해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990년대 초반부터 위생곤충을 연구하면서 가끔 주한미군 부대에서 빈대가 출현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지만, 2010년까지 우리나라 일반시설에서 빈대가 출현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는 일반시설에서 빈대 출현에 대한 신고와 방역 문의가 증가하기 시작해 한 해에 20∼30건의 문의를 받을 정도가 되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2020년부터 잠시 신고나 문의가 사그라들었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고 해외여행과 물류의 이동 등이 활발해지면서 다시 늘고 있다. SNS를 통해 빈대의 위험과 관련한 여러 소식이 알려지고 이에 따른 언론 보도가 증가하면서 빈대 서식을 확인해달라는 신고는 최근 들어 상상 이상으로 증가하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출현한 빈대는 온대성 빈대(학명 Cimex lectularius)와 열대성 반날개빈대(Cimex hemipterus) 등 두 종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온대성 빈대가 많이 서식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최근 필자가 10여 일 동안 8개 지역에서 채집된 빈대를 직접 확인한 결과 모두 열대성 반날개빈대로 확인되었다. 이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그리고 기타 열대지역 국가의 해외 취업 인구와 여행객의 증가가 현재 빈대 사태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중국의 경우 전역에서 두 종류의 빈대가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북유럽에서도 열대성 반날개빈대가 발견되고 있다. 이제 두 종류의 빈대가 함께 공존하는 양상이 일반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서구화된 주거 문화도 문제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복잡하게 서구화된 주거 문화가 빈대의 안식처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유럽과 미국의 일반 가정이나 사무실은 우리나라와 그 생활 양식이 많이 다르다. 일단 실내 바닥 면이 카펫으로 시공되어 있어 빈대 서식의 온상이 되기 쉽다. 카펫은 빈대를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통로 역할도 한다. 이 때문에 주택이 아닌 사무실에서도 빈대의 출현이 자주 반복되고 서식 밀도도 높아질 수 있다. 변화된 서구식 주거 형태는 빈대 서식을 더 이롭게 해주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셈이다.
아직까지 빈대가 매개하는 질병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빈대에게 물리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심하기 때문에 질병처럼 인식해야 한다. 그동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빈대를 공중보건 측면에서 접근하고 관리하려 하지 않았다. 신고의 의무도 없기 때문에 은폐되고 감춰지기도 쉬웠던 게 사실이다. 이제 프랑스에서는 빈대를 공중보건 문제로 인식하도록 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할 예정이다. 앞으로 우리 정부나 지자체도 시설별 빈대 발생 신고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리고 수집된 빈대의 종 분류, 유입 출처, 살충제 저항성, 살충제 방제 효과 등을 감시해야 한다. 모든 것을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챙기기는 어렵다. 사단법인 한국방역협회와 한국방역학회와의 협업을 통해 지자체별 전문가 네트워크 구성을 서둘러야 한다.
세계는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질병, 병원체, 매개체의 위협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지금이 사회적 방역 시스템을 새롭게 손봐야 할 때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한국유용곤충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