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추석 저녁 울 엄마가 친정 한 번 왔다가라고 전화가 왔다.
난 갈까말까 망설이다 추석 다음날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엄마는 나를 반기며 자리에 누워서 배가 아프다고 하셨다.
난 다음날 엄마를 모시고 고현에 있는 내과로 갔다.
엄마는 이미 그 병원에서 꾸준히 약을 타먹고 계셨고
나랑 같이 병원에 갔던 날도 그랬다, 배가 아프다고...
의사선생님께서는 신경성이라고 하시며 진통제를 처방내리셨다.
난 엄마를 집으로 보내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전화를 했다. 엄마 좀 괜찮냐고...
그래, 이제 괜찮다고 하셨다.
그리고 보름후, 아버지 기일이 돌아왔다.
엄마는 이상한 행동을 하셨다.
신발을 거꾸로 돌려놓고, 당신, 나 데려갑시다...
우린 비웃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데리고 가냐며...
그리고 보름이 흘러 어머니 생신이 돌아왔다.
엄마는 또다시 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또 병원을 모시고 갔더니 스트레스 때문이란다.
울작은 올케가 큰 사고를 쳤기에...
엄마 곁에서 자고 부산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이상하게도 발걸음도 무겁고..
엄마가 평상시에 하지 않던 배웅을 내 얼굴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했다.
잘가라고 손을 흔들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엄마가 왜 이럴까...
순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차를타고 부산으로 향하는 동안 엄마를 오늘 부산으로 모실까도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금요일에다 의뢰서도 없기때문에 월요일에 모실 생각으로 혼자 올라왔다.
그날 밤을 울엄마는 심한 복통으로 하루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샜다고 한다.
날이 밝자, 아침 6시쯤 전화가 왔다.
엄마좀 살려달라고...
119를 타고 고현 백병원으로 가시겠다고...
남동생이 엄마집 바로 옆에 살고있었지만 간경화 말기에
간암 수술을 한상태라....
장승포에 살고있는 언니집으로 전화를 해서 부산으로 엄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엄마를 보는 순간 언제 아팠는지 모를 정도로 엄마 표정이 너무 밝고 건강해 보였다.
난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큰 병원은 웃으면서 응급실로 가면 월요일에 다시 오라고 한다고..
그러니까 인상을 쓰고 아픈척 하라고...
그리고 울 아들한테 부탁을 했다.
엄마가 어떻게 아픈지 상세히 알아보라고...검사좀 빨리 해달라고...
아들은 응급실에 근무하는 담당자분께 전화를 해서 겨우 입원수속을 밟았다.
아들 덕분에 진료는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입원해서 두 시간 만에 결과가 나왔다.
아들말로는 아무래도 암 말기인것 같다고..
나는 아닐거라고 다시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우리엄마가 왜... 담배도 피우지 않았는데...
폐암에서부터 모든 장기를 비롯해 뼈까지 전의가 되었다고 했다.
세상에나..
순간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담당 의사선생님을 기다렸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선생님께 물었다. 몇개월까지 가능하냐고..
길어야 3~6개월이란다.
하지만 더 빠를수도, 느릴수도 있다고..
병원생활은 시작되었다.
음식을 잘 드시지도 못했다.
울 엄마는 옛날부터 요실금이 있어 늘 하루에 몇 번씩 속옷을 갈아입으신다고 했다.
난 팬티대신, 편한 기저귀를 사서 입혀드렸다.
이렇게 편하고 좋을수가 있냐고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하지만 하루에 몇개씩을 벗어버리려고 하니 엄마는 너무 아까웠나보다.
몇 번이나 나몰래 젖은 부위만 떼어내고 휴지로 땜빵을 하시려고 했다.
난 왜 이렇게 청승을 떠냐고, 내가 얼마든지 사서 불편하지 않게 할테니 걱정말라고 쏘아붙였다.
너무 속상했다.
죽어가면서도 자식들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티슈도 아깝다고 한 장을 안쓰시고 반만 쓰시던 울엄마..
짧은 기간동안 티격태격도 많이 했다.
젊디 젊은 나이 홀로 7자식 키우셨는데...
뭘그리도 자식 손에 넘겨 주고 싶어
벌벌.....
울 엄마 하늘나라 가시기 전날 약 24시간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오지 않는 객담을 뱉는다고 너무 힘을 줘서 턱이 내려앉고 말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난 엄마가 고통스러워 하고 아파해도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파서 엄마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마지막 하루를 남기고는 평상시에는 잘 일어나지도 못하던 엄마가 왠일인지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난 엄마 힘없다고 그만좀 하라고 .....
목이 마르다고 했따.
난 시원한 물을 갖다드리는데도 불구하고 물이 시원하지가 않다고 했다.
난 또다시 시원한 물을 가지러 간 사이에 울 엄마는 침대에서 내려와서 감 홍시를 한입 물었다.
난 놀라서 엄마가 잡수시는걸 빼앗았다.
먹으면 담즙까지 올리는 고통을 봐왔기에....
엄마는 신경질을 부렸다.
그렇게 간섭할거면 집에 가라고...
난 너무 속상해서 엄마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는 밖으로 잠시 나왔다.
그때 마침 찌다시 뿌리는 사람이 좋은 광안 요양병원 홍보물을 엄마에게 주고 갔다.
엄마는 그 종이를 들고 눈이 뚫어져라 보고있었다.
(울작은 올케가 어머님 아프면 요양병원으로 모실거라
말을 했기에 엄마는 요양병원에 가시는걸 너무 싫어 하시어)
약 30분 정도....
난 엄마를 안고 한없이 울었다.
너무 속상해서...
엄마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랬다고 엄마를 부등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 살아 생전에는 절대로 용양병원에 보내지 않겠다고......
그리고 엄마는 자리에 눕지를 못하셨다.
난 엄마 등 뒤에서 엄마를 안고 약 3시간동안 있다가 의사선생님을 찾았다.
울엄마 너무 고통스러워 하신다고,,,
이틀동안 잠도 못이루시고 하니 안정제를 좀 놓아달라고...
의사선생님께서 안된다고 하셨다. 이제 살아도 2~3일이라고...
난 의사선생님께 부탁을 했다. 2~3일동안 고통을 당하느니
어차피 안될거라면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다고...
그럼 오늘 고비만 넘기면 괜찮을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안정제를 투입했다.
오후 2시쯤, 투입후 친척들에게 연락을 했다.
저녁 7시쯤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울엄마는 가족 모두 이름 하나하나 다 부르시며 괜찮아 보였다.
난 날이 밝으면 앰뷸런스를 타고 거제도에서 운령하리란 생각으로 모든 형제들을 고향으로 내려보내고
엄마를 등 뒤에서 2시간을 안고 있다가, 불편할까봐 자리에 눕자고 하면서 밤 12시쯤 자리에 눕혔다.
엄마가 숨을 이상하게 몰아쉰다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지켜보다 이상하면 간호사실에 말하리라 생각하고 침대에 엎드려 잠깐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12시 40~50분 정도였다.
엄마가 이상했다. 엄마 엄마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간호사를 급히 불렀다.
우리 엄마가 이상하다고...
간호사는 엄마를 황급히 다른곳으로 모시고 갔다.
엄마는 차츰 숨소리가 미약해져 갔다.
간호사가 지금 말은 들을 수 있으니 귀에다가 하고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가지마라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엄마는 마지막 잡은 내 손을 놓고 말았다.
난 정신을 잃었다.
이렇게 가실 줄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먹고싶어서 감 한 입 먹는거 말리지 말걸..
너무나 후회스럽고 안타깝다.
지금은 우리 아들집에서 현관문만 열면 병원이 보인다.
울 엄마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면서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문을 열기가 싫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이제 아무소용 없다.
정말 있을때 잘할껄.
육체적 고생 마음고생 너무너무 많이 하시고 날이 밝기도 전에 캄캄한 새벽에 하늘나라 먼길을 혼자 떠나셨다.
나도 데리고 가자고 같이가자고 울고 또 울고..
하지만 엄마는 내 손을 뿌리치고 혼자 가셨다.
울엄마 이제라도 가슴아픈 모든 상처 황천길 건너기 전에 모두 내어 던져버리고 아픔없고 고통없는 곳에서 아버지와 먼저 보낸 5살때하늘나라 보낸 아들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계실거라 믿는다
눈에서 짠물나게 혀서 미안혀요
눈 따갑죠?
호호호
이제 울지 마셔유
엄니 자주 찾아 뵙구요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돌아 가시고 나면 뼈속까지 아파요
명절때는 더욱요
울엄니 하늘나라 가시는날
거제도로 운령할때쯤 비가 한방울씩 내리더니
도착하자 마자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 도 모자랐는지
날이 밝아도 양동이로 퍼부었어요
아마도 엄니 가시는길
막둥이 딸이 눈에 밟혔나봐요
병원입원 하시어 그랬거덩요
저 막둥이 딸 우는것 봐라
막둥이 울음 소리는 저승까지 들린다는데...
2돌도 안되 아버지 돌아 가시고...........ㅠㅠ
난 중간이라 엄니 사랑은 받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종이였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