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럭지가 오픈이다.

[Duncan&Kidd홧팅]

알림: 오른편 배치 사진 구도를 사용했기 때문에, 혹시 와이드 모니터로 보시는 분들은 적절히 가로 사이즈를 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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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와우(World of Warcraft)계의 전설로 전해지는 일화를 한번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실화인지 만든 이야기인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와우 커뮤니티에서 많이 나온 말이었죠. 몇년 전 불타는 성전 시절, 어느 서버의 '그롤의 둥지' 막공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네임드 보스몬스터를 잡기 전, 브리핑 후 도핑 확인이 있었습니다. 스포츠는 도핑이 죄악이지만, PVE 공격대에선 도핑은 필수에 가까운 에티켓입니다. 이 때, 서버 상위 레이드 팀의 멤버가 참여를 하고 있었고, 영약이나 비약같은 도핑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인원의 클레임이 들어갔고, 도핑 좀 하시죠라고 하자, 그 사람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템이 도핑이다. 새퀴들아."

이런 EE스러운 말을 내뱉은 근원은 싸가지도 한몫 하겠지만, 나머지 인원들과 상당히 차이나는 장비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말을 농구에 대입한다면, 특정 농구 선수가 다른 선수와 넘사벽의 차이를 가질 조건은 사이즈이며, 이것을 이용하여 만들면 이 글의 제목과도 같습니다.

"내 기럭지가 오픈이다."

제가 이 글에서 주로 등장시킬 선수의 전신 몽타쥬를 그린다면, 아주 호리호리하게 길게 몸을 그리고, 무엇보다 팔을 길게 그리면 끝일 것입니다.

이 선수의 신장은 6-9 라고 NBA 홈페이지에 기록되어 있지만, 왜 경기 화면을 보면 같은 팀에 있는 6-10 선수들보다 커 보이는 것일까요. 어느 쪽이 신장을 구라치고 있는 걸까요. 신경 안쓰고 있었지만 며칠 전 폭주천사와의 통화 이후에 유심히 봤더니 정말 코트 위에 있는 그 팀의 선수들 중 이 선수가 제일 어깨가 위에 있더군요.

여기까지 말했다면 이 선수가 누구인지 아실 것입니다: 케빈 듀랜트. KD

ESPN의 파머 선생이 말한 것처럼, 듀랜트의 키 스트렝쓰는 기럭지입니다. 기럭지가 표준말은 아니지만 신체 길이를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표현하는 말이 기럭지이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기다란 몸에, 기다란 팔이라는 농구하기 딱 좋은 몸을 가진 데다가 빠르기까지 하기 때문에 윙플레이어로서는 상당한 우위를 먹고 들어 갑니다. 그가 샷을 올리는 타점에 제대로 컨테스트할 수 있는 윙플레이어 스타퍼들은 찾아 보기 힘듭니다. 말 그대로 Reach King 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그의 기럭지를 오픈으로 만들게 하는 중요한 사항이 빠른 릴리즈입니다. 그를 상대하는 수비수가 미처 반응할 틈을 주지 않는 빠른 릴리즈 덕분에 상대방 팔이 자신의 시야를 가리기도 전에 머리 위로 샷을 던질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듀랜트의 샷을 어지간한 윙 플레이어 스타퍼들이 컨테스트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실제로 이번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그를 상대했던 토니 알렌의 경우, 일단 듀랜트가 샷을 던진다 싶을 때 제대로 팔로 그의 샷에 컨테스트한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플레이오프 1 라운드에서 그를 상대했던 다닐로 갈리나리와 윌슨 챈들러의 경우처럼, 사이즈가 비슷한 선수들을 상대했을 때 돋보였던 듀랜트의 능력은 찰나의 오픈 타이밍을 읽는 능력이었습니다. 문제는 다른 선수들에겐 오픈이 아닌 듯한 상황이 듀랜트에겐 그의 기럭지 때문에 오픈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입니다. 그에겐 터프샷의 범위가 매우 한정된다는 말이죠.

저에게 있어 듀랭이는 터프샷을 참 잘 던지는구나란 느낌보다는 그 찰나의 오픈에 과감하게 샷을 잘 던지는구나란 느낌을 줍니다.

바로 옆의 사진에 나온 장면은 클래식으로 남게 될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4차전의 1차 연장 2 분 13 초를 남기고 3점슛을 작렬시켰을 때 나온 장면입니다. 오른쪽 45 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러셀 웨스트브룩의 패스를 받음과 동시에 곧바로 올라갔습니다. 베티에는 빠르게 붙었지만, 듀랜트의 샷이 올라가는 속도가 더 뻘랐습니다.

이 득점으로 105 대 98 로 벌리고, 이후 타임 아웃 후 매요의 3점슛이 터지면서 다시 4 점차가 됐지만, 곧이어 듀랜트는 쟈크 랜돌프 앞에서 스텝 백 점퍼로 6 점차를 만듭니다. 이 상황이 나올 때, 저는 경기를 접수했다고 느꼈었죠. 그 당시에는 말입니다.

여하튼 옆과 같은 장면은 듀랜트의 게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레이 알렌과 같은 동네 한바퀴 러닝과 같은 피곤한 행동은 취할 필요 없이 그냥 받자 마자 던지는 것이죠. 그리고 대개 그럴 때마다 수비수는 반응할 틈이 없습니다.

사실 이런 샷이 쏠 때마다 다 들어가는 느낌이 날 정도로 잘 들어가면, 듀랭이도 사기 소리를 들을 테지만, 사기급으로 잘 들어가진 않습니다. 3 점슛이 막 터지면 그건 정말 난리나는 일이죠.

이 점을 이용해서 그리즐리스는 듀랜트에 대한 수비를 정말 잘 들고 나왔습니다.

1) 토니 알렌을 통해, 듀랜트에 대해 토나오는 디나이 수비를 펼친다.

2) 외곽에서 어쩌다 볼을 받아도, 적극적으로 더블팀을 붙어 듀랜트의 3점 아크 내의 볼 핸들링을 차단한다.

멤피스와의 시리즈 동안, 토니 알렌은 정말 '리그 패스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 급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공격에서의 토니 알렌은 오히려 썬더에게 숨통을 트이게 만들 정도로 박스 스코어 쪽 스탯은 좋지 않았지만, 듀랜트에 대한 레슬링 식 디나이 수비는 듀랜트를 정말로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간혹 3 점 아크 쪽에서 볼을 받아도 그리즐리스 빅맨들이 적극적인 헷지로 더블팀을 붙었고, 스크린 서러 가는 썬더 빅맨의 담당 수비수가 대놓고 더블팀을 붙는 등 그의 볼 핸들링을 틀어 막았습니다. 듀랜트의 볼 핸들링이 불안해 보인 점에 한몫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더블팀 트랩을 돌파하는 볼핸들링은 작고 민첩한 특급 슬래셔 가드들의 기술이죠.

듀랜트가 유독 부진했던 6 차전의 한 장면을 보여드리고자, 문제를 출제해볼까 합니다.

Q. 아래의 상황을 보고, 듀랜트의 심리 상태에 가장 가까운 문장을 고르시오.

상황설명: 1)탑에서 볼을 받은 듀랜트가 왼손 돌파를 시도 한다. 2)그 때, 토니 알렌은 옆동료 매요 쪽으로 듀란트를 몰고, 매요는 더블팀으로 장벽을 만들어준다. 결국 듀랜트는 돌파를 단념하면서 자기 왼쪽의 웨스트브룩에게 패스한다. 3) 볼을 받은 웨스트브룩은 곧이어 오른손돌파를 시도한다. 이 때 토니 앨런은 더블팀 헬프를 붙지 않고, 웨스트브룩은 그대로 매요를 제치고 안쪽까지 침투하여 레이업을 성공.

보기

① 히잉, 나만 미워해. (    ㅜ  _   ㅜ       )

② 닌둥 ㅋ 그래 그렇게 한다 그러지.

③ 아싸, 러셀 네가 우리 편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다.

④ 에이, 앞으론 공받으면 그 자리에서 쏠란다. 돌파 개나 줘버려.

⑤ 하늘이시여, 왜 저와 러셀을 한 하늘 아래에 같이 두셨나이까.

자 정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이후의 상황을 보면, 세번째 사진에 시간이 나왔듯이 3쿼터 중반 이후로 계속하여 듀랜트는 그냥 3점 라인 밖에서 볼을 받으면 그대로 대놓고 3점슛을 쏘기만 했습니다. 이런 점을 추정해보면, ④ 번이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쏘는 족족 볼은 림을 튕겨 나갔습니다.

이 날 4 쿼터에 서서히 그리즐리스에게 분위기가 넘어가는 과정에서 완전하게 모멘텀을 확보한 장면이 Z-Bo의 잽 스텝 이후 터진 점퍼였습니다. 15 피트 가량 지점에서 닉 칼리슨과 잽 스텝으로 대치하다 던진 것이었죠. 이후에도 그의 잽 스텝은 또다시 통했습니다. 썬더에서 이런 과정을 보여줄 선수는 듀랜트였습니다.

덴버와의 1라운드 시리즈에서 듀랜트는 그렇게 압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닐로 갈리나리와 윌슨 챈들러가 주로 그와 매치업을 이루었고, 그럴싸한 강한 디나이라든가 더블팀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캐치 앤 슛도 잘 넣었을 뿐더러, 외곽에서 볼을 잡은 상태에서 리듬을 타는 드리블을 치다 스텝 백 점퍼도 곧잘 적중시키곤 했었습니다.

적어도 이 당시는 triple threat position을 제대로 수행했습니다. 직역하면 3중 위협 포지션인데, 외곽에서 볼 잡은 상태로 수비수와 대치할 때, 슈팅, 돌파, 패스 등의 세 가지 경로로 수비수를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흔히 말하는 스윙맨의 포지션이죠. ESPN Insider를 우리말로 옮길 때 저 트리플 쓰렛 포지션은 많이 나온 용어였지만, 그대로 직역하긴 낯선 말이라 스윙맨 포지션으로 옮기곤 했습니다.

어쨌든, 저 트리플 쓰렛 포지션을 7 피트의 신장을 갖고 너무 사기스럽게 잘 수행하는 선수가 이제 만나게 될 팀에 있습니다. 덕 노비츠키죠. 18 피트 지점에서 트리플 쓰렛 포지션을 잘 수행하는 장신 선수들에 크리스 바쉬, 안드레아 바르냐니, 알 호포드도 꼽을 수 있겠지만, 덕 노비츠키처럼 완벽하게 하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매버릭스는 일찍 자신들의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을 끝낸 김에, 진행된 썬더-그리즐리스 경기를 통해, 어느 정도 듀랜트에 대한 답을 봤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리즐리스가 너무나 좋은 해결책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매리언과 스티븐슨을 선두로 내세우는 댈러스의 수비가 어떨지 기대됩니다.

혹은 썬더가 노비츠키를 상대로 답을 찾았을런지도 모르겠군요. 그리즐리스 백 코트에 토니 알렌의 레슬링 디나이 수비가 있다면, 썬더의 프론트 코트에는 서지 이바카와 닉 칼리슨이라는 레슬링 수비가 가능한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죠. 아, 빨랫줄 스킬이 난무하는 프로 레슬링이 아닌 머슬 겨루기의 정통 레슬링을 말하는 겁니다.

다행히도, 듀랜트는 7 차전에서 답을 찾은 듯 보였습니다. 사실 6 차전까지 듀랜트와 나머지 코트 위 네 명의 구도를 보면 사이드 코너에 듀랜트와 토니 알렌이 있고, 나머지 네 명이 따로 떨어져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4 대 4 농구를 하는 듯한? 코너에 있는 건 림 쪽에서의 플레이 메이킹으로 자기 수비수가 스트롱 사이드로 빨려들어 가는 걸 틈타 오픈을 얻는 것인데, 듀랜트의 수비수는 전혀 빨려 들어가지 않았고 정말 그 두 명이 외딴 섬에 있는 구도 였습니다.

7 차전의 듀랜트는 적극적으로 바스켓 쪽으로 몸을 움직였고, 덕분에 많은 기회를 잡았죠. 그의 기럭지가 오픈이 되는 순간들이 많이 터졌습니다. 물론, 7 차전의 게임 체인져는 닉 칼리슨이었습니다. 하지만 듀랜트의 득점포가 제대로 가동하는 걸 봤다는 점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한 썬더 입장에서 어느정도 위안이 됐다는 것이 분명함니다.

매버릭스나 썬더나 지난 해 1 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이번 해에는 컨퍼런스 파이널에 오르고, 새삼 해당 팀 팬분들은 기분이 매우 업됐을 듯 합니다. 저도 노비츠키와 듀랜트의 사이즈의 사기 대결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많이 되는군요. 그러고 보니, 이번 플레이오프에 너무 서부 얘기만 올리는 듯 하네요. 전에 ESPN에 "Who's better building block, Lebron or Rose?" 란 주제로 디베이트가 있었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마감 될 무렵 한번 여기에 대해 정리를 해보는 것도 좋겠군요.

[KG_2en4]

기럭지가 오픈... ㅎㅎㅎ 센스있는 말씀이네요

[[LAL]NO34]

기럭지 대결인가요? ㅎㅎㅎ

[Grizzlies]

게임 스탯으로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클러치나 팀이 뒤진 상황에서 성공률이 낮았습니다.

[Flash.Rose.Griffin]

제목을 보는 순간 '어? 듀란트 얘기하시는 건가?' 싶었죠...^^

[Alec Burks]

"넌 아웃이야 아웃"-ㅋㅋㅋ

[Mr.Everything]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헌데 한가지 여쭙고 싶어요. 이건 뭐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닌데, 제가 알기로 Triple Threat Position 이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Position 개념이 아니라, 선수가 공을 잡고 있는 자세로 알고 있거든요. 볼을 잡는 순간 두 발이 림을 향하고 볼은 머리 아래 위치시켜, 무릎도 살짝 굽혀진 상태. 그래서 슛, 패스, 드리블 중 어느것이라도 가장 빠르게 펼쳐낼 수 있는 자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Position 이 '위치' 가 아닌 '자세' 의 개념인거죠. 아닌가요?

[basti]

말씀하신 게 맞는 거 같아요 '자세' ㅎ

[Duncan&Kidd홧팅]

아 다시 여기저기 확인해 본 결과, 에브리씽님 말씀이 맞네요. 워낙 포지션을 그쪽으로만 생각을 해서 제가 늪에 빠졌나 봐요. 아무리 흔한 단어에도 두세번 생각을 하고 하는데, 일년 가까이 홀린 상태였군요. 감을 잃었나 봅니다 ㅡ..ㅡ. 지적 감사합니다.

[Mr.Everything]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걸로 좋은 글에 흠집낸 거 아닌가 싶네요. ㅠㅠ

[maverick45]

잘 봤습니다. 듀란트 경기를 많이 보지는 못했는데 Duncan...님의 자세한 설명을 보니 이해가 잘 되는군요.

[양은냄비]

잘봤습니다. 재밌고 유익한글이네요.

[어린아이]

오늘 경기로 기럭지가 오픈이다는 .. 노비가 가져가겠네요 ... ㄷㄷㄷ

[supreme]

노비는 오늘 이박하 바르는거 보고.. 징글징글한 스페이싱과 타이밍으로 완전 상대를 무력화시키더군요..

[이간지]

제목센스짱.. ㅍ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