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살아있는 이들 가운데 가장 비참한 남자야."
장차 미국 대통령이 되는 인물이 이런 소리를 늘어놓았다. 4년 동안 한 하숙에서, 그것도 한 침대를 썼던 친구이자 (연인으로 의심 받는) 조슈아 스피드가 떠나자 일기에 적은 내용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는 데 많은 미국인들이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남북전쟁으로 분열된 미국을 통합에로 이끌었고 흑인 노예 해방에 앞장섰던 위대한 대통령이다. 그런데 그의 성 정체성이나 극단을 선택하는 길로 이를 뻔한 우울증에 평생 시달렸다는,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남자들의 연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하지 못한 역사'(Lover Of Men: The untold history of Abraham Lincoln)이 6일 개봉을 앞두고 극장을 고르고 있다고 피플 닷컴이 4일 보도했다.
숀 피터슨이 연출했는데 수십 명의 학자와 역사학도들의 인터뷰는 물론, 편지들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사진들을 통해 링컨이 아마도 동성애자이거나 적어도 양성애자였을지 모른다고 제시한다. 이 다큐에는 잡화점을 공동 소유하고 운영하며 하숙집에서 함께 지낸 조슈아 스피드 뿐만 아니라 그와 관계를 맺었던 여러 남성이 등장한다.
피플은 링컨이 "치명적인 첫"이라 이름붙인 1841년 1월 1일을 결정적인 날짜로 꼽는 다큐멘터리의 클립을 단독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 날 링컨은 지방 신문을 읽다 스피드가 가게를 팔려고 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머니 농장이 있는 켄터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함께 공유하던 집(침대)을 떠나 이사 갈 계획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한 전문가는 다큐멘터리에서 "링컨은 황망해 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전문가는 스피드가 떠난 며칠과 몇 주, 몇 달은 "그의 우울증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시기"라고 표현했다.
다큐는 "당시 링컨은 극탄을 선택하려는 우울증 단계까지 나아갔다"면서 "그들은 일종의 자살 시계를 만들었다. 그의 친구들은 면도기 키트와 흉기 같은 다른 날카로운 물체도 치워버렸다. 그리고 그는 법률 파트너에게 부친 편지에 '난 살아 있는 이 가운데 가장 비참한 남정네야'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음성 대역으로 위 문장에 이어 "내가 느끼는 것이 전체 인간 가족에 기인한 것이라면, 지상에 즐거움 가득한 얼굴이란 없을 것이다. 내가 더 나아져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난 끔찍하게도 내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 나란 존재로 남는 일은 불가능하다. 난 죽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더 나아져야 한다. 내겐 그런 것 같다"고 적었다.
링컨의 성 정체성을 둘러싼 의혹은 최근 몇 년 동안 관심을 끌어왔다. 많은 관심이 스피드에게 집중됐는데 그와 링컨이 1837년부터 1841년까지 4년 동안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하숙집 룸메이트로 한 침대에서 잤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링컨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 변호사였다.
그러나 시대가 달랐으며 성을 둘러싼 도덕 관념도 달랐다는 점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것이다. 19세기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던 시기인데 "게이"와 "양성애"란 개념과 딱지가 존재하지도 않는 때였다.
다큐도 그 점을 지적한다. 시놉시스 일부를 보면 "이 다큐는 렌즈를 인간의 성이 변하는 역사에 대고 19세기의 성 도덕과 오늘의 그것이 얼마나 깊이 다른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돼 있다.
링컨은 1842년 메리 토드 링컨과 결혼해 네 아들을 뒀다. 하지만 일생을 통해 우울증에 힘겨워했다. 심지어 1861~65년 남북전쟁 시기 백악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 4년 동안이 그의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