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밤마다 KBS <토요명화>, MBC <주말의 명화> 주제곡이 TV에서 울려 퍼지면 어떤 걸 봐야 할지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이 2007년부터 차례로 폐지돼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과거 이런 영화 프로그램들이 영화광들을 설레게 했다면 지금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영화평론가 피어스 콘란(한국명 권필수)은 이 점을 아쉬워한다. 말하자면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으로 K콘텐츠는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영화 소비 방식이 OTT로 바뀌면서 그만큼 미래의 영화광들에겐 다양한 취향을 가질 기회를 빼앗고 있다.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영화와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그는 OTT 플랫폼에는 인기 많은 작품만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많이 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 역시 일본 영화인 줄 알고 잘못 고른 DVD가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었고, 이 실수 덕에 한국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대학 졸업논문으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대해 썼다. <기생충> 번역가로 알려진 달시 파켓의 제안을 받고 한국에 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2012년 한국에 온 뒤로 영화 쪽 일을 하던 콘란은 2018년 이경미 영화감독과 결혼해 정착했다. ‘권필수’라는 한국 이름도 생겼다.
최근에 그는 에세이 <필수는 곤란해>를 한국어로 출간했다. 책에는 한국인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 넘친다. 그래서 그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한국 영화들이 훌륭한 이유는 이런 영화를 탄생하게 한, 훌륭하지 않은 사회 때문이라는 그의 지적은 뼈아프다. 어떤 사랑이든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듯이 사랑하는 한국과 한국 영화들에 대한 아쉬움 또한 있기에 ‘곤란’하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살인의 추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이다. 스무 번 정도 봤다. 대학교 졸업논문을 썼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만 갖고도 완전히 새로운 논문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을 소재로 더 큰 사회문제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간접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1980년대 말 한국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는 것 같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 제작자들은 풍기 문란이나 사회 치부를 드러낸다는 이유로 관객·투자자 반응을 걱정하거나 검열을 피해야 했으니 풍자로 사회 비판을 담아냈다. 하길종 감독의 <화분>은 유신정권 치하의 억압적인 시대상을 환기시켰고, 김기영 감독의 <충녀>(1978),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매우 영리한 방법으로 전달했다. 또한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도 호러 코미디지만, IMF 외환위기와 1970~1980년대 정부가 반체제 인사들을 상대로 벌인 심문과 고문에 대한 내용을 그렸다.
그러나 한국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달라졌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자가 덜 필요해졌다. 어느 정도는 보복의 두려움 없이 정부를 비판할 수도, 금기시되는 주제나 한국 근대사의 어두운 시기, 예를 들면 일제강점기나 암울했던 1980년대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역설적으로 훌륭한 한국 영화들이 많이 나왔던 이유는 한국 사회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영화는 모든 면에서 발전했지만, 그것 때문에 잃은 것도 있다. 젊은 영화인들은 좀 더 강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신인들에게 참조할 만한 레퍼런스가 적고, 다양한 영화 교육을 받지 못하다 보니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한국 영화에선 크리스토퍼 놀런의 서사와 기법들만 보이는 것 같다. 세계 영화 시장을 미국이 석권해온 까닭은 미국이 강하거나 부유한 국가여서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자유, 시민권 등 미국적 사상을 세계가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서양을 열광시키는 콘텐츠들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것들이며 신선하고,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내가 보기엔 시청자들이 약자인 한국의 성공 스토리에 끌리는 듯하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던 한국의 문화가 급상승했고, 스토리 자체도 약자에 대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한국 이야기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다른 아시아인들을 아우르는 드라마의 성공은 가치관과 관련이 있다. 아시아 국가의 K드라마 팬들은 상당히 보수적인데, 가족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많고 구식 로맨스가 나오니깐 인기를 끄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세련되고 로맨틱한 캐릭터를 통해 K드라마의 젊은 배우들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의 최고 홍보대사가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블록버스터 속 강인하고 섹시한 스타일과 달리 새로운 형태의 남성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 BBC는 한국 드라마에 다양하고 강한 여성 주인공 캐릭터가 등장하며 변화가 불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한국의 남성성이 적어도 신체적인 기준에서 전통적인 서양 남성성에 도전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여성들에 대한 BBC 기사는 좀 관대했다고 본다. 드라마는 전통적으로 여성을 위한 것이었고, 신데렐라 캐릭터들은 한동안 존재해왔다. 다만 정서경 작가의 <마더>나 <작은 아씨들>과 같은 몇몇 드라마들의 여성 캐릭터들은 매우 진보적이다. 하지만 많은 드라마들은 아직도 성평등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들은 매우 진보적인 척하지만, 실제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직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보수적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마약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굉장히 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약중독은 심각한 문제지만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독자들을 악마로만 묘사하면 사회에 더 깊은 균열을 낳는다. 또, 한국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같다. 미래의 경제적 수단으로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집착하는 듯하다.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를 다룬 영화 <기생충>을 넘어 드라마 <해피니스>에서 벌어지는 아파트 분양 입주자들과 임대 입주자들의 충돌, 영화 <숨바꼭질>에 등장하는 허름한 아파트와 고급 신축 아파트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대부분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다. 그러나 스트리밍 서비스만으로는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나는 블루레이 디스크((Blu-ray Disc)를 2600편정도 가지고 있다. 나의 컬렉션 대부분은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못 보는 영화들이다. 스트리밍만 남는다면 이런 영화들은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TCM(Turner Classic Movies)이라고 유명한 고전영화 채널이 있다. 박찬욱·봉준호 감독은 어렸을 때 AFKN을 통해 고전영화와 ‘뉴 할리우드’를 봤다고 들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볼 수 있어 편리해졌지만 다양한 취향의 영화를 찾기는 좀 힘들어졌다. 특히 고전영화가 설 자리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미래의 시네필들은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든다.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없고, 오직 스트리밍 알고리즘뿐이다. 고전영화 채널과 다양한 영화잡지 등 우리가 자랄 때 있었던 도구가 지금은 많이 없어져서 안타깝다. 젊은이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많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