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일)
1일 2산(오후)
남한산성 산행!
농심님, 박하민트님과 함께~
*산행코스:
남한산성입구역-약사사-백련사-
남문(지화문)-수어장대-서문(우익문)-
연주봉옹성-널문이 고개-흔들바위-
금암산-범바위-덜미재-향여고개-이성산성-
하남위례교-전주이씨 희령군파 묘역
Post
2021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승격!
수어장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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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11분...
들머리
맨발황톳길
약사사
소원돌탑들
통일기원탑
백련사
작은 물줄기이지만
시원합니다.
산성약수터
첫,휴식!
이곳만 오르면 남문 입니다.
ㅎㅎ
남문(지화문)
지화문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때
지화문이라 칭하였고 4대 문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다.
또한 현재는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문 앞에 식재된
(450년 추정, 성남시 보호수) 느티나무와 함께
문화와 역사가 살아 쉼쉬는 시민의 역사터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450년 추정, 성남시 보호수
남한산성길에서 바라본 풍경 1
남한산성길에서 바라본 풍경 2
남한산성길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쪽의 방어기지로,
서쪽의 청량산과 북쪽의 연주봉,
동쪽의 망월봉,벌봉등을 연결하여 쌓은
대규모의 석축산성이다.
이성은 인조가 병자호란(1636)시 피난하여
향전하던 곳으로 신라 문무왕(661~681,재위)이
쌓은 주장성(일명 일장산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몇차례 축조가 있었으나
조선 인조2년(1624) 크게 고쳐 쌓은 성으로,
후금국의 위협과 이괄의 난이 동기가 되어
총융사 이서에게 명하여 2년만에
공사를 마쳤다.
축성에는 각성이 도총섭이 되어 8도의 승군을
동원하였다. 이 성의 둘레는 약 8km이며
넓이는 28.462제곱미터로서
성가퀴는 1,700첩이고 4문과 8암문 및
4장대가 있었고 성내에는 관아와 창고,
행궁이 있었다.
남한산성 "성가퀴"에서~
농심님!
수어장대 도착!
남한산성 수어장대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에 있어
본래 '서장대'라고 불렸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단층 누각이었고,
수어청 우영장(이천부사)이 서장대에 머물며
군사를 지휘하였다.
이후 영조 27년(1751)에 유수 이기진이
복층으로 중건하고, '수어장대 '라는
편액을 달았다.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헌종 2년(1836)에
유수 박기수가 수어장대를 중수하였는데,
그 형인 박주수가 쓴 것이다.
수어장대에서는 수어사가 수어청의 군사를
지휘하였는데,정2품 상사에 해당하였다.
수어청은 한양을 수비하는 5군영의 하나로,
본래 한성부 북부 진장방에
(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삼청동,팔판동,학동의 일부)
그 본청이 있고 광주부윤을 부사로 삼아
남한산성을 관할케 하였다.
그러다 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고자
정조 19년(1795)에 본청을 완전히
남한산성으로 옮기고,광주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하였다.
남한산성 수어장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호로 관리되어오다 2021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되었다.
또한 수어장대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중 하나인
군사 경관(장대)에 해당한다.
수어장대는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데,
그중 조선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의
아버지 김만기는 [서장대기]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비록 한강의 흐름을 기울여도 그날의
비린내는 씻지 못할 것이다.
만약에 혹시라도 풍경이나 구경하고 유람이나
탐하면서 다시는 감개하고 탄식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이는 이른바 그 양심을 잃은 자이다'
수어장대 인증샷 !
박하민트님과 농심님
저도 인증샷 남깁니다.
ㅎㅎ
청량당
청량당은 남한산성을 쌓을 때
동남쪽 축성의 책임자였던 이회 장군과
그의 부인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이회는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송씨는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 죽었다.
이회는 죽을때,
자신의 죄가 없으면 매 한 마리가 날아올
것이라 예언을 했는데 과연 매가 날아와
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그가 맡은 공사가
가장 잘된 것으로 알려지자 사당을 지어
초상을 안치하고 넋을 기렸다.
원래의 청량당은 6.25 전쟁 때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서장대가 있는 산 이름이 청량산이므로
청량당이라 이름 지었다.
두번째, 휴식...
돌배주 한잔하기!
ㅎㅎ
"쉼"을 즐기는
탐방객의 모습에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참 보기 좋았습니다.
ㅎㅎ
남한산성길에서 바라본 풍경 3
북한산을 바라봅니다.
ㅎㅎ
남한산성 "성가퀴" 에서~
농심님 !
거목에서~
서문 도착!
서문(우익문)
남한산성길에서 바라본 풍경 4
남한산성길에서 바라본 풍경 5
남한산성길에서 바라본 풍경 6
연주봉옹성
국가지점번호
다 사
7137
4417
널문이 고개
널문이는 캐슬렉스 골프장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이다.마을 입구에 수령이 약 70~80년
된 참나무가 있는 곳에 성황당이 있었으며,
이곳에 큰 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 큰문을 가리키던 '넓은문' 이 '넓은문이-
넓문이-널문이' 로 변해서 '널문이' 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박하민트님을 기다리며~ㅎ
흔들바위
금암산 정상석
(해발 322m)
금암산
금암산은 해발 322m로 남한산성 이성산성
중간에 위치한 산이다. 바위가 많을 뿐 아니라
그 바위 색깔이 비단색을 띄고 있어
금암산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바위 들이 많아 산 아래에서 볼 때 바위가
얼기설기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어
"얼기산 " 이라 하기도 한다.
금암산 정상에서~
금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1
금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2
금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3
금암산 정상석 인증샷 !
박하민트님.
저도 인증샷 남깁니다.
ㅎㅎ
금암산 정상석 인증샷!
농심님.
범바위
금암산 주봉 아래에 있는 바위로
그 밑에 굴이 있는데, 옛날 이 굴에서
호랑이가 살았다고 하여
'범바위'라 부른다.
어미새와 아기새 바위
검단산
덜미재
금암산과 이성산성 사이에 있는
춘궁동과 감북동을 오가는 고개로
금암산 북쪽의 두 봉우리 사이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감북동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약수터가 나온다.
이곳 주변에는 약간의 석축 흔적이 남아 있다.
광암 정수장 가는 삼거리이정목
전형적인 가을하늘!
광암 정수장 삼거리 쉼터에서~
두분을 기다립니다.
향여고개
이성산과 금암산 줄기를 넘는 고개이며,
춘궁동과 광암동을 오가는 고개로
이 근처에 향교가 있었기 때문에 향교고개로
불리던 것이 향여고개로 변한 것이다.
예전엔 이곳에 성황당이 있어 오가는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도로확장공사로 자취가 없어졌다.
이성산
(해발 209m)
춘궁동 산36번지 일대에 위치한 산으로서
해발 209m이며 춘궁동과 초이동을 끼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금암산을 따라 이어진 줄기에
속한 이 산은 이성산성이라 불리우는
석축산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의 왕자 두 사람이
이 산에 거주하였다하여 이성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백제 도읍지와 관련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아 오고 있는 산이다.
이성산성
장방형 건물지
이성산성
예봉산,검단산을 바라봅니다.
하남 위례교
하남 위례교에서~
오후 6시 14분...
날머리
전주이씨 희령군파 묘역
(농심님의 조상묘역)
오후 6시 35분...
하산식
두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ㅎㅎ
해물탕...
가성비가 좋으면서
맛도 참 좋았습니다.
ㅎㅎ
강추!
박하민트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농심님께서
오랜만에 "산행코스"를 잘 잡으셨네요.
ㅋㅋ
덕분에~
즐거운 산행이였습니다.
ㅎㅎ
불암산 + 남한산성 산행!
31,341
걸음
18.74km
*산행거리가 다소 길지만
높은 산이 아니라서~
초보자분들이 가을산행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완만하면서~
룰루랄라!
볼거리가 많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