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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엄은희
서울대학교 지리교육학 학사(2000년)와 환경교육학 석사(2002년)를 마치고, 2008년에 동대학원에서 다국적기업에 의한 필리핀의 광산개발과 그에 저항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지리/환경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 주제는 동남아의 환경문제, 도시화, 국제개발협력, 해외 한인기업과 한인사회 등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원 및 아시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공정무역 생산자의 조직화와 국제적 관계망: 필리핀 마스코바도 생산자 조직을 사례로”, “메콩의 에너지 경관: 메콩 지역 수력 경로의 형성과 변화”, “재외동포의 사회운동과 정치적 역동: 416자카르타 촛불행동의 활동을 중심으로”(공저) 등이 있고,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말레이 세계로 간 한국 기업들』(공저), 『개발도상국과 국제개발』(공역), 『흑설탕이 아니라 마스코바도』 등이 있다.
저자(글) 구기연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에서 학사(2000년),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석사(2003년)를 마쳤다. 2013년에 국가 체제에 대항하는 이란 도시 젊은이들의 자아구성을 주제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이란의 청년세대와 여성 문제, 이란 내 한류 그리고 미디어를 통한 시민사회운동 등에 대해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한국 내 이슬람 혐오 이슈와 한국 무슬림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혁명 거리의 소녀들: 해시태그 정치를 통한 이란 여성의 사회운동”, “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떠난다!: 이란의 고학력 이주현상에 대한 인류학적 분석”, “Islamophobia and the Politics of Representation of Islam in Korea”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이란 도시 젊은이, 그들만의 세상 만들기』, Participation Culture in the Gulf: Networks, Politics and Identity(공저), Media in the Middle East: Activism, Politics, and Culture(공저) 등이 있다.
저자(글) 채현정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학사(2006년)와 동 대학원 석사(2008년)를 마치고, LG전자 디자인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이후 2018년에 동 대학원에서 아세안경제협력 시대의 태국 북부 국경지역 개발과 국경교역 실천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아세안의 지역 시장 형성 과정과 국경 정책 변화에 대한 연구 및 로컬 상품과 지역 시장, 국경이동의 제도적·절차적 변화, 사람과 상품의 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아세안 지역시장의 출현과 국경교역 장의 재편: 태국 북부 치앙라이 국경상인의 사회적 자본과 교역실천 전략 분화를 중심으로”, “국경의 다중성 개념을 통해 본 아세안지역경제협력의 국경 자유화 정책: 태국 북부 치앙라이 국경교역 사례를 중심으로”가 있다.
저자(글) 임안나
숭실대학교 영문학과 학사(2001년)와 서울대학교 인류학 석사(2005년)를 마치고 2015년에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필리핀 이주노동자의 이주 공간 형성에 관한 주제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초국적 이동과 공간, 이스라엘 이민정책과 시민권, 필리핀 이주노동자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강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이스라엘의 필리핀 미등록 이주여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Networked Mobility in the ‘Migration Industry’”, “주말 아파트와 공동체: 이스라엘 내 필리핀 노인 돌봄 노동자의 이주 공간 형성에 관한 연구”, “이스라엘 유
대인 사회의 종족성과 정체성” 등이 있다.
저자(글) 최영래
서울대학교 해양학과 학사(200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지리학 석사(2005년)를?마치고, 2015년에 동아시아 연안 거버넌스의 변화를 주제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치생태학 및 환경인류학의 관점에서 동아시아 연안ㆍ해양의 개발-보전 정치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플로리다국제대학교 글로벌사회문화학과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Modernization, development and underdevelopment: Reclamation of Korean tidal f lats, 1950s-2000s”, “녹색성장-갯벌어업-해삼양식 어셈블리지로 읽는 발전주의와 자연의 신자유주의화” 등이 있고, 저서로 『생물다양성과 황해』(공저)가 있다.
저자(글) 장정아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학사(1992년)와 동 대학원 석사(1995년)를 마치고 2003년에 홍콩인의 경계와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제로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중국 본토로도 조사지를 확장하여 여러 지역의 농촌에서 현지조사하며 연구하고 있고, 중국의 문화유산과 문화민족주의, 홍콩의 식민주의와 정
체성, 국경과 변경의 정치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및 중국ㆍ화교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홍콩 땅을 지킨다는 것: 홍콩 정체성에서 향촌과 토지의 의미”, “빈민가에서 문화유산의 거리로: 홍콩 삼쉬포 지역 사례를 통해 본 도시권”, “홍콩의 법치와 식민주의: 식민과 토착의 뒤틀
림”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Contemporary China: The Participation of Local Communities(공저), 『도시로 읽는 현대중국』(공저), 『경독(耕讀): 중국 촌락의 쇠퇴와 재건』(공저), 『종족과 민족: 그 단일과 보편의 신화를 넘어서』(공저) 등이 있다.
저자(글) 김희경
이화여자대학교 보건교육학, 사회복지학 학사(2000년)와 서울대학교 인류학 석사(2003년)를 마치고, 2015년 인구 고령화 시대에 생명정치의 진전 양상 및 죽음 윤리의 변화를 주제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일본 사회를 중심으로 인구 고령화와 지역사회의 역동, 생애주기의 제도화ㆍ의료화와 이에 따른 죽음에 대한 윤리와 실천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할마쇼크: 한국 가족주의의 그림자와 할머니-모성의 사회문화적 구성”, “내가 죽으면: 초고령화 일본 사회에서 생명정치와 죽음윤리”, “Underground Strongman: ‘Silver’ Seats, Fare-Exempt Status, and the Struggles for Recognition on the Seoul Subway”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 Beyond Filial Piety: Rethinking Aging and Caregiving in Contemporary East Asian Societies(공저), 『안전사회 일본의 동요와 사회적 연대의 모색』(공저), 『의료, 아시아의 근대를 읽는 창』(공저) 등이 있다.
저자(글) 육수현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학사(2007년)와 동 대학원 석사(2009년)를 마치고, 2017년에 베트남 청년세대의 사회이동과 혼종적 주체성을 주제로 전북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로컬 간의 상호작용과 상생 방안, 베트남 청년세대와 여성, 문화다양성 확산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반(半)주변부국가 언어의 경계 넘기: 베트남 내 한국어 구사자의 수용과 활용을 중심으로”, “호찌민시 한-베 다문화 가족의 한국어 학습 수요에 관한 연구: 한글학교 재학 중인 2세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문화를 보는, 어머니 이야기』(공저), 『다문화와 다양성』(공저), 『한국기업의 VIP 국가 투자진출: 지역 전문가의 조언』(공저) 등이 있다.
저자(글) 노고운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학사(1997년)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2001년)를 마치고, 2011년에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사회주의에서 후기사회주의로의 전환기에 나타나는 초국적 이주 및 전략과 그에 대한 도덕성 담론과 젠더 정치학에 관한 연구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Davis)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중
국을 묶는 다문화주의 및 초국적 이동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동물, 생태, 환경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 및 담론 분석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Mass Media and Transnational Community: The Sense of Belonging Beyond State Borders
among Korean-Chinese in the Yanbian Korean-Chinese Autonomous Prefecture”, “Ecological Nationalism and the Demonization of ‘Invasive’ Animal Species in Contemporary South Korea” 등이 있다.
저자(글) 지은숙
고려대학교 철학과 학사(1992년)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2009년)를 마치고, 2016년에 비혼의 관점에서 본 일본의 가족관계와 젠더질서의 변화를 주제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구 고령화와 가족관계의 변동, 돌봄의 민주화와 젠더질서의 변화, 젠더와 나이 듦의 의미, 한국 여성의 일본 이주 등을 키
워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BK21플러스사업단 계약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가족주의 사회와 비혼여성의 새로운 친밀권: 독신부인연맹의 사례를 중심으로”, “비혼을 통해 본 현대일본의 가족관계와 젠더질서: 사회집단으로서 비혼의 형성과 변화를 중심으로”, “남성 돌봄자 증가와 젠더질
서의 역동: 일본 남성의 노인돌봄을 둘러싼 담론과 정책의 변화를 중심으로”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남성의 관점에서 본 노인돌봄 경험과 역할 전환에 관한 연구』(공저), 『젠더와 일본사회』(공저)가 있다.
저자(글) 정이나
멕시코 바예데아테마학대학교 국제통상 학사(2000년)와 스페인 살라망카주립대 중남미 지역학 석사(2006년)를 마치고 급진적인 사회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던 베네수엘라의 사회구조 분석을 주제로 2012년에 스페인 살라망카주립대 중남미 사회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불평등, 빈곤, 계급, 민중운동, 사회개혁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부산외대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쿠바 아바나대학교 의대에서 수학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사파티스타 운동 연구에 대한 인류학적 소고”,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 운동 연구: 쿠바 혁명을 중심으로”, “과테말라 원주민 운동 정치: 계급과 문화 사이에서”, “토지개혁과 계급 역관계에 대한 고찰: 한국과 과테말라 사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저자(글) 홍문숙
호주 모나시대학교 사회과학 학사(2002년)와 호주국립대학교 인류학 석사(2009년)를 마치고, 2017년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과 개발학을 접목한 융합분야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개발 현장의 정책적ㆍ실천적 조사와 평가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다 최근에는 역동적인 아시아의 사회발전, 국제개발, 청년과 학습에 대한 담론
과 현장에 관한 학술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글로벌교육협력대학원 및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동남아 전공,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개발 전공에서 강사 및 객원교수로 강의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Being and Becoming Dropouts: Contextualizing Dropout Experiences of Youth in Transitional Myanmar”, “Forgotten Democracy, Student Activism, and Higher Education in Myanmar: Past, Present, and Future”(공저), “Re-thinking democracy, development and social justice in education: connecting global, national and local challenges”(공저), “전환주의 평가이론의 탐색: 임파워먼트 평가 개념 및 방법론을 중심으로”(공저) 등
이 있다.
책 속으로
라오스 상인들이 마을 항구에 배를 정박시키고 다시 배를 몰아 라오스 국경을 넘어가는 일은 가능했지만, 외국인인 나는 그들이 다니는 경로에 동참할 수 없었다. 엄연히 태국에서 라오스로 이동하는 것이고, 나는 외국인이어서 여권 심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국경 통제에 무감했던 시절을 보낸 쏨 언니의 시어머니는 괜찮다며 그냥 다녀와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쏨언니는 그건 불법이라 안 될 것 같다며 난색을 표했다. 처음에는 낯선 라오스 상인을 따라나서는 것이 겁도 나고, 어찌 됐든 국경을 건너는 일인데 잘못 건너갔다가 비자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되면서 내가 부딪힌 그런 상황이 연구의 중요한 쟁점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채현정, “당신의 국경으로 데려다주세요”: 태국 북부에서의 국경교역 동행관찰기)
네베셰아난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곳이 ‘외부인’의 눈에 비치는 것만큼 위험한 곳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물론 네베셰아난이 범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도시 슬럼임은 틀림없지만, 처음 내가 길 건너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때 가지고 있던 이 지역에 대한 선입견과 공포는 다소 과장된 것이었다. 골목길을 걸을 때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지나가는 아프리카 남성들은 대체로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라는 정중한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나는 일상 속에서 낯선 이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타자화된 특정 집단과 장소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임안나, 나의 아파트 표류기: 이스라엘 도시 슬럼에서의 필리핀 이주노동자 연구)
우리에게는 중국인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미디어를 통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를 통해, 심지어 중국통이라 불리는 유명인들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학습한다. 여러 차례 중국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한때 나에게도 그러한 선입견이 생긴 적이 있다. 그러나 중국 현지조사를 다니는 과정에서, 특히 남쪽 지방에서 만난 다양한 출신과 외모의 중국인들을 통해 나의 선입견은 완전히 깨졌다.
지금 나에게 중국은 다양성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나라다. 비록 강력한 국가체제가 구축하는 사회상이 있을지언정, 중국의 국가권력은 사회집단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국가의 통치영역 바깥에서 지내는 이들도 무수하다. (최영래, 중국의 바다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이 만드는 사회적 연안)
홍등가 근처의 월세방에 살 때, 한번은 새벽에 귀가하는데 경찰이 불러세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홍콩에는 불심 검문이 합법화되어 있는데, 주 목적은 본토에서 온 불법 입국자 및 불법 체류자의 검문을 위해서이다. 내가 불쾌해하며 “난 한국의 박사과정 대학원생이고 여기서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자, 비웃으며 “거짓말 마라, 한국 사람이 어떻게 광둥어를 이렇게 잘하겠냐. 신분증이나 내놓아라”라고 했다. 신분증을 꺼내어 보여주자 “어, 정말 한국 사람이네, 이상하군” 하면서도 조롱하는 듯한 표정으로 지갑과 가방을 하나하나 뒤졌고, 특별한 물건이 나오지 않자 “거참 이상하네”라고 말하고는 그제야 가라고 했다. (장정아, ‘진심’은 알 수 없는 것: 홍콩 현장에서 바뀌어간 질문들)
성추행의 경험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 두번째 경우처럼 당사자에게 불쾌감을 직접 표현했고, 그런 경험들이 있을 때마다 주위의 이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항의했다. 이란처럼 ‘성추행’에 대한 문제의식이 예민하지 않은 사회일수록, 남성들은 여성의 강력한 항의에 더욱 주춤한다. 그들의 성 의식까지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피하지 않고 대차게 불쾌함을 표현하고 직접적으로 항의하면 오히려 남성들이 움찔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기연, 가면을 쓴 인류학자: 이란 사회의 정동 읽기)
인류학 방법론 교과서에 전설처럼 구현되는 라포가 현장연구의 정점에 가까운 단계라면, 오해와 갈등은 현장연구의 포문을 열어주는 시작이자 일상이었다. 인류학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한 현지인들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에서 온 연수생’,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존재로 오해를 샀고, 그런 오해들 덕분에 그들의 삶에 초대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인류학자로서의 내 정체성을 십분 이해했다면, 어쩌면 나는 그들의 삶을 관찰하도록 허락받지 못했을 것이다. (김희경, 얼음을 깨뜨리며: 일본 현장연구 과정에서의 해석과 갈등)
혼자 이해하고 납득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지연구에서 관건은 맥락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락을 쥐고 있는 주체에 접근하지 못하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주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나는 현지인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영혼 한 톨까지 끌어모아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썼다. 진심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했는데,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자처하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었다. (육수현, 두렵거나 비판하거나 납득하거나: 내겐 늘 낯선 베트남)
자료인지 확실하지 않았던 사소한 이야기나 정보가 새롭게 보이고, 경우에 따라 훌륭한 자료라는 걸 발견하게 된 것이다. 즉 모든 정보가 좋은 자료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의 뜻은 자료를 정리하면서 현지에서 연구할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양한 자료 간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현지 상황에 몰두해 있어서 생각하지 못했던 자료의 이론적 중요성을 알게 되었을 때, 일상적인 행동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자료가 현지 밖에서 분석해보니 그 지역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을 때 등이다. (노고운, 하지 않은 현지조사는 있어도 실패한 현지조사는 없다: 중국 옌볜에서의 2년과 그 이후)
논문 쓰기는 암벽등반과 같다. 올라가야 할 벽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체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넣은 뒤 내 몸을 지탱해줄 줄을 걸고 한발 한발 디딤돌을 찾아내어 정상까지 기어올라가는 것이다. 암벽을 오르기 전에 대강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연구 디자인이라면, 몸에 감은 줄은 연구질문, 딛고 올라갈 틈이나 등자는 구체적인 조사자료에 해당할 것이다. 등반가가 하나의 암벽을 올라가기 위해 모든 모서리와 틈들을 다 알고 경험할 필요는 없다. 전체를 파악한 후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길을 찾아내 단시간에 올라가는 것도 등반가의 능력이다. 안타깝게도 석사논문을 쓸 당시 나에게 현저하게 모자랐던 능력이다. (지은숙, “당신들은 왜 저항하지 않나요?”: 나의 일본 여성 연구 분투기)
현지조사 중인 참여관찰자로서 그 대화의 장면을 목도한 순간, 나는 내 현지조사의 가장 중요한 장면에 입회했다는 짜릿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주민의 일부로 현장에 잠입했고, 이미 주민과 반광산연대를 지지하는 편에 서 있었다. 현실의 사회문제에서 나는 대체로 약자의 편에 서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선악이 선명히 구분되기보다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회과학자로서 현안을 연구주제로 삼을 때마다 늘 고민에 빠진다. ‘저항의 기록’을 수행하는 순간, 연구자와 활동가 사이에서 경험하는 정체성 갈등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지역연구자들에게 큰 숙제임이 틀림없다. (엄은희, 개발의 현장에서 함께 싸우고 기록하다: 필리핀에서의 불의 세례 현지조사)
바리오 사람들에게 메트로폴리스의 중산층은 사회적 통합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서로의 존재가 탐탁지 않을 것이다. 급진적 사회개혁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계층과 변화를 추구하는 계층 간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 계층 간 단절이 공고화되고 분열된 사회가 추구하는 변화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같은 조건에서 연구자인 내가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나는 베네수엘라 사회의 변화를 지지하고 그 변화의 역동성을 연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자로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애초에 갖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정이나,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가 등장한 까닭은: 민중의 목소리를 찾아서)
참여와 관찰을 넘나들고 한국과 미얀마의 국경을 넘으면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나니, 이제 융합연구자로서 몇 갈래 교차로에 다시 서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융합연구자가 가진 학술적 한계와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하고, 우리나라 학계의 위계질서 속에서 경계인의 역할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 학문의 주변성을 한탄하기보다 여러 주제를 섞고 다양한 시공간을 비교하고 탐구하는 융합연구의 치명적 매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즐기며 다학제 연구의 미래가 아주 밝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의 관점에서는 경계인일 수 있지만 다양한 사회와 문화의 상층부와 하층부를 넘나들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연구자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홍문숙, 한 융합연구자의 경계 넘나들기: 전환기 미얀마의 교육과 개발협력)
출판사 서평
여성 지역연구 전문가, 긴박한 이슈를 통렬하게 해설하다!
최근 국내 방송과 언론 등에서 홍콩 시민 저항운동, 이란과 미국의 긴장 관계, 베네수엘라 사태를 비롯한 긴박한 국제 정세를 심층 보도하는 코너에서 그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신뢰도가 높은 논평을 전하는 몇몇 전문가들을 살펴보면 해당 지역에 들어가 직접 거주하며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한 여성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홍콩의 장정아(본문 1부 4장), 이란의 구기연(본문 2부 1장), 베네수엘라의 정이나(본문 3부 3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지역의 정치적 상황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배경, 그리고 해당 지역 사람들의 정서와 심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심도 깊은 전문 지식을 설파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어떻게 생소한 지역에서 국제적인 이슈가 터졌을 때에 이 “준비된” 여성 지역 전문가들이 우리 눈앞에 등장할 수 있었을까? 여성으로서 그들은 과연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이런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넘지 않은 선은 있어도 못 넘을 선은 없다! 여성 현장연구 연구자가 탄생하기까지
이 책은 온갖 사회적인 편견과 핸디캡, 그리고 “인생의 허들”을 뛰어넘으며 홍콩, 이란, 베네수엘라, 이스라엘, 중국, 필리핀, 일본, 미얀마, 베트남, 태국 등의 “준비된” 지역연구 전문가로 성공적인 자리매김한 여성 연구자 12인이 자신들의 연구 과정을 솔직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 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각 지역에서 고군분투한 현지조사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즉 현지에서 외국인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차별, “혼자 사는 여자”에 대한 주변인들의 시선, 신체적 성적 위협, 건강 상의 문제, 불안정한 법적 신분, 현지의 극도로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 각종 스트레스 등이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저자들은 과감하게 선을 넘은 여성 연구자들이라는 것이다. 먼저 여성이라는 사회적인 편견과 제약을 넘었고, 인생의 통과의례들(결혼, 출산, 육아 등)로 인해 생기는 고립과 좌절을 넘었으며, “유리 천장”에 저항을 했으며, “직업 연구자”가 되기 위한 개인적, 심리적, 체력적 선을 넘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영토적 경계를 넘어 낯설고 두려운 곳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기도 했다.
보통 지역 전문가가 되어 우리에게 좋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할 수 있기까지 어떻게 첫발을 내딛었고,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어려움을 이겨냈고, 어떤 연구를 하며 어떤 지식과 비전을 획득했는지를 풀어내는 책은 제법 많이 나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책은 매우 드문 편이다. 이 책은 여성의 입장이 고려되고,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피력되고, 여성의 시각으로 구성되고, 여성을 이야기하는 지역연구 책으로 첫걸음을 내딛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여성으로서” 해당 지역의 전문가로 조명을 받고 그들이 습득한 지식을 널리 공유하고 확장할 수 있는 힘을 얻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생생하게 고백한다.
이 책에는 장소, 사회, 문화, 사건 등 무수한 선을 넘으며 다른 세상을 연구하는 “여성 학자”로 거듭난 여성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은 결코 체현할 수 없는, 여성의 시각으로 현장(연구지역)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실재하는 여성을 발견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나의 현장”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관찰과 참여”를!
그런데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토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현지조사 매뉴얼북, 또는 전문적인 지침서로 읽혀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으로서 현지조사에 도전하는 사람이, 또는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을 고민하는 예비 여성 연구자들이 읽어야 하는 책으로 의도된 책이다.
이 책은 1부 “나의 현장, 바뀌어간 질문들”, 2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3부 “관찰과 참여의 경계 위에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선 채현정이 태국 북부 치앙라이의 국경교역을 연구하며 상인들과 함께 국경지역을 여행하고 동행하는 과정이 1장에서 그려진다. 2장에선 임안나가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이주광간과 공동체 형성을 보여준다. 3장에선 최영래가 중국의 연안이 사람들에 의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4장에선 장정아가 홍콩인의 경계와 정체성, 그리고 최근의 홍콩 사태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현지와 연구자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그 과정에서 질문과 문제의식이 계속해서 바뀔 수밖에 없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2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구자가 구축해온 세계와 현지인들의 세계가 부딪히며 발생하는 파열음과 긴장 관계를 성찰한다. 1장에서 구기연은 이란의 젊은 세대의 감정과 자아 연구를 통해, 통제와 검열이 심한 사회에서 연구 조사하는 연구자의 심리적 갈등과 성찰을 보여준다. 2장에서 김희경은 일본 농촌지역에서 한국인 여성이 겪는 갈등과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심리적 두려움, 그리고 이런 경험이 더 나은 해석을 낳을 수 있음을 그린다. 3장에서 육수현은 베트남 현지에서의 공감 능력이 타문화를 이해하는 문화적 해결법이 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4장에서 노고운은 중국 연변자치주에서 단독으로 장기간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여성 연구자가 겪는 어려움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여준다.
3부 “관찰과 참여의 경계 위에서”에선 연구자들이 관찰자의 위치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인들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며 역동적인 주체로 거듭나는 모습을 그린다. 1장에서 지은숙은 일본 여성의 삶의 결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연구자가 때로는 연구대상자의 조언자가 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2장에서 엄은희는 필리핀 정부와 다국적 기업의 일방적인 광산개발에 저항하는 NGO 및 풀뿌리 조직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싸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3장에서 정이나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바리오에 정착하는 이야기를 통해 연구자와 현지이인들이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4장에서 홍문숙은 미얀마 양곤 현지에서 동남아-국제개발-교육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연구자로서 혼란스럽지만 치열하게 겪은 학문적, 개인적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예비 여성 전문가를 위하여
이 책은 “배운 여자들”의 현지조사 후일담을 넘어서 있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서로의 현지 경험을 말하고 들으며 서로에게 공감하고 서로를 위로한다. 그럼으로써 다른 세계를 탐험한 여성 연구자들의 존재를 용감하게 세상에 보여주고, 동시대 여성 연구자들의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 실천으로 나아가고, 더 나아가 보편적 이론의 세계에 도달하는 데에 성공한다. 저자들이 수없이 질문들을 고쳐나가고 치열하게 해답을 찾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을 통해, 현지조사에 막 도전하려는 여성에게,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을 고민하는 예비 여성 연구자들에게,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디디려는 여성 도전자들에게, 또는 세상의 벽에 절감하며 움츠려든 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 | 엄은희 - 교보문고 (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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