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았거나 혹은 놓쳤거나
정재희
270사이즈 신발 한 켤레를 현관에 두었어요
그의 부재가 결핍은 아니지만
그냥 남자 신발 한 켤레쯤은 필요하네요
늦은 밤 허공에 고백하건대
내가 편안하지 않길 바라요
너무 느긋했거나 너무 순해서
갑자기 그리고 처음으로 놓쳐버린 것들
내가 다 감당할게요
이제 촉각을 돋우지 않으면
주체적이지 못하겠죠
장미와 프리지어가 다르듯
이혼과 이별은
별개의 태도와 자세
한낮의 햇살이
미세먼지의 스펙트럼 같아도
모두 받아들일래요
더러운 것도 아름다웠는데
이젠 아름다운 것도 불결해요
내 몸에 닿지 않게 피해야 해요
오늘은 손잡이를 스무 번도 넘게 닦았는걸요
손등이 짓무르도록 씻었어요
쉿, 비밀이에요
제 뇌리엔 수많은 예민선線이 매설되어 있어요
아무도 모를 노선을 따라
말풍선이 달아나는 꿈도 꾸어요
아슬아슬 멀어져가는
놓쳤거나 혹은 놓아버린
당신과 나만이 아는 순간들
카페 게시글
추천시, 산문
놓았거나 혹은 놓쳤거나 /정재희
함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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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
23.10.10 13:2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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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백 같은 글입니다
어쩌면 쨘 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