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3. 큐티
마태복음 27:33 ~ 44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관찰 :
1)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
- 33절.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 예수님은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장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골고다는 죽음의 언덕이고, 수많은 죄인들이 십자가, 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한 장소였습니다.
- 34절.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 무리들은 관습대로 쓸개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 포도주는 약간의 몰약을 가미하여 약한 마취 효과를 통해 극한의 십자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하게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쓸개탄 포도주를 거부하셨습니다. 인간이 받아야 할 고통을 다른 것을 대신하여 감면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만일 이 때 고통을 회피하시기 위해 마약이나 마취제 등을 사용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나음을 입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고통을 온 몸으로 받으셨기에 주님의 십자가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실재가 되는 것입니다.
- 35절.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었습니다. 시편의 성경을 이루시고자 함이셨습니다. 가진 모든 것, 지니고 있는 모든 것 마져 빼앗기신 벌거숭이의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죄악을 뒤집어쓰고 가장 추악한 재판을 통하여 가장 위대하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수치를 당하시고 죽어가게 되었다는 역설입니다. 이러한 연약함이 오히려 음부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어느 인간도 이루지 못한 구원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위해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실오라기 남기지 않고 모두 내 주신 것입니다.
- 36절. “거기 앉아 지키더라” => 당대의 최강부대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본 것입니다. 이들은 만약에 향후 예수가 죽지 않았다면 책임을 물어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예수가 죽지 않았는데 죽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정말로 사망하셨고, 그 증인들이 로마 장병들이었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
- 37절.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 진짜 유대인의 왕에게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붙여놓고 비웃고 있는 무리들과 사탄의 완악함과 부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 38절.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 예수님을 강도와 같이 취급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너무나 완악한 자들의 궤계였지만 주님은 그것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요소가 되게 하셨습니다.
- 39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예수님의 처형이 공개적인 것이고, 사람들이 흔하게 지나다니는 곳에서 행해졌다는 증거입니다.
- 40절.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 이들의 이 고백이 얼마나 무섭도록 성취되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전이 상징하고 있던 예수님의 몸인 성전은 사흘 만에 회복되었습니다. 그것도 온전한 부활체로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자신의 힘이 아닌 죽음으로 타인에 의해 십자가에서 내려지게 되었지만 결국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의 방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조롱한 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그 모든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한 것입니다.
- 41절 ~ 42절.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함께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예수님이 남을 구원하실 수 있었던 분이라면, 그가 바람과 파도, 질병과 영적 존재들, 죄악도 다 다스리시는 분이셨는데 그런 분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어 십자가에 그렇게 쉽게 매달려 죽임을 당하다고 보고 있는 미련한 자들의 추악한 비아냥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물 위를 걸으신 분이시고, 모든 천하만물이 복종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이렇게 놀리고 있는 인간들의 무식하고 미련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긴 줄 알고 이러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못 박힘은 자신들의 승리로 여겨진 행위였습니다.
- 43절 ~44절.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 이들 중에 한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태도를 보고,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과 더불어 낙원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기가 막힌 은혜를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욕한 강도에게도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가르침 :
1)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넘겨져 십자가 형을 받으신 후에 로마 군병들에게 온갖 희롱을 당하시고, 자신이 못박힐 나무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셨습니다. 계속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 고백하고 증언하는 진실들입니다. 곧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라는 것,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 무리들은 예수님을 비아냥 거리기 위해서 동원한 수사들이지만 사실은 진짜였던 것입니다. 이 무시무시한 역설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2) 예수님은 그렇게 조롱받으시고, 찢기시고, 고난을 당함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사야의 모든 고난받는 종의 예언을 다 이루시고 구원자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3) 오늘의 본문은 참혹한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하나하나의 표현과 과정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산물들이었습니다.
적용 :
1) 역설을 이루시는 주님의 방식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힘으로 한다면 주님이 그 까짓것 로마 군단 수백 수천 개가 있던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주님은 자신이 죽으심으로 예수님을 공격하고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그들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사셨건만 나는 왜 그렇게 못살겠다고 미리 전제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죄성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나도 가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 “하나님의 아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는 분”,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이십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을 조롱하는 자들의 고백이었으나 진짜였습니다. 오직 주님만 진짜이신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3) 망한 것 같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되면 완전한 반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가장 낙담하게 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도리어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주님의 손에 붙잡힌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