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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서점에 갔다가 삼국지 인물열전이라는 책이 있길래 구입해봤는데요.
위,촉,오,후한의 인물들이 거의 빠짐없이 소개되고 삼국지 게임의 열전같이 쓰여있습니다.
걸출한 인물들은 능력치까지 써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곤 했죠.
그러다가 궁금한게 생겼는데요. 바로 유표와 황조의 관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황조는 마치 하나의 독립세력같이 느껴졌습니다. 유표의 부하가 아니라요.
황조는 강하의 태수로 유표의 신하죠.
근데 의문이 드는것이 둘은 주군과 신하의 관계이지만 삼국지를 읽다보면 황조는 마치 하나의 독립세력같이 묘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수들 중에서도 몇몇은 황조의 부하장수라고 소개가 되기도 하구요. 황조는 유표의 신하이니 유표의 부하장수라고 나와야 하는데 표면적으로만 그럴뿐 실제로는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삼국지 내용중에서도 원술의 요청을 받은 손견이 유표를 공격하지만 황조와 싸우다 전사하죠.
이때 복수를 외치는 손책은 황조의 군주인 타도 유표를 외쳐야 하는게 맞지만 황조에게만 복수심을 불태웁니다.
다른 사례를 봤을 때(유비의 이릉전투같은) 황조를 넘어 유표에게 복수심을 불태워야 하는데 말이죠.
또 삼국지 내용중에서도 황조는 다른 인물들 덕분에 꽤 많은 등장을 하지만 유표와의 관계는 하나도 묘사되지 않습니다.(이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어떤 연유로 이렇게 된건지 참 궁금하네요.
하나의 세력으로 올라오던 황조를 유표가 감싸안아서 그 안의 작은 세력처럼 전권을 부여한것으로 보아도 되나요?
고수분들의 많은 고견 부탁드리겠습니다.
첫댓글 뭐 지방호족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나라 같은경우는 아예 대놓고 지방호족집단이었구요..
황조같이 영지를 떠나지않고 죽을때까지 지키는 경우라면 지방호족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런지요..
손책이 거병했을 때 주유가 군선을 이끌고 합류했다고 알고있는데 이것도 주유가 사병을 훈련시키며 때를 기다리다 합류한것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그 병사들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궁금했었습니다..ㅎㅎ
중앙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호족들이 실권을 잡고 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주군 - 가신관계와는 상관없는 사병조직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오나라가 대표적이지요. 오군은 대부분이 그런 호족들의 사병집단 연합체로 군사력을 운용했습니다. 아마 황조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사병조직을 활용하고 있지 않았나 싶네요.
그당시 태수가 자사의 지시를 받으나, 자사-태수는 관위상 동급이었으므로 군신관계라기 보다는 맹주-군벌 관계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형주는 유표의 것이고 황조가 유표의 아래에 있었다는 정황적 증거(?)라고 할만한게 있는데, 황조 사후 황조의 아들이 아닌 유표의 아들 유기가 강하의 태수로 있었다는 겁니다.
표본이 적으니 유추에도 한계가 있네요 윗분들 말씀에 동의하고 하나 더 유추하면 손권이 감녕을 앞세워 강하를 습격하는데 유표는 이를 방치 했죠 휘하 군벌로 보는것이 더 가깝겠습니다 아니라면 강하를 놔두고 후퇴했겠죠 황조입장에서는 세력권을 잃고 후퇴하는것보다 항전을 택합니다
애초에 중앙정부의 통제가 먹히지 않는 시대였죠. 한 전성기라면 황제가 자사를 제어하고 관위상 동급이라도 직급이 위인 자사가 태수를 충분히 컨트롤했겠지만, 유표가 한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았으니 유표-황조의 관계도 비슷했을 거란 추정도 가능하고요. 실제로 어땠는지는 사료 자체가 부족하니 알기 어렵긴 합니다. 그래도 원술-손견의 관계처럼 황조도 유표의 세력에 속했던 것으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야에 자리한 유비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