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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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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법칙>
법칙 35. 서로에게 역사를 남긴다는 것은.
옛날에, 그러니까 옛날이라고 해봤자 십년, 이십년 되돌릴 것도 없이 3년 전쯤. 세상에 응애하고 태어나 스물다섯해째를 무사히…
아니, 무사히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그럭저럭 보내고 있는 내가 스물두살쯤 됐을 때 미친듯이 책을 읽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교양, 덕목, 지식, 상식 뭐 이런 자질구레한 것따윈 필요없고 단지 벌렁거리는 심장만 있으면 재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볼 수 있는 할리퀸, 즉 두근거리는 로맨스 소설만 골라서.
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 굉장히 바쁘게 영화사에서 촬영보조로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뻔한 사랑 구절을 읊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러니 넌덜머리가 난다고 사장오빠에게 푸념하자 오빠는 웃을 듯 말 듯 날 쳐다보며 로맨스를 좀 읽으라 했다.
“고딩때도 안읽던 걸 말이지.”
책이라고 취급도 해주지 않던 로맨스였다. 그런 싸구려 글들을 지금 고귀한 내게 읽으라고 하는 거냐고 반문하자 사장 오빠는
금세 정색한 표정으로 ‘사랑에 대한 두근거림도 없이 사랑을 촬영할 셈이야? 그러면 너도, 영화도 밋밋해질 뿐이야.’라고 했다.
결국 밑져야 본전, 아니 밑져야 닭살 돋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근처 만화방에서 빌려 읽는다는게… 중독되어버렸지.
‘닭살이야!’ ‘으헉!’ ‘뻥!’ ‘오메오메!’… 기타등등, 다양한 반응을 내보이면서도 로맨스를 끊을수가 없었다.
물론 무척 재미있었고, 그 이후로 닭살돋는 멘트를 내뱉는 배우를 조금 더 예쁘게 촬영할 수 있는 감정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설마 내가 그런 사랑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흐음…….”
어렴풋 잠이 깬 것 같았으나 다시 잠들어버린 것인지 베개에 편하게 얼굴을 묻는 독고산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약 99퍼센트) 커플들이 모두 결혼도 하기 전에 잠자리부터 가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니, 그렇다고 내가 딱히 혼전순결을 고집하는 보수주의라는 말은 아니고 어쩐지 ‘처음은 신혼첫날 밤에♡’하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헌데.
“남자랑, 그것도 인기 초절정에 약혼녀까지 있는 독고산하랑 이렇게 될 줄이야.”
후회? 아니, 그저 정말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이처럼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독고산하의 모습을 보니 그 품에 파고들어 더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내 생체리듬은 얼마나
정확한던지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제발 쳐먹어! 라고 외치는 내 위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아래에 널브러진 팬티를 집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예쁜 팬티 입고 올 걸…….
아무런 무늬 없는 심심한 하얀 면팬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와 독고산하의 뜨겁다 못해 급 진행된 사태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브래지어가 거실 바닥에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이 바닥에서 나뒹굴었으니 온 몸이 시려웠겠구나. 미안하다 내 브래지어 속 와이어야.”
제멋대로 널브러진 브래지어가 ‘맘대로 해! 우리도 모양 삐뚤어지면 그만이야! 그럼 네 가슴도 안예뻐질걸?’이라고 항의하는 것
같다.
윽.
대충 브래지어까지 걸친 뒤, 소파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티셔츠를 입었다.
…아, 이거 내가 벗긴건데.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입기엔 제법 컸는지 허벅지를 살짝 덮는 티셔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보통 이럴 땐 새하얀 와이셔츠가
더 섹시한 법인데… 어쩔 수 없지 뭐.
“근데 얘네 집 뭐 해먹을 건 있나?”
냉장고 열어보니 맥주만 가득하더라… 라고 황가철씨 집에 다녀온 뒤 푸념아닌 푸념을 늘어놓던 다솔이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이 집도 그런 거 아냐?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빈속이라 맥주만 마시기는 쫌…….
머리를 긁적이며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날 반기고 있던 것은 생긋생긋 웃는 것
같은 밑반찬들이었다.
그래, 잊고 있었다. 독고산하 어머님이 꼬박꼬박 밑반찬 챙겨보낸다는 거 예전에 죽 끓여주면서 확인했었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이네, 라고 조용히 읊조리며 냉장고 문을 다시 닫고 전기밥솥을 열었다.
‘아잉, 나 이제 하얀 쌀 만나는거임?’라고 두 눈을 빛내는 것 같은 전기밥솥의 텅 비어있는 속알맹이를 보다가 하하 웃어버렸다.
누가 독고산하 집 아니랄까봐.
“아, 밥하는 거 귀찮은데.”
“…선반에 햇반있어.”
“깼어?”
조용한다고 조용했는데 시끄러웠나? 독고산하 깰까봐 텔레비전도 켜지 않았는데. 완벽하게 잘생긴 줄만 알았던 연예인도
사람은 사람이었는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나오는 녀석은 살을 섞은 것때문인지 꽤 친근했다.
…그래도 잘생겼지만.
“응. 배고파서.”
“에? 나도 그랬는데.”
애초에 요리를 할 생각은 없었는지 부엌으로 오지도 않고 낼름 소파에 앉아버리는 독고산하가 조금 얄미웠지만 바지만 걸쳐입고
상체를 드러낸 모습이 꽤 봐줄만 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주기로 했다.
독고산하는 햇반이 있노라 말하고는 소파에 앉은 채 무의식적인 건지 냉큼 리모컨 버튼부터 눌렀다.
「벌써 단풍이 내려앉았습니다. 아직 늦더위가 기승인 요즘, 급한 마음을 참지 못한 북쪽지방의 단풍들이 등산객들을 맞이합니다.
등산객들은 오이와 사과를 나눠먹으며 산 정상에서 혹은 산 중턱에서 삼삼오오 단풍과 사진을 찍고……」
뉴스인건가.
힐끔 시계를 보니 드라마 재방송을 마구잡이로 내보내거나 정보프로그램들이 쏟아져나올 시간이었다. 오후 3시니까.
뉴스도 할 수 있겠군 이라고 나름대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햇반을 꺼내 렌지에 돌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소파에 앉아 물끄러미 텔레비전을 쳐다보던 독고산하가 중얼거렸다.
“데이트…”
응?
정말 미안하지만 들었다. 독고산하가 내뱉은 세글자도 들었고 그 뒤 어색하게 끊어진 침묵도 모두 주워들었다.
그런데도 되묻게 된다.
응? 이라고.
…상상이 가는가? 상상이? 그 독고산하가! 천하의 독고산하가! ‘데이트…’라고 중얼거리는 광경이? 응? 으응?
“어? 뭐?”
“…하는 커플이 있어서.”
아아. 그래. 어어. 그러니.
…아, 쉬발. 뭐라고 반응해야 할 지 모르겠어. 심지어 손 끝이 덜덜 떨려와!
“커, 커플이면 데이트는 다 하잖아? 단풍 구경도 가는 거고 수영장도 가는 거고… 뭐, 놀이공원도 가고. 안그래?”
“그런가.”
“에? 뭐야 그 시큰둥한 반응은. 내가 너 나오는 드라마 몇 번 봤을 때도 너 데이트 중이었는데.”
“그건 연기니까. 진짜는 해본 적 없고.”
에에?
아무렇지 않게 심드렁이 말을 내뱉고 베란다쪽 커텐을 걷는 녀석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데이트를 못해봤다고?
이 나이 쳐먹도록 뭐했어? 절에서 도 닦았어? 성당에서 신부 수업했어? 뭐야?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잖아?
오후 세시라는 시간적 특징때문인지 쏟아져들어오는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녀석을 향해 꽂혀버린 내 시선을 느낀 듯
독고산하가 살짝 고개만 돌려 날 쳐다보며 말했다.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이래봬도 연예인이다, 나.”
“아…”
“그보다 너, 괜찮은거야?”
응? 뭐가?
밑도 끝도 없이 괜찮냐고 물어오는 녀석의 물음에 의아한 시선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독고산하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니 이봐, 첨부설명은 해줘야지.
물끄러미 녀석의 시선을 받아내다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슬쩍 입을 열었다.
“응? 응, 몸이라면… 그냥 견딜만한데.”
사실 로맨스 소설에서 본 것처럼 ‘어머 황홀한 밤이였어!’라고 떠들만큼 마냥 좋은 건 아니지만 그 순간 사랑받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독고산하는 날 번번히 거절한 것이 날 상처입혔다 생각한 것인지 꽤 부드러운 손길로 관계 도중에도 머리를 쓸어넘겼고,
관계가 끝난 후에도 날 꽉 끌어안아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뭐… 뭐…… 아, 시발 부끄러.
“몸이 괜찮다니 다행이지만, 내가 물은 건 데이트 같은 걸 못해도 괜찮냐는 거였는데.”
“…에?”
그럼 나 삽질?
“평범하지 않잖아. 보다시피 직업이 이러니 공개 데이트는 꿈도 못꿔. 특히 약혼건 정리할 때까지는.”
“아…?”
“뭐야? 그 표정은. 설마 내가 약혼녀도 만나고 너도 만나는 파렴치한인 줄 알았냐?”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당장은 어렵겠지만 천천히 정리해야지.”
녀석의 말과 동시에 렌지가 ‘띵!’ 소리를 내며 햇반이 다 되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엉거주춤 렌지로 다가가 햇반을 꺼내들고
식탁에 올려두었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들도 꺼내서 식탁에 올려놓다가 ‘이걸 접시에 덜어야할까?’하고 잠깐 고민했지만 귀찮았기 때문에 패스.
대충 소박한 식사를 차리고나서 녀석을 쳐다보자 독고산하는 별다른 말 없이 식탁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보다 그거 내 티셔츠 같은데.”
“응? 응, 맞아. 왜?”
“…아니. 그냥 좀…”
“좀 뭐? 좀 섹시해?”
“…익숙해서.”
거짓말이라도 섹시하다고는 안해주는구먼.
“익숙해? 뭐가?”
“자다 일어났는데 네가 내 옷을 입고 우리 집 부엌에 있는 것.”
그리고선 독고산하는 나지막이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녀석의 무덤덤한 태도와는 별개로
난 무척이나 부끄러운 기분 때문에 한동안 젓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별다를 것없는 대화였지만 꼭… 꼭 부부 같잖아!
“안먹고 뭐해? 입맛 없어?”
“어? 아니, 아니야. 나도 배고파서 깼다니까? 이거 어머님이 해서 보내시는 거지? 솜씨 좋으시더라.”
“…아주머니 솜씨가 좋은거야.”
아, 부엌에 계시던 그 분.
그걸 꼭 정정해야겠니, 이 불효자야. 하지만 어쩐지 그것도 너 답긴 하다만.
결국 피식 웃으며 젓가락으로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먹는데 내 것이 아닌 다른 젓가락이 내가 계속 먹지 않고 있는 나물을 집어
햇반 위에 올려놓았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독고산하가 무덤덤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편식하지마. 안예뻐.”
…헉!
이것이 연애라는 건가? 응? 그런건가? 독고산하가 나한테 반찬을 집어줬어! 편식하지 말래! 편식하면 안예쁘대!
벙찐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보자 독고산하가 ‘왜?’하고 날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내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약간은 뾰루퉁하게 녀석을 향해 물었다.
“그럼 편식 안하면 예뻐?”
“…초딩이냐.”
그럼 그렇지. 독고산하의 그 싸가지가 어딜 가겠냐.
‘초딩…’하고 나지막이 읊조리며 녀석이 집어 준 나물을 입에 넣었다. 맛없어 보여서 건드리지도 않고 있었는데 오물오물
씹으니 달콤쌉싸름한게 꽤…
“맛있냐?”
“어? 응. 이거 무슨 나물이야?”
“몰라. 그냥 보내줘서 먹는거야.”
나중에 무지개 색깔 뽐내는 독버섯 보내줘도 ‘오, 보내줬네. 먹어야지.’하고 먹을 놈이야 넌.
꽤 배가 고팠는지 부지런히 밥을 먹는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스치듯 지나간 데이트가 다시 생각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난 머저리가 아니라 연애를 해봤다. 비록 그게 단기간일지라도. 그래서 놀이공원도 가봤고, 바다도 가봤다.
하다못해 동네 공원이라도 가봤다.
연기가 아닌 진짜 데이트는 한번도 즐겨보지 못했을 녀석을 생각하니 뭔가 묘한 우월감이 들기도 하고 안쓰러움이 들기도 했다.
만약 내가 녀석과 데이트를 한다면 ‘진짜’ 데이트를 한 여자는 내가 처음이 되는 거네? 그건 주아라는 여자도 못해본 거겠지.
흐음…….
“우리… 데이트 갈까?”
“잠이 덜깼냐.”
“에? 왜, 데이트 좋잖아. 만약 내가 너랑 데이트하면 네가 데이트 한 여자는 내가 처음이잖아? 그건 역사의 첫 페이지가 되는 거야.
멋있지않아?”
“하?”
“언젠가 네가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환갑이 되어도 ‘첫 데이트’의 상대가 나라는 건 변함이 없잖아? 말 그대로 난 너한테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처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추억의 부스러기니까.”
“꼭 추억 속에만 남을 사람처럼 얘기하는군.”
“내가 그렇게 얘기했어? 아무튼 처음이란 건 멋있는거라고. 쉽게 잊혀지지도 않고. 첫사랑, 첫키스, 첫데이트, 첫만남… 처음은
쉽게 못잊지.”
“그래서 첫데이트의 타이틀만 남기고 넌 증발하겠다?”
내가 말을 할 때 자꾸 이상한 뉘앙스를 풍겼나?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
은근 삐딱선을 타는 독고산하의 말투에 숟가락으로 녀석의 머리를 탁 때리자 꽤 아팠는지 독고산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날 쳐다보았다.
“미쳤냐?”
“뭐?”
“내가 증발하게? 난 거머리처럼 너한테 붙어서 네 양기를 쪽쪽 빨아먹을거야.”
그렇게 얘기하며 콧방귀를 흥! 하고 껴주자 독고산하는 결국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떠드느라 아직 반도 못먹은
나완 달리 녀석은 이미 한그릇을 뚝딱 비운 상태였다.
“네가 나한테 첫 데이트의 역사가 되면, 난 너한테 무슨 역사가 되는데?”
“응? 그거야 당연히 ‘첫 경험’의 남자.”
“흐응-”
“뭐야? 그 만족스러운 미소는. 하여튼 남자는 다 똑같다니까. 밥 더줄까?”
“아니, 괜찮아.”
녀석은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줄 셈인지 밥을 다 먹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꼴에 매너는 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숟가락을 움직이는 내가 독고산하는 종종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주었다.
우와, 어쩐지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야.
“이거 쫌 부끄럽다.”
“뭐가?”
“네가 반찬 집어주는 거. 우리 엄마도 잘 안하는 짓인데.”
“…먹기나 해.”
말은 그렇게 해도 이젠 아예 내사 한숟가락 먹을 때마다 반찬을 집어주는 녀석의 태도에 내가 피식 웃어버리자 녀석도 피식
웃어버렸다.
어쩐지 연애하고 있어요-라는 건 이런 걸까나.
머리를 긁적이며 밥을 입에 넣은 채 오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밥 먹을 때 말하지 말라고? 훗, 나한테 그런 건 없어.
말하고 싶으면 말하는 거지.
“근데 나 진심으로 내뱉은 말인데.”
“밥 먹으면서 입 열지마. 다 튀잖아.”
“안튀었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먹던 게 조금 튄 건데 뭐 어때. 더러워? 그럼 키스는 어떻게 해?”
“…그래 네가 이겼다.”
“아무튼 나 진심이라고.”
“그러니까 뭐가.”
“데이트 말이야. 데!이!트!”
그러면서 살짝 윙크를 동반한 채 ‘데이트라고 아나? 데이트?’라고 말하며 하트를 날리자 독고산하의 미간이 묘하게 좁혀지더니
곧 녀석이 나물 반찬을 올려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너… 뇌 검사 다시해봐야하는 거 아니냐.”
“뭐? 야, 남이 진지하게 데이트 얘기하는데 뇌 검사가 뭐냐, 뇌 검사가.”
“데이트 못한다니까. 재수없게도 이 몸이 너무 유명하셔서 명동에 발 내딛는 순간부터 인파가 몰려들거다. 근데 무슨 데이트를
하려고. 사람 바글바글한 거리에서 사람에 둘러쌓여볼래? 졸지에 이산가족 될 걸.”
“야,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거냐? 이 민초하님,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 아니시거덩? 나만 믿어.”
그러면서 씨익 웃자 독고산하가 ‘이게 진짜 멍청이가 됐나.’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결국 마지막을 장식한 건 러브러브러블리한 키스가 아니라 숟가락이 오고가는 마빡 때리기가 되었지만.
*
“짜잔! 자유이용권!”
뚱뚱한 여자 매표소 직원이 사무적으로 ‘즐거운 시간되세요.’라고 말하며 내 얼굴은 쳐다도 안본채 티켓을 건네주었다.
아무렴 어떠랴? 데이트인데.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뭐가 못마땅한지 홈캠코더를 들고 날 빤히 쳐다보고 있는 녀석을 향해 자랑스레 표를
흔들어보이자 녀석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미쳤냐?”
“뭐가? 어차피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잖아. 줄도 오래 안설테고, 모자도 썼잖아. 뭐… 걸리면 영화에 들어갈 ‘특별한’ 장면을
촬영하러 왔다고 둘러대면 되잖아. 난 촬영 감독이고, 넌 배우니까. 캠코더도 있고.”
“태평한건지 멍청한건지.”
“똑똑한거라고 해줘. 아무튼 들어가자. 나 청룡 열차 타고 싶어! 바이킹도!”
그러면서 녀석의 손을 잡아 이끌자 녀석은 탐탁치 않아 하면서도 내 손에 이끌려 놀이공원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촬영팀을 동반하지 않은 채 놀이공원을 찾은 것은 (그것도 순전히 즐기기 위해) 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어릴적
이후로 처음인지 녀석은 흠칫-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신기해?”
평일이라 정말 다행이야.
아주 한산하다-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북적거리지는 않는다. 다행히 소풍 나온 중고등학생이 없어서 꺅꺅 거리며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도 없었다. 게다가 중고등학생들의 연예인을 향한 열망은 무한한 것이라서, 게중에 눈썰미 좋은 녀석들이
독고산하를 알아보지 못하리라 보장할 수 없으니 그들이 없다는 건 정말 다행 중에 다행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녀석을 향해 나지막이 묻자 내가 잡은 손을 굳이 뿌리치지 않으며 녀석이 답했다.
“아니.”
“그럼?”
“허접해서.”
…아니 뭐 이런 베베꼬인 쌍쌍바같은 새끼가.
녀석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녀석이 들고 있던 홈캠코더를 빼앗았다. 녀석은 내가 손을 풀렀다는 사실이 내심 못마땅했는지
얼굴을 찌푸린 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하는 눈초리가 꽤 짜증이 묻어있는 꼴을 보니 초딩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게 왜 허접해? 이정도면 훌륭하다고. 나 어릴 때 여기서 퍼레이드 하는데 백설공주 보고 엄청 울었단 말이야.”
“왜?”
“백설공주 가슴이 짝짝이라서.”
“…뭔가 맥 빠지는데.”
하지만 어린 내 눈에 백설공주의 가슴이 짝짝이인 것은, 왕비를 담당한 사람이 여장을 한 남자배우라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엄마, 백설공주 가슴이 이상해!’라고 일곱살짜리가 우렁차게 외쳤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게다가 미친듯이 울어재꼈으니.
…백설공주는 외쿡인이라서 내 서툰 한국말을 잘 못알아 들었을테지만 어쩐지 그래도 무척이나 미안해지는군.
“가자. 바이킹 타고싶다며.”
“어? 응!”
캠코더에 전원을 켜고 녀석을 찍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다시 잡으며 바이킹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녀석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캠코더로 촬영하다가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잘생기긴 했다.
“야.”
“응?”
느닷없이 불려진 부름에 고개를 들자 정말 어찌할 틈도 없이 녀석이 내 손에 들려있던 캠코더를 휙 빼갔다. 뭐, 뭐야?
“억! 그거 전원 켜져있는건데!”
“오늘은 위치 바꿔.”
“에?”
“난 만날 촬영 당하는 입장이니까 오늘은 너가 좀 찍혀보라고.”
“아니 누가 이거 장난으로 가져온 줄 알아? 데이트 걸렸을 때 둘러대려고 가져온 거란 말야. 게다가 촬영감독을 찍으시겠다?
흐음, 허접한 영상이 나올 게 뻔한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안 허접해.”
에?
너무나 단호하게 내뱉어지는 대답에 뭔가 뭉클-하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건 뭐 촬영 당할 사람이 예뻐서?
약간의 기대치를 담고 녀석을 쳐다보자 독고산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캠코더 렌즈를 들이밀며 말했다.
“내가 찍는 거니까.”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냐. 앓느니 죽지.
“아, 네. 맘대로 하세요, 맘대로.”
니가 이겼어 인마.
*
“아, 나 발바닥 아파.”
바닐라 쉐이크를 손에 쥔 채 벤치에 드러눕듯 앉으며 말하자 독고산하가 일어선 채 날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일곱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늦여름은 늦여름인지 해지는 시간이 빨라져 벌써 석양이 지고 있었다.
붉게 노을지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그걸 등지고 선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후광을 달고 살아라 달고 살아.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녔으니 지칠만도 하지.”
“하지만 재미있는 걸 어떡해? 나도 정말 오랜만에 왔다고. 그리고! 너도 은근 즐거워했잖아.”
“뭐… 소리지르는 네가 웃겼으니까. 멍청이가 따로 없던데.”
미안하다 멍청이라서.
벤치에 늘어진 채 으하- 하고 숨을 토해내자 녀석이 피식 웃더니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쓱- 훑고 지나갔다. 손 끝이 차갑기도
했거니와 마빡이 정통으로 금간 곳이라서 움찔하고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녀석의 시선이 살짝 서늘해진다 싶더니 이내 나지막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프냐.”
“아니, 놀라서. 네 손 엄청 차가워.”
“고맙지?”
“응?”
“손 차가워서. 여름에 데리고 다니기 좋잖아.”
“응. 그거 겨울엔 따듯해져?”
그러자 돌아오는 것은 ‘이게 진짜 바보인가.’하고 날 쳐다보는 시선뿐.
아, 미안하다. 농담이었는데.
“아무튼 오늘 재미있었지? 첫 데이트치곤 완벽한 추억거리 아니냐? 내가 독고산하랑 바이킹을 타고 청룡열차를 타고… 밥을
먹고. 남들은 상상이나 할까? 나도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앞으로”
“음?”
“더 많은 것들을 함께 할 거야.”
이 닭살.
그런데도 좋은거보면 나도 제대로 콩깍지.
어렴풋 사랑받고 있구나 라고 느껴져 나도 모르게 베시시 웃으며 녀석을 쳐다보자 녀석이 물끄러미 날 쳐다보았다.
녀석에게 몸을 좀더 숙여보라고 손짓하자 의아한 표정으로 살짝 몸을 굽힌다.
말도 잘 듣지.
어느정도 가까워진 녀석과의 거리를 보며 살짝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지? 아무도 없는거 맞지?
「쪽」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녀석과 내 입술.
내가 설마 이런 공공장소에서 대담하게 뽀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독고산하의 눈이 잠시 커졌다.
우와, 놀랐어. 동요했어!
헤헤 하고 웃으며 녀석을 쳐다보자 독고산하가 살짝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여차할 틈도 주지 않고 재빠르게 내 목덜미를 감쌌다.
그리고는 어어? 하는 사이에 다시한번 자신의 입술과 내 입술을 만나게 해주었다.
…안녕 입술들아. 인사 나누렴. 이쪽은 독고산하씨 입술이고, 이쪽은 내 입술… 내가 뭐라니 지금.
“하아…”
녀석의 입술은 가벼운 뽀뽀로 끝나지 않았다. 모카향이 짙은 녀석의 커피향이 입안으로 파고 들었다. 숨쉴 틈도 주지 않은 탓에
살짝 숨을 내쉬어보지만 그 숨결마저 녀석이 삼켜버리고 만다.
그 숨결에 함께 흘러들어간 바닐라 쉐이크 향이 꽤나 달달했는지 녀석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지만 곧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녀석의 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느꼈는지 독고산하가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내게서 입술을 뗐다.
이윽고 녀석은 가벼운 마무리를 짓듯 이마에 상처부위를 피해 쪽-하고 입술을 맞췄다.
“스킨쉽은…”
“에?”
“이정도는 해야지.”
‘안그래?’하고 장난스레 물어오는 녀석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제서야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너…!’하고
소리쳐보지만 이미 녀석은 듣는체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드문 벤치에 앉아 ‘이 변태!’를 외치는 나와 ‘누가 먼저 시작했더라?’하고 능청스레 반문하는 녀석은 누가 보아도 우리
사귀어요- 라는 오로라를 마구마구 풍겨내는 커플이었다.
그것에 취해버린 탓이었을까.
「찰칵」
「찰칵찰칵」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은.
***
날씨가 추워서 어디하나 얼어붙어 터질까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었더니 발바닥이 뜨끈뜨끈하네요. 온돌바닥에 배깔고 누워버린
고양이마냥 헤실헤실 붉어진 얼굴로 햐아♡_♡
난 지금 너모너모 행복해를 외치고 있습니당.
읽어준 분들과 꼬리말 달아준 모든 분들 추운 날씨 옷 따숩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시는 거 잊지 마셔용 알라뷰♡_♡
야호♬ 올림.
첫댓글 앗, 첫번째네요. 기분좋은데요? 하. 뽀뽀♡ 사진은.. 팬 or 기자! 벌써 밝혀지는 건가요. 봐도봐도 재밌는 야호님소설! 항상 응원하고 있을게요 건필하세요~
찰칵찰칵 누굴까요? 완전 궁금해요~~
꺅, 너무 재밌어요 ~ 근데, 여름일 수록 ㅠㅠ 해가 늦게 지지 않나요?
하... 찰칵 하는 저건 누구일까요... 잡히면 칵 >,<! 우리 초하와 산하의 사랑을 방해하려하다니!!1
찰칵찰칵 해주였음좋겠다><
헉!!찰칵찰칵 어떻게 누구지?
작가님~~ 초하랑 산하 방해하는 것들은 조용히 다 빼주세용ㅋㅋㅋㅋ얘들 힘든건 싫어용 ㄴ무이러ㅣㄷ니ㅠㅠㅠ
아 야호님 소설은 손발오그라드는 대사가 없어서 좋아요....흐흐
★
찰칵찰칵이라니 ....이런 못되먹은사람같으니!! 저럴땐그냥 못본척..뒤에서숨어서봐주다 가야하는거야 임마! ...ㅠㅠ?
※ 왠지 뭐가 터질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우제기랄 고마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쉬벌....암튼. 이제 시험친다고! 한 몇주 컴을못할듯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셤치고뵈여+_+
안돼ㅠㅠㅠㅠㅠㅠㅠ벌써 들켜버리나요?ㅠㅠㅠ
흠... 누구지...
헉 ! 누가 또 사진 찍어댄거야 ㅜㅜ
어... 마지막에 찰칵소리 무서운데요.. -_-;; 사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작가님 제발 비극같은 건 없게 해주세요.ㅠㅠ
악 어뜩핵 ㅠㅠㅠㅠㅠㅠ 이제막 알콩달콩하는데 ㅠ
안대!! 다치게 해주시지 마세요!!ㅠ
엥? 뭐야 들통난건가.........걍확들통나서 공개적으로 사귀면 되ㅈ...아그럼산하입장에서 곤란해질라나......ㅠ_ㅠ이게얼마만에 온 닭살인디...
으악, 도대체 누가 사진을!!! 이러다가 서로 사랑한지 하루만에 들통이나면....불쌍해서 어째요 ㅠㅠ 제발 아무일없기를...
첫편에만 덧글 달고 여기와서 덧글 달아드리기가 참 죄송해지네요, 그래도 시험기간인지라 차마 다 못달아드린 것도 있고, 물론 이건 변명이겠지요. 야호님 소설은 참 오랜만이네요, 그 때 보았던 그 소설보다 훨씬 더 성숙하시고 좋은 문체로 발전하셔서 흐뭇한 마음도 들고, 아. 정말 산하에 대한 두근 거림 때문에 사실 편수 지나치고 무작정 읽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치 소설책 처럼 말이에요, 원래 진짜 너무 좋아서, 책 읽는 것처럼 읽는 소설에는 다른 분들 소설과 달리 길게 덧글을 못 남기지만, 으후,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다음편부터는 반드시 덧글 달아드릴게요. 건필하세요.
헐ㅈ댓네
완전 최고배리굿!!ㅋㅋㅋㅋㅋ
아 어떻해 찍혔나봐
와~~ 달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