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꽈배기 봉지를 뜯다가 / 강재남
오래된 식탁에서 꿀벌을 기다리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지 말하자면 꽃뱀 가마꾼이 멘 가마를 타고 시집 간 할머니를 내가 좀 안다거나 깃털 달린 꽃뱀을 릴리스로 오독했다고 해서 더 특별할 것은 없다는 얘기지
어제 기록된 역서에는 꿀벌 한 마리가 천 송이 꽃을 탐닉하고 나는 꿀벌의 탐닉을 탐닉하네 제 기능을 잃어버린 무수한 어제가 오늘로 새김질되는 날이 늘어가네 꾸준한 노동이 꽃과 꽃송이 사이를 물결치네
당신의 밀서를 기다리는 동안 겨울이 무료하게 지나고
어둠의 안락에 지고 싶은 날이 언제였더라
천천히 어둠의 실을 잣아 뜨개질 하다보면 나는 저절로 어둠이 돼버린다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뜻밖인 게 많아, 라고 느낄 때 불경한 피로 이성을 덮어버리지 다만 꿀벌의 귀가를 기다리지 당신이 보내올 꽃잎밀서에는 태양의 즙이 흘러넘치기를
그런 날엔 사과를 먹어도 형벌을 받지 않았으면 하네 꽃뱀의 다리가 태양 가까이에서 녹지 않았으면 하네
당신의 이브가 되고 싶다는 말이지 빛나는 머리칼을 꽃잎으로 흩고 싶다는 말이지
밀서를 봉할 때 봉지의 속내는 당신이 보관해도 괜찮아 ‘바스락’소리에 내 봉인이 풀리면 곤란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