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月 21日 (金) 맑다가 오후에 구름
오늘은 울 학교에서 창의적 체험활동 발표회를 하는 날입니다.
‘창의적 체험활동 발표회’란 교내 40여 동아리의 1년 활동 결과를 외부에 알리는 행사로서 오전에는 신문반, 미술반, 영상창작반... 등이 각 교실에서 전시를 하고 오후에는 합창, 풍물, 비보이 등의 공연 동아리가 강당에서 공연을 합니다.
운동장가에 마련된 떡볶이 부스와 물풍선을 던져 맞히는 오락부스는 이 행사가 예전의 학교축제가 변형·축소된 것임을 암시합니다.
수업이 없으니 학생들은 가방 없이 등교합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버스로 출근하여 교문으로 걸어 들어가려는데 어라? 자기네 동아리 홍보 손팻말을 든 학생들 앞에서 바둑이와 고양이 탈을 쓴 두 시키가 등교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안아주는 Free Hug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교문에 들어서는 저를 발견한 고양이 시키가 흡사 제리를 발견한 톰처럼 두 팔 벌린 채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과장된 몸짓의 슬로우 모션으로 냅다 귀쌈 한 대 올려 부치는 시늉을 하니 뜻밖 일격에 야옹이는 어쩔 줄 몰라 하고 교문 안 양쪽에 서서 지켜보던 선도부 아이들과 학생부 선생님은 깔깔깔 拍掌大笑(박장대소).
그렇게 몸 개그를 하고 나서 교문을 지나 2층 교무실에 올라오니 제 책상 앞에 택배가 놓여 있습니다.
터울림에서 보내온 11벌의 풍물복색과 9족의 미투리입니다.
어제 퇴근 할 때까지도 도착하지를 않아 조금 애가 탔는데 다행스럽게도 밤에 배달된 것입니다. 요즘 김장과 쌀 등의 택배물량이 많아서 늦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까딱했음 개교 이래 처음으로 빠안스 바람으로 공연할 뻔 했습니다.
풍물반장 준환이를 불러 배달 돤 옷을 동아리실에 갖다놓게 하려고 녀석 찾아 복도로 나가니 선생님들을 그린 캐리커쳐가 그새 교무실 앞 복도에 걸려 있습니다. 1학년 학생들이 미술시간에 그린 것들인데 ㅋㅋ, 제 존안도 한 점 걸려 있습니다. 그림 밑의 안내표를 보니 1학기 때에 가르쳤던 10반의 해성이가 그린 그림입니다. 동상도 수상했습니다. 흐흐, 실물에는 어림없지만 그래도 제법 자알 그렸습니다.
비교편의를 위해 올 스승의 날에 아이들이 찍어준 사진을 첨부합니다.
‘자유시간’ 서너 개 준비했다가 나중에 해성이에게 쥐어줘야겠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는 드디어 제가 맡은 풍물반이 공연을 합니다.
레미제라블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중창반이 부름을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풍물반은 여섯 번째 순서입니다. 강당 1층에서는 앨범 사진관에서 온 사진기사와 다른 선생님들이 열심히 찍기에 저는 2층으로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찬조출연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인근 여학교 댄스팀 사이를 헤집으면서 찍었는데 스마트폰이기에 화질이 그닥 좋지는 않습니다.
세월호 때문에 올해는 공연 기회가 많지 않아 아이들의 가락 습득도 더디고 동아리 분위기도 여느 해보다 침체된 감이 있는데 오늘 공연이 올해의 마지막 공연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수학선생님 한 분은 눈물이 조금 나왔다고 할 정도입니다.
공연 후에는 강당 앞에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고,
모든 공연이 끝난 다음에는 학급별 종례를 마치고 풍물반 아해들은 약속했던 쫑파티를 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메뉴는 삼겹살입니다.
작년에 먹었던 학교 앞 고깃집은 발표회 평가를 빙자한 선생님들의 술자리가 예약되어 있어서 버스로 15분 거리의 저희 집 근처 제 단골집으로 녀석들을 워어이, 워 워, 몰고 갔습니다.
익히 예상했던 일이고 ㅋㅋ, 심호흡 준비운동으로 마음 각오도 단단히 했지만 하, 시키들, 역쉬 무지하게 (처)먹습니다. 1인분만 먹고 숟가락을 놓는, 선행학생은... 전혀 없습니다. 한 테이블에서 고기를 더 달라고 하니 옆 테이블에서도 “저희두요”하고, 또 그 옆 테이블에서도 같은 외침이 늦봄 논물 개골이 울 듯 끝없이 이어집니다.
콜라, 사이다도 마찬가지고 전기밥솥 공기밥도 진즉 동이 났습니다.
그래도 식사비는 넉넉합니다.
퇴근 직전 오늘의 삼겹살 파티를 위해 행정실에서 법인카드를 받아가지고 나올 적에
“규정상 학생들 식사비는 1인당 7천 원이 맥시멈인데....”
난색을 표하는 J 부장에게
“뭔 소리야, 그런 형식규정에 얽매이지 마. 오늘을 위해서 그동안 아이들이 회식 한 번 못하고 모아두었던 거야. 풍물반 예산을 풍물반 아이들이 쓰는데 누가 뭐라고 해.”
꿰엨, 소리를 지르니 J 부장은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늘 공연으로 올해 공연의 마침표를 찍었다. 고생들 많았다. 내년에는 더 재밌고 신명나게 학창시절의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자”
는. 진심어린 클로징 멘트를 하고 고깃집을 나서면서 뒤돌아 보니 초강력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미국 중서부지방의 그것처럼 모든 테이블이 완죤 초토화 되었습니다. 계란찜, 된장찌개, 콩나물무침 등 모든 밑반찬들이 ‘그릇은 쨍쨍, 접시는 반짝’입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신발을 신고 나가며 아이들이 인사를 하자,
“선생니임, 학생들이 참 밝고 착해요”
서빙해 주셨던 아주머니가 감탄을 합니다.
‘ㅋㅋ, 아무렴. 이는 오로지, 순전히, 그리고 고스란히 禮(예)와 樂(악)은 본디 하나임을 평소 열심 가르쳤던 풍물반 지도교사의 뛰어난 지도 역량 결과이지’
동갑내기 주인아주머니에게 카드를 내준 후 영수증을 챙기면서 흘릴세라 自畵自讚(자화자찬)도 한 웅쿰 챙겼습니다.
이상, 일기 끄읕-.
첫댓글 맨밑에 사진. 오라버니 앞에 앉은 학생 참 잘생겼네요. ^ ^
오우 저 득시글대는 늑대들 안에서 오리버니가 늑대 대장. 어휴 남자시끼(쌤빼고)들 땀냄새 난다. 여까정. 오~~~~우~~~
ㅋ ㅋ ㅋ anyway!! 행복한 하루였겠네요.
ㅋㅋㅋ 1인분만 먹고 숟가락놓는 <선행학생>에서 빵터짐... ㅋㅋ
리트머스님 글 읽으면 속이 환해져요.
그리고 행복한 눈물도 아주 쬐금 나요
쌤도 아이들고 행복해 보여요
글을 읽는 우리도 행복해요
여기서 뵙습니다.
여전하십니다.
사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엔 아이들 데리고 가은 가셨나? 했지요.
해가 가기 전에 송년이든 망년이든 봐야겠습니다.
아침 출근길 영하 7도. 체감온도는 12도쯤이라네요.
추운 탐 잘하는 쌤, 단단히 껴입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