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 산행
곡우가 엊그제라 봄이 한 달 더 남았다. 그런데 한낮이면 무더워 성큼 여름이 온 기분이다. 주말이면 가끔 산을 같이 다닌 대학 동기와 산행 일정이 잡힌 사월 넷째 일요일이다. 둘은 한 달 전 진전 둔덕에서 오곡재를 넘어 군북역까지 걸었던 적 있다. 그날 부엽토 쌓인 산간 계곡에서 움이 튼 머위 순을 캐와 봄내음을 맡은 적 있다. 이른 아침 동정동 윤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으레 동기가 막걸리와 안주를 준비하고 나는 김밥을 마련해 떠난다. 새벽녘 반송시장으로 나갔더니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는 아직 영업을 시작하질 않았다. 서둘러 소답 장터로 갔더니 김밥을 살 수 있어 마음이 놓였다. 가려는 목적지는 양미재를 올라 작대산 트레킹 길을 걸을 셈이다. 동정동에서 동기를 만나 온천장으로 가는 녹색버스를 타 굴현고개를 넘어 외감마을 앞에서 내렸다.
지난 주말 천주산 달천계곡 일대는 지난 주말 진달래 축제가 있었다. 지역민은 물론이거니와 외지에서 몰려온 상춘객들로 계곡과 등산로는 몹시 붐볐을 것이다. 만산홍엽을 이룬 진달래꽃은 모두 저물었다. 이제 온 산 신록이 싱그럽게 물들어 가는 즈음이다. 동구 밭둑 매실나무는 벌써 동글동글한 매실이 여물고 있었다. 달천계곡 입구로 들어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근처로 올랐다.
단감과수원이 끝나자 오리나무가 그늘을 이룬 숲이 나왔다. 조금 전 고속도로 터널을 앞둔 지점까지 자동차바퀴 구르던 소음이 들리지 않아 좋았다. 숲으로 드는 들머리 근래 누군가 공들여 쌓은 돌탑이 몇 기 보였다. 무슨 염원을 안고 돌탑을 쌓는지 몰라도 정성이 대단해 보였다. 그 염원이 하늘이나 절대자에게 닿기를 바랐다.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를 걸으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양미재 못 미친 너럭바위에서 배낭을 풀어 동기가 가져온 곡차를 비웠다. 안주는 계절과 취향에 맞는 머위무침과 돌나물겉절이였다. 나는 오늘 우리가 나아갈 여정을 안내했다. 평소 다닌 코스보다 험난한 곳도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일렀다. 어느 산기슭 어느 모롱이 무슨 산나물이 자생하는지도 알려주었다. 이어 쉼터 바위에서 일어나 숲속으로 들어가 산나물을 채집했다.
나는 양미재 일대 식생을 훤히 꿰뚫고 있는지라 취나물과 바디나물이 어디 많은지 알고 있다. 취나물과 두릅나물은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이가 있었던지 개체 수가 적어 보였다. 바디나물은 손은 타지 않았는지 온전했다. 바디나물은 당귀 잎처럼 생겼는데 고라니나 노루가 취나물만큼 좋아해 녀석들이 먼저 뜯어먹은 흔적이 더러 보였다. 한 시간 가량 산나물을 뜯고 산마루에 올랐다.
아까처럼 너럭바위에서 쉬면서 남겨둔 곡차를 비웠다. 저만치 산기슭 아래가 구고사로 헤아려졌다. 천주산에서 이어진 산등선과 봉우리는 세 갈래였다. 한 갈래는 구룡산을 건너가 백월산에서 바위봉우리로 뭉쳤다. 한 산등선은 칠원 예곡으로 뻗어갔다. 그리고 남은 한 갈래가 우리가 가려는 작대산으로 이어졌다. 쉼터 바위에서 산등선을 넘으면서 취나물과 다래 순을 더 따 모았다.
작대산 등산로와 방향이 다른 트레킹 길로 접어들었다. 수 년 전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자리 창출과 산을 찾는 이를 위해 트레킹 길을 뚫었다. 그런데 길이 워낙 험하고 외진 곳이라 트레킹 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묵혀지다시피 되었다. 그런 속에 내가 철 따라 찾는 정도다. 오르막 내리막 트레킹 길을 걸으면서 취나물과 바디나물을 더 채집했다. 보드라운 비비추도 뜯어 보탰다.
석간수 흐르는 벼랑바위에 닿았다. 곡차를 마저 비우고 김밥으로 소진된 열량을 보충시켰다. 남은 오르막 내리막 산길에서 산나물을 몇 줌 더 뜯어 보태어 길고 긴 작대산 임도를 돌아 소목고개를 넘어 감계로 갔다. 아파트단지 건너편 상가에서 곱창전골로 맑은 술을 몇 잔 기울이니 날이 저물었다. 집 근처에 와 배낭이 불룩하던 산나물은 지인과 초등학교 동기에게 안겼더니 가벼웠다. 18.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