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48087-중국 산시성 시안 - 진시황병마용갱박물관 (중국=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중국 산시성 서안 진시황병마용갱박물관에 진시황릉과 함께 건설한 지하궁전의 일부로 지하궁전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테라코타로 만든 병마용이 전시되어 있다. 이 병마용들은 1974년 3월 29일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지점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제1호 갱의 발굴 이후 현재는 제3호갱까지 발견되었고 각 갱마다 조성된 박물관에는 총 6천여개의 병마용과 1백개의 전차, 4백개의 기마상이 전시되어 있다. 2000.6.19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진시황 친위군단설 부정.."선태후가 진정한 주인" 주장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중국 시안(西安)의 병마용(兵馬俑)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진시황(秦始皇)의 친위군단이 아니라는 주장이 중국의 고고건축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중국 고고학계가 지난 30여년간에 걸쳐 확립한 연구 결과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나선 사람은 올해 72살의 재야 고고건축학자인 천징위안(陳景元)씨.
그는 지난 달 펴낸 '병마용의 진상(眞相)'이라는 책을 통해 4가지 분야에서 63개의 근거를 들이대며 병마용의 주인이 진시황이라는 기존 학계의 이론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진시황이 결코 병마용의 주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그의 논리는 상당히 정연하다.
그는 우선 지금까지 출토된 무사용들의 머리 스타일을 두고 의문을 제기한다. 대부분의 병마용이 투구를 쓰지 않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일반 사병들도 갖췄던 투구를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의 친위군단이 착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출토된 병마용의 의상이 빨간색과 보라색이 주조를 이루는 것도 천징위안이 '진시황의 병마용'을 부정하는 중요한 논거의 틀이다.
검은 색을 숭상하도록 법령으로 공포할 만큼 검은색을 선호했던 진시황이 자신과 함께 순장시킬 무사용들의 의상에 현란하게 채색하도록 허용했을리 만무하다는 얘기다.
고고학계가 전차(戰車)로 추정하고 있는 병마용 갱 내에서 출토된 차량들의 바퀴간 너비가 1.1m-1.5m로 일정치 않다는 점 역시 그가 꼽고 있는 의문점이다.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한 직후 화폐와 문자, 도량형을 통일시켰다는 점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 진시황은 그러면서 용이한 전술 운용을 위해 전차의 너비 역시 통일하도록 지시했다.
다소의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너비가 제각각인 것은 이 차량들이 진시황의 전차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용맹무쌍하기로 이름났던 당시 진나라 병사들과는 달리 무사용들은 극히 일부만 젊은 청년들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대부분 수염을 기른 늙은이들의 형상에 우울하고 기운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 역시 진시황의 순장 대오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 천징위안의 지적이다.
![]() |
| 148088-중국 산시성 시안 - 진시황병마용갱박물관 (중국=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중국 산시성 서안 진시황병마용갱박물관에 진시황릉과 함께 건설한 지하궁전의 일부로 지하궁전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테라코타로 만든 병마용이 전시되어 있다. 이 병마용들은 1974년 3월 29일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지점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제1호 갱의 발굴 이후 현재는 제3호갱까지 발견되었고 각 갱마다 조성된 박물관에는 총 6천여개의 병마용과 1백개의 전차, 4백개의 기마상이 전시되어 있다. 2000.6.19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그럼 병마용의 실제 주인은 누구일까. 그는 거리낌 없이 진시황의 고조 할머니로, 강력한 섭정을 펼쳐 '2천년 전의 서태후(西太后)'라고 불리는 진나라 선태후(宣太后)를 내세운다.
초나라 왕족으로 진나라 혜문왕(惠文王)과 결혼한 그를 병마용의 주인으로 삼을 경우 자신이 제기한 갖가지 의혹들이 일거에 해소된다는 것.
진시황의 친위군단이 아닌 선태후의 수행원들이었기 때문에 투구를 쓰지 않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고 선태후가 죽기 전에 순장을 요구했기 때문에 출토된 병마용들의 표정이 어둡다는 주장이다.
차량의 너비가 통일되지 않았던 것 역시 선태후가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 이전에 묻혔으니 당연하다는게 그의 논리다.
그는 책을 발간하기 전부터 줄기차게 병마용의 주인이 선태후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중국 고고학계는 장수(江蘇)성 국토청 고급 건축사 출신으로 고고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닌 그의 주장을 "터무니 없는 가설"이라고 일축해왔다.
진나라 사병들은 스스로 군복을 장만해야 했기 때문에 군복의 색상이 제각각일 수 밖에 없었고 정밀성이 떨어졌던 당시 제조 기술상 차량 너비의 오차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반박이다.
천징위안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주류 고고학자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병마용이 진시황의 친위군대라는 정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서는 재야 학자들이 계속 늘고 있어 병마용의 실제 주인을 둘러싼 논쟁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pjk@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haohaor/
[관련기사]
▶ 진시황 병마용서 토용 100여개 발굴
▶ <진시황 병마용서 4두마차 두대 발굴>
▶ <진시황 병마용 20년 만에 발굴 재개>


첫댓글 지구상에서 상투하는 민족이 우리 한겨레 말고 더 있나요..? 제가 알기로는 한겨레만 상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즉, 병마용갱은 우리 한겨레의 유물이라 생각됩니다.
수천년 흙속에 묻힌 역사의 진실은 점점 밝혀지겠지요.
진실을 아무리 가리려해도 언젠가는 밝혀지지요...
저 병마용 병사들 얼굴을 보세요, 저게 우리같은 동이족 얼굴이지, 어떻게 지나족들 얼굴입니까? 한국사람 100명하고, 현재 지나족 100명하고 붙여놓고 비교해 보면 그대로 드러납니다. 저 병사들은 한국사람 얼굴에 가깝다는 것이.. 상투는 대대로 동이족의 전통이죠, 현재 대륙을 장악한 지나족의 핵심세력들은 제가 보기에는 동남아에서 기어 올라온 왜족과의 혼혈들같음
몽골인하고 지나인하고 세워놓으면 몽골인이 훨씬 한국인하고 닮았습니다. 뭐 하기는 요즘에는 파키,방글라녀석들이 한국여자 꼬셔서 혼혈아들 많이 까놓고, 농촌에도 필리핀여자,베트남여자의 혼혈들이 많아서 한국인도 남방계 혼혈인들이 엄청나게 태어나고 있기는 하지만,,,..왜 더 먼 몽골인이 더 가까운 지나인보다 더 한국인과 닮았을까요? 이건 현재의 지나인들중 상당수가, 근세에 서양을 등에업고 서남쪽에서 치고 올라온 서동남아 왜족들의 혼혈들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