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1
정한모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시집 <새벽>(1975)-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예찬적, 교훈적, 휴머니즘적
◆ 표현 : '어머니'의 반복으로 내재적 리듬 획득
◆ 주제 : 자식과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고귀한 희생과 사랑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어머니의 젖가슴 = 생명수
◆ 2연 : 어머니의 앞가슴 = 넓고 깊은 마음
◆ 3연 : 어머니의 두 다리 = 우리집 기둥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시인의 휴머니즘 정신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어머니의 젖가슴, 앞가슴, 다리를 말하면서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고귀한 것인지를 표현하고 있다. 여든이 다 되신 어머니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어머니의 지나온 삶의 내용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시대의 고난을 극복하는 매개물로서 어머니를 예찬하고 있는 이 시는, 가장 보편적인 소재를 빌어 매우 평이한 시어로써 참다운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의 시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시는 현대의 물질 문명과 관련하여 시인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움과 욕심이 만들어낸 지금의 물질문명은 오히려 인간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게 하고 있고, 인간다움을 점점 빼앗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휴머니스트인 시인은 가장 인간적인 것을 찾아 노래함으로써,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소개]
정한모[ 鄭漢模 ]
출생 – 사망 : 1923년 10월 27일 ~ 1991년 2월 23일
성격 : 시인, 국문학자
출신지 : 충청남도 부여
성별 : 남
저서(작품) : 카오스의 사족(蛇足), 여백을 위한 서정, 문체로 본 동인(東仁)과 효석(孝石),
김영랑론 등
대표관직(경력)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화공보부 장관,
잡지간행윤리위원회 이사장
<정의>
해방 이후 『카오스의 사족』, 『여백을 위한 서정』, 『원점에 서서』 등을 저술한 시인. 국문학자.
<생애>
충청남도 부여 출생.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나니와상업학교[難波商業學校]를 졸업한 뒤,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휘문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8년 동덕여자대학 교수로 부임하였고, 1966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88년 퇴직 때까지 재직하였다.
<활동사항>
문단 등단은 8·15광복 직후 김윤성(金潤成)·구경서(具慶書) 등과 함께 동인지 『백맥(白脈)』을 발간함으로써 이루어졌으나, 본격적인 활동은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선된 뒤부터이다. 1958년 제1시집 『카오스의 사족(蛇足)』에 이어 다음해 제2시집 『여백을 위한 서정』을 발간하였다.
이 무렵 그의 시의 주조가 되고 있는 것은 바람이나 꽃·계절·산이나 시내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가운데 따뜻한 인간의 눈길이나 정을 곁들여서 읊조린 정신자세로 시 「바람 속에서」는 이러한 경우의 좋은 보기로 생각되는 작품이다. 그 뒤 그의 시는 일상적인 생활에 평범한 인간의 정을 실어 읊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러한 세계를 담은 작품을 수록한 것이 『아가의 방』(1970)·『새벽』(1975)·『사랑 시편(詩篇)』(1983)·『아가의 방 별사(別詞)』(1983)·『나비의 여행』(1983)·『원점에 서서』(1989) 등이다.
시인으로서의 활약 이외에도 대학 교수로서 문학 연구에 끼친 공적으로는, 1956년 5월부터 12월에 걸쳐 『문학예술』에 발표한 「문체로 본 동인(東仁)과 효석(孝石)」, 1964년 12월호 『문학춘추(文學春秋)』를 통하여 발표한 「김영랑론(金永郞論)」 등이 있다.
이들 문학 연구와 시론에 해당되는 글들은 뒤에 『현대작가연구』(1959)·『한국현대시학사』(1974) 등으로 공간되었다.
또하나의 뚜렷한 발자취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 교육자로서, 그리고 문화행정가로서의 단면이다. 교육분야에서 그는 방송통신대학이 설립, 운영되자 학장으로 취임하여 기구확충, 교과목 내용 개편, 강의 운영의 개선에 힘썼다. 한국시인협회에도 관계하여 한때 사무국장을 맡았고, 이어 그 회장으로 추대된 바 있다.
또한 제3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하여 문학예술 지원사업을 관장한 바 있다. 예술원 정회원,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 문화공보부 장관이 되었다. 장관 퇴임 후에는 잡지간행윤리위원회 이사장으로 일한 바 있다.
특히, 문화공보부 장관 재임 때에는 그 동안 남쪽에서 작품들의 공간과 논의가 금지되어온 월북 및 납북 문학예술인들을 해금한 「납·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를 입안, 공포하여, 남쪽에서나마 한국 문단의 벽을 제거하는 데 공헌하였다.
<상훈과 추모>
한국시인협회상(1971)·서울특별시문화상(1983)·대한민국예술원상(시부문, 1987)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정한모의 문학과 인간』(정한모선생추모문집간행위원회, 시와 시학사, 1992)
「휴머니즘 또는 미래지향의 역사 의식: 정한모론」(김시태, 『현대문학』345, 1983.9.)
「자아와 세계와의 화해」(오세영, 『현대문학』293, 1979.5.)
「원초적인 것에의 집념」(이건청, 『현대시학』62, 1974.5.)
[네이버 지식백과] 정한모 [鄭漢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어머니(정한모)|작성자 옥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