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 (외 1편)
최동은
보도블럭 사이 흘러내린 빗방울이 방금 떠나온 거기
산당화 꽃잎이 붉은 가시를 뽑아내던 거기
내 눈동자와 네 눈동자가 함께 쳐다보던 거기
얼음벼락이 떨어져 한 소리로 머물던 거기
죽은 몸이 사라지는 순간 또 한 몸이 일어나던 거기
한 마리 새가 공중돌기 하다 나뭇잎 하나로 떨어지던 거기
눈 먼 자들의 눈꺼풀 속 어둠이 뛰쳐나와 펄떡거리던 거기
어미 몸을 떠난 아이 엉덩이에 푸른 멍자국이 새겨진 거기
배추벌레가 겹겹 허물을 벗고 연둣빛 몸으로 기어가는 거기
일란성 쌍둥이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삼나무 길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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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홀 : 시공간이나 동일 시공간의 두 곳을 잇는 좁은 통로를 의미.
—《시안》2010년 봄호
술래, 사라지다
나는 죽었는데 뻐꾸기가 우네
나는 죽었는데 비행기가 날아가네
흰나비를 따라가며 개가 짖네
개를 따라가며 사람이 짖네
사람을 따라가며 자두꽃이 떨어지네
나는 죽었는데 시외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가네
나는 죽었는데 옥수수밭 고랑에 서 있네
열두 살 적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들어 간 술래
느티나무 길을 다시 걸어와
오래 밥을 먹고 있네
—《리토피아》200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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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은 / 본명 최흥규. 2002년 계간 《시안》봄호 신인상에 '개심사' 외 4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