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 '은빛 투구' 힘찬 화랑의 기상 옛 청구대 故김인호 선생 작품 곡면 지붕·관중석 곡선구조 등 뛰어난 형태미와 장대함 자랑
지금은 주변이 건물들로 막혀서 그 위용을 느끼기 힘들지만 1979년 준공당시 형태나 규모에서 파격적인 건축이었다.
지붕의 곡면과 용마루 선에서 느껴지는 힘이 장엄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세대교체. 얼마전까지도 이 말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들렸다. 어느 시기까지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후진에게 물려주는 것을 미덕처럼 생각했다. 역할에 관계없이 한편의 드라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배우처럼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그러나 이젠 능력 없음, 혹은 활동력 미약이란 명분으로 강제퇴출을 당하게끔 변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훨씬 더 건강해지고 더 오래살 수 있게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많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여력을 어디다 쏟을까를 걱정해야 하다니. 그렇지만 세상이 바뀐 것이 분명하다. 1950년대에 거대기업 IBM의 무게 있고 점잖게 생긴 중앙집중형 슈퍼컴퓨터가 채 30년도 안되어 두 젊은 청년이 만든 작고 날렵한 PC때문에 퇴출된 것처럼, 개인주의와 다양성이 사회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젠 세대의 개념보다 개인적 역량이 우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존경은 성공의 결과이고, 성공을 위해서 외견으론 카멜레온같은 변화, 내적으로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성과 행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일반적으로는 잘 나타나진 않지만 예술세계에서는 필연적인 것으로 건축도 그러하다.
#형태와 구조가 일체화된 아름다움
대구 체육관은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청구대학의 교수이자 건축가인 고 김인호 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은 대구건축계의 제2세대로 대구예총회장도 역임했으며 서울 잠실구장의 설계자이기도 하다. 대구체육관-지금은 동양 오리온스의 홈 경기장으로, 서태지같은 특급뮤지션의 공연도 가끔씩 열리는-은 수용인원 5천200명인 독특한 형태의 건물이다.
1979년에 당시 도청과 함께 대구시가를 굽어 내려보는 산격동 언덕에 경북실내체육관이란 이름으로 준공된 이 건물은 체육관 지원시설이 있는 기단부와 그 상부의 체육관, 두 부분이 잘 결합되어 웅장함과 안정감을 가지고 있으며 대지상황과 주변풍경에 잘 조화되는 건축이다.
체육관의 반짝이는 곡면 지붕과 관중석 곡선구조의 어우러짐은 뛰어난 형태미와 운동성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높은 곡면천장으로 된 실내공간은 보기 드문 장대함을 지니고 있다. 화랑의 투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쉘(조개껍질모양)형태의 지붕을 지지하고 있는 상부의 곡선구조체는 두개의 시작점과 최상부의 접점을 힌지(변형에 대응하는 연결방식)로 만들어 균형을 이루는 3힌지 구조방식이란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을 사용했다.
또 지붕무게의 최소화를 위한 재료의 경량화와 높은 천장공사를 위한 시공기술은 건축계의 큰 화제가 되었고, 이후 타 도시 체육관의 설계와 시공에 큰 영향을 끼쳤다. 건축가 김수근의 워커힐 힐탑 바의 거푸집 철거시에 있었던 유명한 일화처럼 김인호도 지붕 완성 후 비계를 누구도 철거하기 두려워할 때 직접 그 안에서 작업을 진두지휘했는데, 철거 직후 지붕이 수십㎝ 처지는 것이 눈에 보일 때 본인 역시도 아찔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건물로 진입하면서 보이는 좌·우 측면이 치켜들려진 곡면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노출기둥이 만드는 힘찬 조형미는 전통건축에서 보는 들려진 처마같은 형태미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전통적 형태해석은 본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에 설치된 4개의 주 대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1968년 김수근이 설계한 부여박물관이 형태적으로 일본식이란 동아일보의 비판 이후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된 건축의 전통성 표현에 대한 선생의 독자적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선생은 현대건축뿐만 아니라 달성공원, 경주 화랑의 집, 불국사 같은 전통건축의 복원설계도 많이 하여 이 부분의 조예가 깊어 일련의 대표작들을 보면 전통조형미의 해석에 따른 형태가 많이 있다.
대구시민회관 전면에 만들어진 계단과 기둥 그리고 처마부분의 상승곡선에서 보이는 형태가 그것이며 유작이 된 대구두류문화예술회관의 갑사고깔형태의 대공연장 지붕과 전시동의 평면 및 배치형태에 적용한 상모 돌리기의 팔각형태 등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 외에도 선생의 작품으로는 두류수영장, 두류축구장, 매일신문 사옥, 동아쇼핑센터, 구미시청 등이 있다.
#아름다운 퇴장을 위하여
선생은 세대교체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1989년 한창 일할 나이인 58세에 타계하셨다. 그러나 선생의 건축은 지금도 남아있어 우리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대구건축의 3대들로, 이제는 선생보다 더 나이 많은 제자들이 선생의 호를 딴 후당건축상을 제정하였다. 선생은 갔으나 이름만이 아니라 작품으로써도 후대를 위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 존경과 사랑을 받고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세대교체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또한 한 사람의 건축가로서의 개인적 삶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필자는 대구체육관 앞에 위치한 산격4동사무소 설계에 참여하였는데, 이 시대의 건축가로서 주민들과 체육관을 찾는 젊은 관중들을 위해 선생의 작품과 마주한 이 건물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를 남몰래 고민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자신이 대구건축계 중간세대로서 하는 고민이지만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인생무대에서의 아름다운 퇴장을 위한 나만의 준비과정인지도 모른다.
첫댓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