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으로는 ‘주차장 자체가 없는 단지’ 또는 주차공간이 평균 이하의 면적을 형성하는 곳으로, 도심 및 주거지 내 교통량을 줄이고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대신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모델이다. 도시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차량을 소지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거나 계약서 상 차량소지제재를 언급하기도 한다.
차 소유를 버리고 얻는 이점은 생각 외로 많다. 조용하고 공기가 청명한 거주 환경, 차량 사고위험이 원천적으로 제거된 안전한 외부공간, 더욱더 풍성한 녹지와 생태 공원, 보행환경에 최적화된 외부공간 등이다. 공사비가 저렴하여 주거 비용을 낮출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사회적 이점은 더욱 크다.
이런 주거단지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결국은 ‘건강한 주거환경’에 귀결된다. 자연히 콘크리트바닥을 버린 지반에는 생태정원과 텃밭을 가꾸기 적합하고, 태양광 설치, 우수재활용, 지역난방, 단열성능 강화 등 에너지 순환 및 자원순환에 최적의 주거단지를 형성하는데 거부감이 없다. 결국엔 생태주거단지가 된다.
무차주거단지를 조성하려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할까?
첫째로 차량을 소지하지 않아 주차장 공간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차를 보유하지 않는 이유가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닌, 환경을 생각하고 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모여야 한다.
두 번째로는 편리한 공공 교통공간이 인접해야 한다. 이동권의 자유를 확보해야만 성공할 수 있기에 공공 또는 공동 교통기반시설이 집적해 잘 갖추어져야 한다.
세 번째로는 고밀의 도심에서 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기에, 생활편의시설이 인접한 도심 등 대상지의 적절한 위치선정 및 고밀의 인구밀도가 필요하다. 당연히 비상차량을 위한 차로 및 장애인 주차공간 등은 필수로 갖추어야 할 것이다. 대안으로 자전거를 포함한 PM이나 공유차량(car-sharing) 등을 위한 주차공간도 별도로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가장 유명한 무차주거단지 헤베엘(GWL)
차 없는 공간환경에 대해 오랜 전통이 있는 독일의 유명한 생태주거단지나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무차주거단지 프로젝트 등 유럽에 많은 사례가 있긴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살면서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고 또한 근무하고 있는 회사 KCAP의 작품이기도 한 헤베엘(GWL)주거단지를 예로 설명을 돕고자 한다.
네덜란드 헤베엘 GWL 주거단지 배치도(좌)와 녹색으로 뒤덮인 주거동 모습(우)
기존 암스테르담 시 식수를 담당했던 정수장은 1990년대 초 주거단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주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무차주거단지를 시험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하게 되었다. 1993년 마스터플래너로 KCAP가 지정되었고 조경은 West8이 담당하였다.
이후 마스터플래너가 본인 KCAP를 포함하여 건축가 5명을 선정하여 주거동 건축설계를 진행하였다. 적벽돌이라는 재료 코딩과 마스터플랜의 동 배치를 지키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각각 개성 있는 16개 주거동이 탄생했고 600세대를 담게 되었다. 마스터플래너에 의한 마스터플랜이 있고 개별 건축가가 각 동을 설계하여 도시공간의 통합 및 다양성을 동시에 얻는 방법을 적용하였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전형적인 생태주거단지이며, 단지 옆으로 100대 정도의 주차를 할 수 있는 소규모 주차장이 일부 있다. 세대당 0.2대 정도의 주차공간이 조성된 셈이다. 거주민들은 대부분 자전거나 공공교통을 이용해 이동한다.
자전거로 단지 내외부를 다닐 수 있고 어디에나 있는 자전거 주차장이 차량공간을 대신한다.
헤베엘 주거단지는 산업지역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길게 외부를 구획하는 긴 동을 외곽으로 둘러 주거지를 보호하고 내부는 섬(island) 형태의 주동을 배치하였는데, 구석구석 녹지와 생태환경에 둘러있어 꼭 공원 안에 아파트를 넣어 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하였다. 지하 주차장 대신 얻은 생태정원은 여기 사는 주민들이 가장 최고로 뽑는 자랑거리이다.
기존 정수장이었던 기억은 이렇게 수공간으로 남았다. 생태수공간은 이곳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이 주거단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근대 역사문화자원의 활용이다. 개발할 때 기존 정수 펌프장 기계실 등의 건축물과 급수탑(Water Tower)을 남겨 이전 기억을 담는 오브제로 사용하거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건축물은 레노베이션하여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최근 이러한 기념건축물들이 공식적으로 암스테르담 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근대산업 문화유산을 주거단지 내에 두고 있으니 주민들은 더욱더 지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존 엔진기계실을 개조하여 만든 레스토랑 ‘Café Amsterdam’은 암스테르담 시내 10대 최고 식당 중 하나다.(위) 최근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급수탑과 기계실은 그대로 문화유산으로 남아 역사성을 더한다.(아래)
세계적인 움직임, 도심에서 차를 제거하라
세계 최근 흐름 상 도심에서 보행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여러 각도로 시행되고 있다. 지구에 영향을 주지 않고 밀도를 높이는 법, 즉 도심 내 밀도를 높이면서도 원지반을 보존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바로 이 무차주거단지 조성이다.
오슬로는 2017년부터 서서히 도심에서 차를 내쫓고 있고,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세르다 그리드’인 블록의 매 3번째 거리는 차를 막고 보행화하고 있으며, 파리는 규칙적으로 차 없는 날을 지정하고 있다. 런던, 뉴욕, 밀라노 등 대도시에서도 차로를 보행자전용구간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차량 위주의 도시가 만들어진 미국, 그 중 아리조나 주에서도 최근 미국 최초의 무차주거단지를 개발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하는 무차주거단지는 어떨까?
먼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운동으로 역동성을 만들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해야 한다. 현재의 주차장법을 개선하고 이러한 주거단지를 가능케 하는 법 제정도 필요할 것이다.
요즘 환경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공유하고 친환경 주거공간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먼저 시작하면 좋다. 위치는 서울 어디나 역세권이니 서울 어디나 괜찮을 것이다. 주차장 설치를 하지 않기에 남는 공사비에 따른 주택가격 인하가 임대주택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이동권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하며, 오히려 중산층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지하공간 개발이 심한 곳에서 홍수 피해도 심한 법. 원지반을 보존하고 빗물을 땅속으로 흡수시키고 재사용하면 물을 머금는 도시가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거단지가 많아지면 질수록 그로 인해 녹지공간을 더욱더 확보할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도 보게 될 것이다. 보행공간이 지배적인 도시 공간을 회복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바로 ‘진정한’ 10분 도시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게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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