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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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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내 마음
알파칸 추천 0 조회 181 22.12.23 11:29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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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12.23 11:51

    첫댓글 성장하는 시절 고생 많으셨군요.

    삶의 어려웠던 시절이 발판되어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즐겁고 신나고 풍요로운 일만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 작성자 22.12.26 05:15

    아버지 덕에 이런저런 별일을 다 겪으면서 살았고 그래서 당시는 참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재미는 있었어요. 그냥 편하게 밋밋하게 차곡차곡 쌓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느끼질 못하는 스릴만점 인생이었지요. 그래서 그 엄빠를 잊지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한 딱까리 해내는 바람에 부모님 말년은 편안하셨지요. 이상하게 중요한 때 꼭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기더라구요. 고입 대입을 앞두고 그러셨으니 말입니다.

  • 작성자 22.12.26 05:17

    아버지가 말씀하시길...(너는 몸도 안 좋고 하니 취업은 어려울 거 같고 아빠가 나중에 목장 차려 줄테니 축산과를 가라)해서 농대 축산과를 나오고 보니 80년에 군부세력에게 빼앗긴 회사를 찾으려 죽어라 법적 투쟁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아버지가 써놓은 고발장을 보니 서울대를 나오셨어도 옛날 분이라 맞춤법이 다 틀려서 제가 고쳐드리고 하면서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고 생각하길 이건 법적 투쟁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거 같아서 87년 김영삼 당에 들어가서 대선과 88년 국선을 치루고 전당대회 대의원으로 부총재 경선을 치루고 하면서 지내다가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를 이틀을 생각하고 나온 결론이 3당합당 안이었지요. 그래서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노태우 손에 들어간 거 같았어요. 3당합당을 발표하는데 김영삼이 뻘쭈거니 멋적은 표정으로 서있고 노태우가 당당한 표정으로 발표를 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눈치 챘지요. 검열이 심해서 노태우가 컨닝했구나...하고....참 재밌는 세상이더라구요, 그리고 30여년을 모르는 척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몇 달 전에 말씀드리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 작성자 22.12.26 05:18

    (왜 그때 말안했냐?) 하시기에.....(아버지 그때 제가 그걸 했다고 떠들고 다녔으면 저는 누구한테 당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될 건 데 어찌 말하겠습니까?) 하니 고개를 끄떡끄떡 하시더라구요. 바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신 거지요. 그리고 아버지에게 엄청난 약속을 받았는데 갑자기 병이 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 약속은 제 가슴속에 또 묻어야 했습니다.

  • 작성자 22.12.23 18:20

    뭐가 안되는 놈은 죽어라 고생만 하고 남 좋은 일만 한다더니 제가 그 꼴입니다. 그래서 세상살이 재밌다는거 아닙니까. 얼마나 재밌으면 노래도 있더라구요. (80에 가잖다고 하면 어쩌고 저쩌고 해서 못간다고 하여라...90에 가잖다고 하면 또 뭐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못간다고 하여라....우짜고 저짜고~~) ㅎㅎㅎ~

  • 22.12.23 23:15

    고진감래 라고하죠 고통은 사랑이래요 !!

  • 작성자 22.12.24 05:59

    고통까지는 아니구요. 그냥 아버지 약속대로 됐으면 상속 재산이 거진 주식이었어요. 그 주식을 내 앞으로 다 해주시겠다고 하신 거지요. 그리고 갑자기 병이 나셔서 입원하셔서 치료받고 나오셨는데 걷지를 못 하시더라구요. 그러다 갑자기 고혈압이 와서 대동맥이 파열되고 또 입원을 하셨는데 제가 보기엔 어려워 보여서 우선 종부성사를 드렸더니 동생들이 생 난리에요. 그러면서 나는 빠지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여동생이 악다구를 쓰면서 자기가 한다고 해서 대학원까지 나온 동생들이니 나보다 낫겠다 해서 믿고 맡겼고 저는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기도만 해드렸는데 이상하게 수술을 안 하더군요. 그래서 여동생에게 물어보니 이미 피가 많이 세서 패혈증이 왔고 그래서 수술이 어렵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니 아버지와 가족 모두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걸 알고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냥 조금씩 조금씩 스러지시더라구요. 그렇게 가셨습니다. 참 힘들었지요.

  • 작성자 22.12.26 05:21

    나이가 만 90이 넘으시니 생각지도 않은 병으로 입원하고 나아서 퇴원하셨는데 또 대동맥파열이 오고 패혈증으로 연결되니 이건 어찌 손도 못쓰고 돌아가신 겁니다. 아버지 자신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시는 거 같았어요.

  • 작성자 22.12.26 05:53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상속재산 분활을 하는데 여동생이랑 남동생이 양보를 원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 딸아이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 수발한다고 6년을 아버지 집에 기거하면서 수고를 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증여세의 증여세까지 내면서 집을 한 채 사주신게 있어서 그걸 머리 속으로 계산해보니 제 지분 33.33%에서 27%만 받고 나머지를 둘이 나누면 딸 집값 만치 각자 나보다 더 받게 되요. 그래서 양보를 하였지만 딸아이는 자기가 자청해서 들어가서 수고한 보답을 받은 건 데 그걸 가지고 여동생이 물고 늘어지더란 말입니다. 남동생은 그 정도 양보해주니 만족하는데 여동생은 계속 자기 조카랑 언니에게 막 해 대니 아주 내가 답답하더라구요. 미국 가서 살더니 돈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되었버렸더군요. 그래서 남동생에게 (빨리 빨리 처리하고 제 미국으로 후딱 보내라)하고 말았지요. 남동생도 여동생이 왜 저 모양이 되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더라구요. 이제 거진 다 끝나가니 곧 또 미국에서 올 겁니다. 자기 상속 지분 가지고 가겠지요. 막내만 보면 열이 뻗치는데도 만나면 밥 사 먹이면서 일 처리하고 보냈는데 이번에 오면 또 뭔 일이 터질지 모르겠어요.

  • 작성자 22.12.26 05:28

    호랑이띠라서 그런지 돈 앞에서는 무지 사납더라구요. 도대체 평상시 보던 석사 여동생과는 너무 차이가 나서 놀라웠는데 또 봐야되니 ~ 오면 얼른 해서 보내야겠어요. 아주 그놈 생각만 해도 머리가 다 지끈거립니다.

  • 작성자 22.12.24 07:50

    근데 언제 상속세가 그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알고 있기론 장남이 50%로 알고 있었는데 무조건 3등분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 이게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누가 노부모 수발들고 모시고 살려고 하겠습니까? 수고한 자식이 조금이라도 더 받게 해주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설사 막내가 부모님 모시고 수발들었다고 해도 당연히 막내가 더 받아야 맞는 거 아닌가요? 무조건 1/n은 문제가 있습니다. 법 개정하세요.

  • 작성자 22.12.26 05:31

    저 같은 경우는 보면 남동생은 어머니 수술하시고 남동생과 아버지가 어머니 문제로 의갈이 나서 7년을 나타나지도 않았고 여동생은 미국 사니까 가끔 와서 디다만 보고 갔고 우리 식구가 들러붙어 다 했거든요, 그리고 아버지 혼자 되시고 계속 우리 식구가 시간 되는 대로 아버지 수발 들고 딸아이는 들어가 살았구요. 그러면 당연히 제가 더 받는 게 당연한 건 데 언제 누가 왜 1/n로 상속법을 바꿔서 수고한 보람도 없게 해 놓았고 여동생은 양보를 해주었는데도 막 해 대니 내가 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지들 사정이 그래서 다 떠나가 있다가 나타나서 1/3도 아니고 조카가 수고해서 받은 몫까지 쳐서 받아가니 이게 이상하잖아요. 하여튼 좀 문제가 있는 상속법 같아요.

  • 작성자 22.12.26 05:33

    남동생이 김장하러 제수씨랑 왔길래 물어보았어요. 세금 다 내고 내가 받을게 얼마나 되냐고~~~ 그러니 하는 말이 (거의 없어) 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해보니 다른 방도가 없어요. 부동산은 애들하고 나누었고 나머지 부동산에서 나오는 임대료는 마누라 생활비 쓰고 용돈 쓰라고 통장을 넘겨줬고 결국 나는 가지고 있는 주식 굴려서 벌어야 하는데 이게 계속 떨어지기만 하니 어느 세월에 본전 찾고 벌어서 아들놈 집 사주고 장가 보낼지 캄캄합니다. 그래서 로또에 희망을 걸고 로또를 매주 사고 있지요.

  • 작성자 22.12.26 05:46

    돈이라는 게 말입니다. 뭉쳐있으면 큰 돈이 되니 힘을 쓸 수가 있는데 이리저리 나누기 해서 푼 돈이 되면 힘을 못쓰니 할게 없어요. 그냥 용돈이나 쓰는 거지요. 뭐~~사는 날까지....딸아이는 결혼도 했고 내가 증여해준 부동산에서 임대료 나오고 집은 할배가 사주셨고 지들이 또 버는 게 있으니 걱정이 안되는데 아들놈이 혼자 나가서 사는데 부동산 하나 증여해준 거에서 임대료가 나오니 먹고사는 건 되지만 아직 집이 없고 장가를 못 갔어요. 그러니 아비로서 집 해주고 장가 보내고 까지는 해야 할 거 같은데 참 힘드네요. 돈 벌이는 그냥저냥 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더라구요. 나가서 살아보니 편하니까 다시 들어오라고 해도 노노노~ 하더라구요. 하여튼 아들은 장성하면 나가사는 게 맞는거 같아요. 같이 살아볼려고 했는데 나도 힘들고 마누라도 힘들고 아들도 힘들고~~~그렇더라구요. 그래도 가까운데 사니 전화만 하면 바쁘지 않으면 쫓아오더라구요. 딸아이는 좀 멀리 사니 한 달에 한번 보기도 힘들어요. 사위도 그렇고.....애들 다 커서 나가서 사니 마누라랑 둘이 오붓하긴 한데 좀 허전하더라구요.

  • 작성자 22.12.26 06:42

    아버지 회사 지분 처분하고 돈이 들어왔는데도 목장 차려줄 생각을 안 하시는 건지 뭔지 해주기 싫으신 건지 장남이라고 근처에 두고 싶으셨는지 뭔지 알 수는 없는데 자꾸 요리 조리 뺀들거리시면서 시간만 끄니 화가 나서 내 방에서 아내랑 이야기를 하면서 (다 내가 한 건데~~다 내거나 다름없는데~)하면서 큰소릴 쳤더니 그걸 옆방과 건넛방에 사는 동생들이 듣고는 아버지께 이야기를 한거 같더라구요. 어느날 저를 아버지 서재로 불러들이더니 내 얼굴에다 통장을 집어 던지면서 (이거 다 너꺼냐? 너꺼냐? 너가 한 게 뭐 있다고 다 너꺼라고 떠드냐? )하시면서 막 화를 내시는데 (아버지 그거 제가 3당 합당안 내서 정치적으로 해결된 겁니다)하고 말하려다가 그냥 꾹~참고 별소리 다 듣고 있다가 (나가라~~~)하시면서 호통치시기에 그냥 나와서 성당 가서 십자가 바라보고 눈물 흘리면서 앉아 있다가 집으로 왔습니다. 여러분 같으며 어떡하셨겠어요? 저는 그리고 아버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드렸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나니 병나서 돌아가시더라구요.

  • 작성자 22.12.26 19:46

    그러니 연로하신 분에게는 좋은 일도 때로는 잘 생각해 보고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아버지께 그걸 말씀을 안 드렸으면 절 위해서라도 어떡하든 100세는 사셨을 겁니다. 그럼 제가 73세가 되니 아버지는 기분좋게 가시든가 더 사시다가 저랑 앞 서거니 뒷 서거니 친구 보내듯 보내고 아버지 원대로 김영삼 아버지 김홍조 옹처럼 아들 뒷 바라지 하시다 가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란 말입니다. 그 정도로 건강하셨어요. 100세는 문제없다고 보았거든요. 돌아가시고 생각해보니 후회가 되더란 말입니다. 그냥 끝까지 아버지의 못난 아들로 남을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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