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게임의 룰’ 수싸움 본격화… 위성정당 봉쇄가 핵심
선거제 개편 논란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 ‘게임의 룰’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예비후보 등록일인 12월 12일 전까지도 관련 법안 처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최대 쟁점인 비례대표제 논의에서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출현을 막기 위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국민의힘은 전국 단위의 병립형 비례제를 최우선으로 하되, 야당이 3개 권역별(수도권·중부·남부) 병립형 비례제를 들고 나올 경우 논의를 해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동형 유지를 주장해 온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당내에서 위성정당 창당을 막기 위해 병립형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 권역별 ‘병립형 vs 연동형’ 막판 쟁점
선거제도를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마지막 회의는 7월 13일이었다. 이후 4개월간 ‘2+2협의체’(국민의힘·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정개특위 간사)의 물밑 협상이 이어졌다. 이들은 소선거구제 유지와 3개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제에 대해선 큰 틀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를 병립형으로 선출할지, 연동형으로 선출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를 따로 한 뒤 과거처럼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먼저 정한 뒤 지역구 당선자가 정해진 의석수에 미치지 못하면 비례대표로 이를 일정 부분 채우는 연동형을 공식 주장한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선 그간 반대해 온 병립형에 대한 기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위성정당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병립형으로 돌아가더라도 타협할 수 있는 안을 만들자는 방안이 내부에서 거론 중”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등 소수정당은 병립형 회귀는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 비례대표제 뭐가 문제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253개 지역구에서 1명씩 253명, 비례대표로 47명을 선출해 모두 300명이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현행 선거제가 표심을 정확하게 의석수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정당의 득표율이 10%이면 원칙적으로 300석의 10%인 30석의 의석을 얻어야 하는데 현실은 다르다. 지역구 의석 대부분을 휩쓰는 거대 양당은 표심에 비해 과다 대표되는 반면, 소수정당은 과소 대표되는 ‘불공정한’ 의석 배분이 발생한다.
위성정당 창당으로 선거제 개편의 취지와 다른 결과가 나왔던 21대 총선이 아닌, 2016년 20대 총선 결과를 보자.
의석 점유는 민주당 123석(41.0%),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122석(40.67%), 국민의당 38석(12.67%), 정의당 6석(2.0%)이었다. 그러나 후보가 아닌 지지 정당에 투표하는 정당득표율로만 계산했을 때 산출되는 의석수는 민주당 25.54%(76석), 새누리당 33.5%(100석), 국민의당 26.74%(80석), 정의당 7.23%(21석)다. 지역구 따로, 정당 따로인 ‘교차 투표’ 변수를 제쳐놓고 산술적으로만 보면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각 47석, 22석이 과다 대표된 반면, 소수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과소 대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야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선거제 개편에 착수했다. 하지만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의석수를 배분하게 되면 거대 양당이 기존보다 의석을 잃기 때문에 양당은 연동형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2020년 총선을 4개월 남짓 앞두고 여야는 의원 정수를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유지하면서, 이 가운데 30석은 ‘준연동형’, 나머지 17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 방식의 선거제를 도입했다.
● 위성정당이 망친 선거제 개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연동형의 절반(연동률 50%)만 적용하기 때문에 ‘준’자를 붙였다. 지역구 253석 중 특정 정당이 얻은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에 이르지 못하면 비례대표에서 부족한 의석 중 50%를 채워주는 제도다.
준연동형 비례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른 비례성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에 반대했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민주당도 이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더불어시민당을 만들면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무력화했다. 결과는 민주당(163석)이 더불어시민당(17석)을 포함해 180석, 미래통합당(84석)과 미래한국당(19석)은 103석, 정의당은 6석 등으로 나타났다.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다면 선거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정치학회가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은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비례대표 후보를 직접 낸 것으로 가정한 선거 결과를 시뮬레이션했다.
결과는 민주당 169석(실제 의석수 180석), 미래통합당 99석(103석), 정의당 13석(6석), 국민의당 8석(3석), 열린민주당 6석(3석)으로 나왔다. 기존 제도보다 비례성이 개선되는 결과가 나왔다. ‘꼼수 위성정당’ 효과로 양당(더불어시민당 +11석, 미래한국당 +4석)이 소수정당(정의당 ―7석, 국민의당 ―5석, 열린민주당 ―3석)에 돌아갈 비례 의석이자, 준연동형 배분 의석 30석 중 절반인 15석을 가져간 셈이다.
● “현실적으로 위성정당 막기 어려워”
정치권에서는 이대로라면 21대 총선처럼 ‘위성정당 꼼수’가 또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 속에 ‘위성정당방지법’이 여러 건 발의된 상황이다. 그러나 이 법들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정개특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제 개혁은 양당의 합의하에 추진하는 게 관행이었지만, 준연동형 비례제의 경우 민주당, 정의당, 바른미래당, 평화당 등 4당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을 배제하고 통과시킨 법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애초부터 연동형을 찬성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또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럼 민주당도 맞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도 결국 병립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권역별 비례대표 자체도 개선”
여야는 일단 권역별 비례제라는 절충안엔 도달했다.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선출할 경우 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당선자를 배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자체로 정치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4월 국회 전원위에 오른 여야의 개선안에도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당시 민주당은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준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국회의장도 6개 권역을 제안했지만 이를 현실화하려면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의석수를 늘리기 어렵기 때문에 권역을 3개로 줄이는 안이 나왔다”며 “전국을 수도권·중부·남부의 3개 권역으로 나눈 것은 지난 3번의 총선 결과를 시뮬레이션했을 때 특정 당에 유리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권역별 비례제를 병립형으로 운영할 경우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측면은 있지만 지금처럼 양당제가 유지되고 소수정당의 국회 진입이 어려워지는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병립형을 도입하되 거대 양당이 차지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에 제한을 두는 방법으로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의 기회를 보장하는 안을 검토 중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여야 간 협상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양당제의 폐해를 줄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연동형제하에선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을 막기 어렵다. 양당이 공식적으로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더라도, ‘태극기 부대’와 ‘개딸’(개혁의 딸) 등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친국민의힘 호소 정당’ ‘친민주당 호소 정당’ 등 ‘참칭정당’ ‘자매정당’이 선거 전 급조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선거제에는 장단점이 있다. 이번 선거제 개편의 최우선 과제는 위성정당 창당 봉쇄다. 정치와 선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 키우는 일은 막아야 한다.
길진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