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字 隨筆 문득.1032 --- 샛노란 단풍이 나무를 기억하게 한다
봄날 화사한 꽃이 피면 좀처럼 보고도 보이지 않던 나무가 보인다. 매일같이 그 곁을 지나다니며 수없이 보았어도 무관심하여 잘 보이지 않던 나무가 똑바로 들어온다. 아하, 저 나무가 벚나무였구나 한다. 비록 나무는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 꽃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곱고 아름답구나 한다. 꽃이 나무를 찾아준 셈이다. 사람들이 그 나무의 존재를 비로소 알아준 것이다. 참으로 가상함을 넘어 아름답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처럼 꽃 하나만이라도 올곧게 제대로 필 수 있으면 언젠가는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모과처럼 열매가 그윽한 향기를 풀풀 뿜어내면서 모과나무를 기억하도록 한다. 가을이면 단풍이 봄날의 꽃 못지않게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어디에 저런 곱디고운 빛깔을 간직하였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곱게 치장하는 것인지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꼽아볼 수 있다.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 그러나 벚꽃이 피기 전에는 벚나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듯이 은행나무는 단풍 들기 전에는 관심조차 없다. 은행나무의 단풍이 눈길을 끈다. 달걀노른자 같은가 하면 금빛을 떠오르게 하며 주위가 휘황찬란하다. 비로소 단풍에 나무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기억하게 한다. 이렇게 주변에 은행나무가 많았던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아산 현충사에 갔다. 곡교천을 따라 2km를 넘게 도로 양쪽으로 은행나무 600여 그루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한 아름 넘는 나무들로 마치 이충무공의 기백에 누가 될세라 아주 늠름하다. 10월 말에서 11월 초면 멀리서 보아도 대뜸 드러나도록 단풍이 유난스럽다. 현장에 다가가려면 차들이 오도 가도 못하면서 한동안 실랑이를 할 만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마치 금빛 의상에 마음을 반짝이는 것처럼 또랑또랑한 눈빛이다. 은행나무 단풍 숲에 풍덩 빠져들어 추억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나무마다 고유의 빛깔을 깊숙이 지니고 있다가 가을에 마무리 지으며 한마당 단풍이란 축제에 일제히 뽐내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