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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D전도정착사관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MD목사
심고 거두는 법칙(갈라디아서 6장 7~9절)
우리나라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다. 콩을 심은 곳에선 콩을 거두고 팥을 심은 곳에서는 팥을 거둔다는 뜻이다. 우리 인생사에도 매일의 삶 속에서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자연법칙이 적용된다. 우리의 생각과 말하고 행동하는 것 모든 것이 씨를 뿌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삶 속에서 무엇을 심을 것인지 깊게 생각해야 한다.
전도를 하다보면 참 낙심할 때가 많다.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마치 바위에 계란을 던지듯 허공에다 외치는 것처럼 마음이 힘들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을 의지하여 열심히 씨를 뿌린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고, 시편 126편 5절~6절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고 말씀한다. 말씀에 의지하여 계속해서 1년이란 세월 동안 열심히 말씀으로 심고 사랑으로 심고 섬김으로 심었을 때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받아들이고 주님을 영접한 한 영혼을 바라볼 때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자연법칙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적게 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사람은 많이 거둔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적게 심어 놓고 많이 거두려하고 육체로 심어놓고 영생을 거두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일뿐 만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결코 변경시키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 이 땅 위에서 심은 그대로 그 언젠가 주님 앞에 설 때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또한 타락한 육체의 본성을 따라 규모 없이 이 세상의 유익과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고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성령을 쫓아 살아간다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어 풍성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최대의 선물은 바로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아니함을 기억하고 오늘 나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 깊게 고민하자.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간다면 영원한 생명과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반열 위에 견고하게 서서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는 선한 일을 끝까지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면 피곤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둘 것이다. 주님 앞에 서는 날 기억하여 계속해서 악에 지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기쁨의 상을 바라보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고 결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선한 길을 함께 달려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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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고 거두는 법칙 (갈 6: 6-10)
가을이 되면 들판의 오곡백과가 만발하는데 그 이유는 봄에 농부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씨앗을 심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심어야 거두는 법칙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첫째로: 심은 것을 거두는 법칙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벼를 심으면, 벼가 나오고, 밀을 심으면 밀이 나오고,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이것이 땅의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심지도 않고 거두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강도요 사기요, 도적의 심보입니다. 노력도 투자도 하지 않고 갑자기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고 갑자기 성적이 올라 갈 수 없습니다. 열심히 훈련하지 않고 갑자기 챔피언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심은 것을 오늘 거두게 되고, 오늘 심은 것은 미래에 성공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갈 6장 8절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심은 것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평상시에 찬송을 많이 심으면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 납니다. 평상시에 기도를 많이 심으면 기적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평상시에 열심히 몸으로 봉사를 심으면 건강하게 됩니다. 평상시에 물질을 많이 심고 구제와 섬김을 심으면 축복의 열매가 가정과 기업과 자녀들의 삶 가운데 넘쳐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심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축복과 영생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심은 만큼 거두는 법칙
사람들은 많이 거두기를 원하면서 적게 심거나, 심지어 심지도 않고 많이 거두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악한 사람 또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마 25장 26절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라고 책망합니다.
심은 것을 거두고 심은 만큼 거두는 것이 진리요 성서의 법칙이요 세상사와 우주의 법칙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준비된 연보를 강조 하면서 고후 9장 6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셋째로: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는 법칙.
갈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은 때의 법칙을 의미합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열매를 거둡니다.
젊어서 비전을 심고, 노력을 심고, 시간을 심고, 헌신을 심으면 노년기에 모든 축복으로 거두게 됩니다. 뿌릴 시기를 놓치면 거둘 때 거두지 못합니다. 무엇이든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 3장 1-2절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고 28번이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가끔 심은 것이 열매가 나지 않을 때 실망하고 낙심할 때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낙심(落心)이란 떨어질 낙(落) 마음심(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순간 낙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 마귀권세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완전히 가로막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뒤로 물러서거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를 먹게 될 것을 믿습니다.
사 60장 21-22절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원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야훼가 속히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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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고 거두는 법칙(고후9:6) / 예사랑교회 / 한명국 목사
“심은 대로 거두는데서 봄에 심어야 가을에 거두듯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아무래도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된다. 넓은 밭 혹은 넓은 등에다가 많이 심어야만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다. ‘수풀이 있어야 도깨비가 나온다’는 옛말이 옳다.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다. 그런데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심으면 조금 거두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거두려고 하는 사기꾼과 포학한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삼밭에 들어가서 밤사이에 삼을 전부 캐어서 도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이 양육한 염소 모두를 도둑질해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40여년 한미전도대회에 통역해온 중에 미국 텍사스주의 아말리로에서 온 농부 성도는 비행기로 씨앗을 뿌리는데 가을의 밀 수확은 작은 산봉우리를 이룬다고 간증했다.
많이 나눠주면 많이 받고 오그라진 손은 줘도 받을 수가 없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는데 어떻게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가? 그것이 씨앗이 되어 많은 열매를 거둬 드리게 한다는 것이다. 많이 전도하고 많이 선교하는 교회도 역시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3:27)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11:24)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이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또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서 싹이 나오다가 햇빛에 타버렸고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가시가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심겨진 씨앗의 열매는 30배도 되고, 60배도 되고, 심지어 100배까지 열매를 맺는다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그 씨를 심은 밭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 씨가 심겨지는 밭에 따라서 그 소출이 결정된다. 길가에 심겨진 씨나 돌밭에 심겨진 씨 또는 가시덤불에 심겨진 씨는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오직 좋은 밭에 심겨진 씨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또 풍성히 맺을 수 있다. 우리는 똑같은 말씀을 받으나 그 말씀을 받는 우리의 마음 밭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열매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며, 그 열매의 풍성함과 궁핍함이 결정된다.
농사는 땅에 하고 과수는 밭에 하고, 수종 갱신한 나무는 산에 심는다. 물고기는 바다에 양식을 하고 닭은 양계장에 키운다. 바다나 땅 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도 정직하게 씨앗을 심은 자가 그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공부는 자신에게 심고 자신이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땅은 정직하다. 이 밭에서 심고 저 밭에서 거둘 수 없다. 심은 밭에서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심지 않고 남의 것을 거두는 것이 바로 도둑이다.
‘자기가 행한대로 도로 받는다’(자작이환자수-自作而)還自受)는 것이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떼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고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 때를 말씀했다.
수고의 대가는 언제나 따르게 마련이다. 사회에서나 학교에서, 즉 어디서든지 사람이 힘쓰고 노력하는 대로 그 수고의 대가는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했는가가 문제이다. 봄에 씨앗을 심어놓고 낮잠만 자는 게으른 사람은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다. 무더운 여름에도 들에 나가서 잡초를 뽑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약을 치며 벌레를 잡는 사람, 또 비가 오지 않아서 가물 때에 물을 대는 등 힘쓰고 애써서 정성과 노력을 다하는 사람은 가을에 더 많은 열매를 수확한다. 그의 창고는 그 수고의 열매가 가득히 쌓이게 된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두 개의 화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주인의 보기에 좋고 아름다워서 손이 가는 화분은 주인이 관심을 갖고 가꾸는 만큼 더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가꾼 만큼 거두게 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봄에 심을 때이고 가을에는 추수할 때이다. 흔히 채소라도 심어서 한 달 혹은 두 달이 지나야 거둬 먹을 수 있다. 몇일 전에 필자는 화분에 심어 놓았던 상추를 약 한달 반 동안 가꿔서 먹었다. 모내기를 한 후 8~9월 즈음에 벼가 송송 나오는 것을 보고 낫을 들고 가서 추수하는 농부가 어디에 있겠는가? 과수원지기도 과일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린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 마지막으로 씨를 뿌리는 시기를 망종(亡種)이라고 한다. 이 시기를 지나면 씨에서 싹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때를 놓치면 안된다.
수확의 시기도 놓치면 헛농사를 짓게 된다. 무슨 일이든 때가 있다. 기회를 놓치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고 말씀했는데,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 말씀은 기회를 사라는 말씀이다. 기회를 값을 주고 사는 것처럼 그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씨를 심을 때와 추수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흘러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기회를 사서, 대가를 지불하는 심정으로 그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우리는 씨앗을 심고 선행을 심듯이 교회를 섬겨야 한다. 계란도 최소한 22일 내지 23일을 품어야만 병아리가 되고 사람은 대략 10개월이 돼야 해산을 할 수 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약5:7~8)
결국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알찬 수확이 따른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이 심은 씨앗도 가을에 맺힌 열매를 보면 그 모양이 다르고, 그 수량이 다른 것을 본다.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욜2:24~25)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때에 밀이 가득하게 되고,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게 될 것이다. 열매와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해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때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다(창26:12~14). 한 두 배의 소출을 얻는 것은 사람이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백배를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가 창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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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는대로 가두는 법칙의 비유" / 송기현 목사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누게 될 비유의 복음은 "심는대로 가두는 법칙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바울사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고 간단한 자연의 법칙을 들어서 가장 고상하고 귀중한 영적인 법칙을 설명하고자 오늘 본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의 비유"입니다.
오늘 주시는 "심는대로 거두는 볍칙의 비유"가 알려주는 교훈이 무엇인 몇가비로 살펴보겠습니다.
1. 심어야 거둔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전제하고(갈 6:7) 있습니다. 심는 것이 원인이라면 거두는 것은 결과입니다. 즉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겠습니까?
농사를 지은 사람들은 오늘 읽은 말씀을 가지고 이의를 제기하는 분은 한분도 없을 것입니다. 땅엔 사람이 심었든지, 자연의 섭리 안에서 바람이나 짐승이나 곤충들에 의해서 심기워졌던 반드시 심었다는 사실이 있을 때에 만 거두어 드리는 결과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길 원하는 것은 도둑의 심보인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심어야 거두게 되는 법칙 속에 살아갑니다. 물론 나자마자 죽은 인생이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만 그렇지 않고서야 주고, 받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사람 마다 다르게 적게 심기도 하고, 많이 심기도하고, 좋은 것을 심기도 하고, 나쁜 것을 심는 차이는 있을 지 모르겠으나 반드시 심고 거두는 일은 우리의 삶입니다. 인생 자체가 이렇듯 심고 거두는 법칙 속에 있다면 우리는 더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 심는 일을 부지런히 애햐 합니다.
신앙생활도 하나님 앞에서 심는 일입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의 정성스러운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구하여 전무후무한 지혜를 거두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시므로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와 장수의 축복까지 더해 주셨지요. 욥기 1:5절에 보면 욥은 자식들을 위하여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했습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많은 구제와 선행을 심어 자신이 구원받는 축복과 가정 복음화의 축복까지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말로 심고, 물질로 심고, 헌신과 봉사로 심고, 자신을 이해서도 심과 자식들을 위해서도 심어야 합니다.
2. 심는대로 거둡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무엇으로 심던지 심은 대로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선하게 심으면 그리로부터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고, 악하게 심은 사람들은 악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보다 더 확실한 진리는 없습니다.
심어야 하는데 잘 심과 많이 심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농부들은 과도한 욕심을 부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얼마만큼 심었으니 얼마만큼 거두어드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몇년간만 농사를 지어도 그냥 계산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연이 따라주어야 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농사에는 억지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종자를 심고 그 종자를 길러내는 수고에 따라서 양이 결정되고 질이 결정되는 것이 농사입니다.
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심지 않는데서 거두려고 하고 나쁜 것을 심어놓고는 좋은 것들을 거두려는 이들이 있어서 평화가 깨어지고 살벌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심는대로만 거두겠다고 하는 세상은 필연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심을 것인가?"하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 심으면 팥이 납니다. 결코 그 땅에서 다른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반드시 심은 것을 거둡니다. 일하지 않고 대가를 바란다든지, 콩 심어 놓고 팥 나오기를 기다린다든지, 나쁜 씨를 뿌려 놓고 좋은 열매를 기다리는 것 등, 이런 것들이 바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자신과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농부는 파종(播種)하기 전에, 이번에는 무엇을 심을까 깊이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두기 위하여 먼저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여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뿌리를 심습니다.
오늘의 본문 7절과 8절에서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한 것은 지난날에 심은 결과이며 미래의 나는 곧 오늘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하는 것에 따라서 결정이 될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인 것입니다.
3. 때가 되면 거둡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선을 위하여 심고 착한 양심을 위하여 심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루리라"고 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거두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심은 사람은 결실의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추수할 날을 기다리는 것은 일하는 일꾼들의 기쁨입니다.
심는 것을 하루 아침에 거두는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것들은 긴 과정을 거칩니다.
어떤 것은 심은 사람이 거둘 수 없으리만큼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바심 가질 필요 없고, 낙심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은 것을 반드시 거두게 해 주십니다. 본문 9절에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 기회 있을 때에, 바로 지금 열심히 씨 뿌려 가꾸시기 바랍니다. 때가 차면 반드시 거둡니다. 심는 사람은 꿈이 있으나 심지 않는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를 위하여 뿌리고 심으면, 내세의 영생과 천국을 거두며, 예수를 위해 살면 현세와 내세에 풍성한 것으로 거둡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풍성한 것으로 거두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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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고 거두는 법칙 / 시편 126:5~6 / 정필도목사
창세기를 읽을 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장면을 읽으면 속상합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죄 없는 세상에서 죄를 모르고 살고 있을 것입니다.
죄로 인한 고통이 없을 뿐 아니라, 먹고살 걱정 없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겠습니까. 의식주를 비롯하여 아무 걱정할 것이 없는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므로 우리가 오늘날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살 자격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에서 살게 하셨지만, 그것을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후,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메마른 땅을 일구어서 채소를 심는 수고를 해야 먹고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땀을 흘리며 씨를 심는 수고를 해야 먹고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수고를 해야 기쁨으로 거둡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시 126:5~6).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의 법칙입니다. 수고한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고 수고한 대로 먹고살게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시편 127편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집을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집을 잘 지었어도 자신은 그 집에서 잘 살아보지도 못하고 판잣집에 가서 살게 됩니다. 짓느라 수고했지만, 그 집에서 사는 복은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성을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밤새 성을 지키고 있지만, 도둑은 옆으로 들락날락하니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힘들게 일하지만 소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지 않으시면, 내 손이 수고한 것이 모두 헛수고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우리의 수고가 헛수고가 되지 않는 축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시편 128편 1~2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외의 우상을 섬긴다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수고한 대로 거두는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태풍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피해는 엄청납니다. 정부에서는 5조 원의 피해가 있다고 하지만, 실제 피해는 50조 원이라고 합니다.
태풍은 그 동안 피땀 흘려 농사지어 놓은 것은 물론, 집과 다리 등을 한 순간에 쓸어버립니다. 그 동안 많은 돈을 들이고 수고했지만, 그게 다 헛수고가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작은 문제 하나가 생기더라도 “아버지, 도대체 저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십니까? 왜 이런 일이 있게 하십니까?”하고 하나님께 물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그런데 태풍이 우연이겠습니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태풍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고한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아니하고 수고한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내가 수고한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고, 수고한 것에 대한 대가가 돌아와서 그것 때문에 잘 살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 일이 잘 되어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것은 축복이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형통하므로 우리의 손이 수고한 대로 먹게 되는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명은 한 마디로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로마서 13장 9절에 보면,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하면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므로 사랑한다면 율법을 다 지키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롬 13:10). 내가 사랑하면 그 사람의 것을 어떻게 도둑질하겠습니까. 내가 사랑하면 어떻게 그 사람을 죽이겠습니까. 내가 사랑하면 어떻게 그 사람에게 거짓말해서 재산을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 계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사랑하라는 말 속에 다 포함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는 축복을 받으려면, 사랑을 심고 축복을 거두는 법칙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 받는 비결이요,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게 하는 비결이고,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사회, 행복한 세상이 되는 비결입니다.
사랑을 심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 받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을 심어야 축복을 거두는 법칙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사랑을 통해서 이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심으면, 내가 사랑을 심은 대로 행복이 돌아오고, 축복이 돌아오고, 사랑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심으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밤낮 불만이 가득합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려는데, 누가 그 사람을 사랑하겠습니까. 심지도 않았는데, 거둘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불만이 가득하고 밤낮 불평하고 원망하고 지옥이 됩니다.
언제나 내가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사랑을 심어야 합니다. 심은 것이 있으면 축복이 돌아오고 행복이 돌아옵니다.
A라는 회사의 사장님은 참 좋은 분입니다. 사장님은 사원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고, 직원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월급을 많이 주려고 합니다. ‘이익을 골고루 배당해서 이 회사 직원들을 제일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원들은 사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사장님이 시키지 않아도 자원해서 열심히 일해서 많은 이익을 얻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사장은 사원을 사랑하고, 사원들은 사장을 사랑합니다. 사랑을 심으면 무엇을 거두겠습니까? 축복을 거둡니다. 행복을 거둡니다.
그 회사는 모두가 한 가족과 같습니다. 사원들이 수익을 높이려고 열심히 일하니까 회사가 계속 번창합니다.
그런데 B라는 회사는 정반대입니다. 사장은 돈만 많이 벌려고 할 뿐, 사원들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사원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일을 많이 시키려고 하고, 월급은 조금 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원들도 사장을 닮아 회사가 망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일은 적게 하고 월급만 많이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래서 4개월 동안 데모를 하여 결국 적자를 내고 부도가 나서 사장님도 사원들도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둡니다. 선을 심어야 선을 거둡니다. 이 법칙을 왜 모릅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 사업가들 중에도 이 법칙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의 장로, 집사이면서도 이 법칙을 모릅니다.
회사가 잘 되고 함께 복을 받으려면 사랑을 심어야 하는데,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일은 많이 시키고 교회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월급은 적게 주려고 합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희생하는 것이지, 왜 남에게 희생을 강요합니까. 사랑을 심어야 축복을 거두고 행복을 거두는 법칙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섬기는 것이며, 베푸는 것이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사랑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의미에서 좋아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도 받아주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대접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라”는 말은 사랑을 심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축복이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을 베풀면 엄청나게 돌아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대접받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접받으려고 기대했다가 대접받지 못하면 섭섭합니다. 그래서 은근히 원망스러운 마음, 불만, 불평이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이 대접하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편이 대접하지 않은 것만 생각하며 원망하는 마음이 쌓여 상대편을 비난하게 되고 불평하게 되고 욕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결국 마귀가 역사하고 마음을 갈라놓습니다.
이와 반대로 대접하려고 생각하면, 대접받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베풀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행복합니다.
사랑을 심고 축복을 거두는 법칙, 사랑을 심고 행복을 거두는 법칙대로 살아서 성공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노예로 팔았지만, 요셉은 형님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형님들의 자손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부리는 사람에게도 앙심을 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여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었습니다. 그를 가정 총무로 삼으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해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셔서 여호와의 복이 보디발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습니다(창 39:5).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요셉은 원한을 갚으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요셉이 자기 맡은 일에 성실하게 임하니까 만사가 잘 되고 형통헸습니다. 그래서 죄수들을 돌보고 열쇠를 가지고 제반사무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남이 나에게 손해를 주었거나 어떤 누명을 씌웠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사랑을 심으면 축복이 돌아옵니다.
강철 왕 카네기도 사랑을 심고 축복을 거둔 사람입니다. 카네기는 어렸을 때에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카네기는 신문팔이도 하고, 우체국에서 일하며 자랐습니다.
카네기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자란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가 어서 커서 돈을 벌어 부모님을 편안하게 살게 해드려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강철 회사에 다닐 때에는 ‘내가 어떻게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살아갈까’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늘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돈도 없고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같은 시간에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질이 좋은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시간당 돈을 주는 것이지 많이 만들었다고 돈을 더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바보라고 부르면서 멸시했습니다.
하지만 카네기는 흔들리지 않고 ‘누구에게든지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해서 인정 받아 어린 나이에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사장을 맡기면 회사를 위해 얼마나 유익하겠습니까. 그래서 회사가 번창해서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고, 카네기는 강철 왕이 되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은 홀로 사시는 시어머니를 버리고 시집 가서 새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불쌍한 시어머니를 혼자 살게 둘 수 없어 시어머니가 가라고 해도 가지 않았습니다.
룻은 시어머니께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룻 1:16~17)”고 말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께 사랑을 심었습니다.
룻에게 돌아온 축복은 대단합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영광스러운 집안에 모압 여인이 들어갔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언제나 사랑을 심으면 반드시 축복이 옵니다.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심은 것이 있어야 돌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이 돌아오고, 나쁜 것을 심으면 나쁜 것이 돌아옵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 축복, 행복이 돌아옵니다.
상대편에 개의치 말고 ‘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까, 어떻게 베풀까, 어떻게 대접할까,’라고 고민하며 애써보십시오. 머지않은 장래에 돌아오는 축복이 엄청날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지혜요, 비결이요,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대접하지도 않고 대접받지도 않으려는 것, 인사하지도 않고 인사받지도 않으려는 것, 칭찬하지도 않고 칭찬받지도 않으려는 것,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받지도 않으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기심에 눈이 어두운 사람입니다. 옆의 사람에게 관심과 사랑이 없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행복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마치 목석과 같은 인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요즘 수재민이 많습니다. 삽시간에 집을 잃어버리고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형편에 처해보신 분이 아니면, 수재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개울가의 다리 위에 판자로 댄 집에서 살아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에 그 집마저 헐렸습니다.
그래서 갈 곳이 없어서 구로동의 벌판에 허름한 집을 지었습니다. 땅은 진흙으로 되어있는데, 비가 오면 홍수가 났습니다.
그렇게 고생한 적 있기 때문에 지금 수재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이렇게 0어려움 당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태풍이 오고, 지진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환난이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을 심을 수 있는 기회,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축복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축복 받을 기회가 우리에게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사랑을 심으라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을 심는 행위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서 돌아오는 사랑의 크기도 크지만, 하나님께 사랑을 심으면 백 배, 천 배, 만 배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은 일종의 사랑의 표현이고, 사랑의 고백입니다. 사랑을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준비된 예물을 기쁨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또 십분의 일을 떼어 부모님께 용돈으로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도 백 배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행복과 축복이 돌아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랑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축복과 가장 큰 행복을 거두게 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바쁘고 일이 많았지만 아침이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기브온 산당에 가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이 받은 축복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위해 사랑을 심었을 때에 돌아온 축복이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께 사랑을 심으면 축복과 더불어 행복도 얻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심고 거두는 법칙에 따라 많은 것을 심고 거두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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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 대로 거두는 인생입니다 / 갈6:7-10 / 박용래 목사
❤ 세상에는 다양한 법칙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 법칙들에 의하여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 법칙들 가운데 심고 거두는 법칙이 있습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법칙입니다. 인류는 아담 이후 항상 농경생활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이 농경생활이 아무리 과학화되고 기계화되고 편리하게 발전해 왔지만 영원토록 변함없는 법칙이 있습니다. 바로 심고 거둔다는 법칙입니다.
창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삶이 아무리 발전해 간다 하더라도 영원토록 결코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은 우리의 눈으로 쉽게 확인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한 알의 씨앗을 심으면 하나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가 열립니다. 그리고 그 열매들은 또 다른 씨앗을 가지고 있어서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심은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심고 거두는 법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몇 가지 음성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심어야 거둔다는 법칙입니다. (7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심어야 거둔다는 법칙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한 이 진리를 무시하고 심지 않고 거두려고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 어느 신학생이 시험지 답안지에 이렇게 적었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맞는 말이죠. 다 아시죠. 교수님의 채점도 멋있었습니다. “하나님은 100점, 학생은 0점.” 공부도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만 기대한다는 것은 심는 법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착각 속에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모든 사정을 다 아시니까 나를 이해하실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사정을 잘 아십니다. 하지만 심지 아니하면 열매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칙이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 성경에 보면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사람, 나쁜 것, 악한 것을 심어 놓고도 좋은 열매를 바라는 것은 두 가지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❶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자신도 열매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열매를 찾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속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파종하지 아니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놀기만 하다가 추수 때에 낫을 들고 논으로 추수하러 간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런 일들이 우리들의 생활 속에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벌기를 원하고,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만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의 근원이 되는 교회를 위해서 목표를 세우고 기도했으면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고 행동은 반대되는 일만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자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삶을 살아간다면 참 서글프고 부끄러운 신자입니다.
❤ 성경에 보면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사람, 나쁜 것, 악한 것을 심어 놓고도 좋은 열매를 바라는 것은 두 가지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❷ 하나님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 말씀은 개역성경에는 “만홀히 여긴다.”고 번역을 했습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말은“가볍게 취급한다.”“조롱한다.”“우습게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아니하는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심지도 아니하고 좋은 열매만 구하려고 하는 것, 나쁜 것, 악한 것을 심어 놓고도 좋은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고 또한 하나님을 우롱하는 행위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사람은 반드시 심어야 거둘 수 있다는 법칙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입니다.(8)
8~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나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이 우리의 경험입니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답니다. 그 여인은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가게의 주인은 자기가 믿는 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은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냐? 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무엇을 파는 가게냐고 묻자 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여인은 외쳤습니다. “제게 행복과 부, 아름다움과 지혜를 주세요.” 그러자 신은 조용히 웃으면서 하는 말은 “미안하네. 여기서는 열매를 팔지 않고, 다만 씨앗을 팔 뿐이네”라고 대답했답니다.
모든 열매는 씨앗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씨앗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씨앗은 조그맣고 주름지고, 씨눈은 작고 보잘것없습니다. 게다가 땅속에 뿌려야 합니다. 그러나 씨앗 속에는 생명이 있어 많은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심기는 싫어하면서 열매만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심는 것을 나누어 보면 크게 두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과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7:16~20~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열매를 보면 믿음의 사람인가? 불신앙의 사람인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주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한 열매를 맺어 놓고도 선한 나무처럼 아무리 우겨 봐도 아무리 속여 봐도 하나님께서 찍어 불에 던지 우는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악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지 아니합니다.
또한 좋은 것을 심느냐 나쁜 것을 심느냐?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심느냐로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인류의 비극은 이것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에 시작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위하여”라는 말을 참 많이 씁니다. 건배할 때도 “위하여”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일 좋은 “위하여”는 “성령을 위하여”입니다.
❤ 같은 것을 심으면서도 그것이 누구를 위하여 심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생명이 되기도 하고 사망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누구를 위하여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 일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갈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바울은 이런 것을 행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삶을 살면서도 선한 열매처럼 우겨 봐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이런 삶을 살면서도 “교회에 가서 잠깐 회개하면 괜찮겠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파 같은 신앙인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안일한 신앙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이는 하나님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단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속히 우리 안에 있는 이단적인 생각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직 하나님도 잘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상태에서, 육체를 위해 심었다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원로들과 직분자들은 그런 핑계를 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은 여전히 육체를 위하여 살면서도, 마치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것처럼 위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이는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속아 넘어갈 줄로 알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속마음을 숨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속 다르고 겉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겉으로는 믿음이 좋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예배생활 기도생활 헌신생활에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에게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렇게 착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갈 6:8).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열매는“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등의 ‘성령의 열매’를 언급하였는데(갈 5:22-23), 이러한“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자를 성령을 위해 심는 사는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입니까? 아니면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입니까?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느냐?”하는 것이 영생이냐 영벌이냐가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직분 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열매를 맺어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 자들이 되시어 성령의 좋은 열매를 맺음으로 영생의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좋은 것을 심어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모두가 씨를 파종하는 농부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날마다 심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이는 선을 심고 어떤 이는 악을 심으면서 살아갑니다. 또 어떤 이는 사랑을 심을 수도 있고 미움을 심을 수도 있습니다. 화평을 심을 수도 있고 불화를 심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심는 종류를 따라 우리 미래의 생활에서 그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거두는 시기도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심는 것을 내일 거둘 수도 있고 금년에 심는 것을 내년에 거둘 수도 있고 어렸을 때에 심는 것을 청년 시대에 거둘 수도 있고 청년 시대에 심은 것을 노년 시대에 거두기도 합니다. 부모들이 심은 것을 자식들이 거두기도 합니다. 금생에 심는 것을 내생에 거두고 하고 이 세상에서 심은 것을 저 세상에서 거두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심은 대로 거둘 때가 반드시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위해 심은 사람들은 영생에 들어갈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 심은 자들은 영원한 형벌에 들어갈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법칙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가 심는 대로 거두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법칙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것을 심어서 자식들에게 좋은 열매를 거두는 삶도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아니한 여러분의 남은 인생에 무엇을 심기를 원하십니까?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헛된 것뿐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좋은 것 선한 것을 많이 심어서 땅 위에서도 기쁨과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고 하나님 앞에서 영생을 누리시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