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5. 큐티
마태복음 27:54 ~ 66
예수님의 장례
관찰 :
1) 예수님이 죽으셨다
- 54절.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이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장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것이 아니라면 장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죽었기에 장례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예수 사건은 마무리되는가?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들은 기묘하게도 자신들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의 죽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백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일어난 지진과 바위가 터지는 등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심히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들의 진솔한 고백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잠시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조롱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이들의 고백은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 홀린 반응이 아니라 진솔한 고백일 수밖에 없습니다.
2)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
- 55절.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십자가 가까이에 있지 않았습니다. 멀리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로마 군병들에 의해 제지되었기 때문에 십자가 가까이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차마 십자가 밑에서 뿌려지는 예수님의 핏방울을 맞을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 56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살로메 마리아, 예수님의 이모)가 있었습니다. 향후 이들은 초대 교회를 위해 몸 바쳐 헌신한 이들이 됩니다.
3) 저물었을 때에
- 57절.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 신명기 21:23에 의하면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 방치해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았기에 그 시체를 밤이 새도록 나무위에 방치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 다음날은 안식일이면서 유월절 명절이기에 시체를 옮길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 전에 장례를 치러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이고 부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산헤드린 공회 회원, 의로운 사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결정에 찬성하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 58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정치력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는 명령을 통해 예수의 시체를 저물었을 시간에 내주었습니다.
- 59절 ~ 60절.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 요셉은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갔습니다. 예루살렘 주변에 무덤이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경제력과 신분의 고귀함을 상징했습니다. 이렇게 개인 무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 무덤을 가리는 큰 돌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예수님의 장례가 일사천리로 처리될 수 있었습니다.
- 61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아더라”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비한 무덤을 향하여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있었습니다. 즉,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직 앞으로 될 일들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죽음을 애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곳에 없었습니다. 여인들이기에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예수님을 죽인 자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4)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두려움
- 62절.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 안식일이자 유월절이 되어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나아갔습니다. 이들은 서로 매우 싫어하는 사이였으나 예수님을 죽이는 일과 그 처리하는 일에는 이렇듯 죽이 잘 맞고 있습니다. 더구나 명절 기간에 이렇듯이 빌라도를 알현하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63절.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 빌라도를 주라 부르며, 예수님을 속이던 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웠던 것입니다.
- 64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곧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하나이다 하니” => 제자들은 두려움에 빠져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부관참시라도 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한 두려움을 이딴 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더럽고 악한 ‘갑’이라 생각하는 자들의 횡포를 보게 됩니다.
- 65절 ~ 66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 빌라도는 경비병을 붙여주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무리들은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켰습니다. 여기서 인봉을 하는 것은 빌라도의 인장반지를 진흙에 찍어서 그 돌에 붙여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떨어지는 것은 로마 황제의 대리인 총독의 권위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덤을 여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행정적인 조치가 되는 것입니다. 당대의 로마 경비대는 16명이 한 조로 4명씩 교대로 24시간 경비를 담당하던 조직이었습니다. 이 조직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이들은 훈련받은 자들로 방패와 창, 그리고 단검으로 무장되어 건장한 일반인 수십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더라도 이들 네 명을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로마 군인을 건드리면 당시 예루살렘에 주둔하던 천부장 조직이 동원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철통같은 경비를 서도록 빌라도에게 요구를 했고, 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의 무덤은 누구도 들어가고 나올 수 없도록 경비가 세워졌던 것입니다.
가르침 :
1)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 아리마대 사람 요셉. 그는 원래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예루살렘에 있는 존귀한 자가 묻힐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내어드렸습니다.
- 니고데모. 요한복음에 그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나 준비했습니다. 1리트라는 약 327그램으로, 즉 니고데모는 32리터가 넘는 향유를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허비’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는 한 근, 즉 1 리트라를 부었던 것에 비해 100배의 향유를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물론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은 순전한 나드로 같은 양으로 볼 때는 더욱 가치가 있는 향유였지만, 니고데모가 드린 것은 100 리트라로 마리아가 드린 향유의 가치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가치가 있는 것을 드렸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이 마리아의 행위를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증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녀의 많은 재물과 값비싼 헌물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장례에 동참한 것입니다.
- 여인들.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더 용감하게, 그러나 심한 아픔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했고, 장례를 치루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는 것으로 인해서 세상에서의 배척과 비난이 따를지라도 감내하겠다는 믿음과 용기가 있었던 자들입니다.
2)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장본인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눈여겨보았고, 로마법대로 처리해서 로마인 의사의 입도하에 예수님의 죽음을 재차 삼차 확인했던 이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제자들이 거짓 증언을 하는 것으로 무리들이 선동될 것을 염려하듯이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을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면 그가 메시야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들은 결코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존재들이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예수님의 부활마저도 방해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이들은 어거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묘히 다른 것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나서 경비를 서고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을 목격한 이들에게 뇌물을 써서 말도 되지 않는 소문으로 예수님을 부활을 가리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참으로 악인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적용 :
1)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믿음과 용기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도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이런 담대함과 믿음이 있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음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 마리아와 그녀의 말을 듣고 따르는 여인들은 예수님의 너무나 비참한 죽음에 슬퍼했지만 또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믿고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최소한 마리아 만큼은 그러지 않았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고 믿는 믿음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바로 알고 그 권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이 용기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2) 자신들의 기득권 때문에 조상 때부터 믿어오던 메시야 사상마저도 다 팔아버리는 이 악한 자들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인간 본연의 죄악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가 참 메시야여서 부활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가진 기득권을 뺏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나를 따르라고 했다고 할지라도 내가 이 땅에서 누리는 축복을 넘겨드릴 수 없다고, 내가 누리는 풍요를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들과 똑같은 모습에 불과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신지를 다시금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어긋나는 순간, 나는 다시 예수님을 제쳐두고 나 자신이 나의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행사하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귀하고 놀라운 헌신과 희생을 이들은 이렇게 악하고 악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자들입니다. 그것이 나 자신이 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