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로 우리는 훈민정음 중성 `ㅏ`를 읽을 때 초성 `ㅇ`을 붙여 `아`로 읽어오고 있다. 그렇더라도 엄밀히 말해, 훈민정음 체계에서 중성 `ㅏ`는 `아`와 다르다. 어떤 점이 다른가. `아`는 `초성+중성`의 완전한 음(音)이지만, 초성 없는 중성 `ㅏ`만으론 입으로 발음할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는 아직 음을 이루지 못한 하나의 음소로써의 성(聲)일 뿐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단소를 가지고 `중(仲: 솔)` 음을 내기 위해 손가락으로 1공~4공을 막고 입을 취구에 갖다 대되 아직 입김을 불지 않아 소리가 나지 않는 준비 상태가 바로 `ㅇ` 없는 중성 `ㅏ`이다.
그 상태에서 김을 불어 넣어 속이 빈 단소에서 나오는 `소리`가 바로 `ㅇ`이 붙은 `아`이다. 텅 빈 피리에서 나는 진동 소리처럼, 텅 빈 목구멍에서 다른 조음기관에 의한 막힘이 없이 나는 소리가 바로 목구멍소리 진동음 `ㅇ`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맨 앞 `어제훈민정음` 편에서 세종대왕은 초성ㆍ중성ㆍ종성을 언급한 뒤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에서의 `음의 법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무릇 훈민정음 글자는 반드시 초성ㆍ중성ㆍ종성을 합쳐 써야만 하나의 음을 이룬다(凡字必合而成音。)"
이 법칙에 의하면, 초성 없는 중성만으로는 하나의 음을 이룰 수 없으며, 그 역도 성립하니, `성(聲)`은 `음(音)`을 이루는 `음소`이다. `초성`, `중성`, `종성`은 세종대왕이 지은 용어이다. 이 중 `초성`은 <사진>의 어제훈민정음 편 "ㄱ。牙音。如君字初發聲(ㄱ은 아음이니, 君자 처음 펴나는 소리 같으니라)"에서 증명되듯, `초발성(初發聲)`의 준말이다. `중성`과 `종성`은 준말이 아니다.
`초발성`처럼 `發(필 발)`자가 들어가지 않는다. 초성에만 `발`자가 들어가는 이유는, `발생(發生)`이란 것이 처음(初)으로 생기는 것이고 또 해례본의 설명처럼 초성은 `발동(發動)`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중성은 초성의 발생을 이어받아 종성에 이어 붙여 음을 완성시키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ㅏㆍㅑㆍㅓㆍㅕ` 등 중성자를 읽을 때 편의상 목구멍소리 초성 `ㅇ`자를 붙여 읽는 것은 모든 중성이 열린 목구멍 상태이기 때문이다.
`ㅇ`은 뻥 뚫린 동그란 목구멍의 모습을 상형한 글자로(목구멍을 막은 것은 아음 `ㆁ[ŋ]`), 우리말에서 모든 후음은 성문개방음이다. 모든 중성은 비록 목구멍의 열림 정도에 차이가 있고 그 자체만으론 소리를 못 낼지라도 성문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목구멍소리와 같고, 여러 초성 중에서 `ㅇㆍㆆ`과 서로 긴밀하다. 이처럼 중성은 물론, 초성 글자만으로써는 사람들이 그 글자를 읽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세종께서는 중국의 36자모처럼 훈민정음 23개 초성자에 대해 정식 명칭을 부여했다. 이에 대해선 2018년 10월6일자 `세종대왕, 자주ㆍ애민뿐 아니다…훈민정음 부국정신 최초규명`과 2019년 10월8일자 `훈민정음 초성 노랫말에 담긴 깊은 뜻`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훈민정음해례` 편 11-1에 쓰인 `君(군)ㆍ斗(두)ㆍ?(별)ㆍ?(즉)ㆍ戌(슐)` 등은 초성에 붙인 정식 명칭으로써 `ㄱㆍㄷㆍㅂㆍㅈㆍㅅ`자를 나타내고 읽은 예이다. 반면, <사진>의 왼쪽에서처럼 훈민정음 언해본에 쓰인 `ㄱㆍㄷㆍㅂㆍㅈㆍㅅ` 등의 모든 초성은 주격조사로 일괄 `난`이 쓰인 것으로 보아, 편의상 제1번 중성자인 `?`를 붙여 읽은 음성기호적 독음 예이다. 중성 `ㅣ`를 붙일 경우엔, 당시 `ㅣ`도 주격조사였으므로 `난`과 중복돼 곤란하다.
성명 외에 호(號)도 있듯, 이처럼 초성에 대한 정식 명칭 외에 편의상 중성 `?`를 붙여 읽은 두 가지 독음 방식은, 로마자에서도 마찬가지다. `lㆍmㆍn`은 `엘ㆍ엠ㆍ엔`으로도 읽지만, 국제음성기호에선 [l]은 `르`, [m]은 `므`, [n]은 `느`로 읽는다. 언해본에서 중성을 붙여 읽은 방식은 오늘날 `가나다라` 식 독음교육의 시초이다. 다만, 입을 크게 벌리는 `가나다라` 보다 `?`자를 써 입을 더 작게 벌려 발음한 것과 초성의 배열순서가 달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