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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 얘기한대로, 06-07 시즌 중에는 신선한 공기의 회오리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구단으로 불어들어왔다. 신인상의 브랜든 로이와 그의 공범자 라마커스 알드리지가 오면서 활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1년차 포틀랜드 선수들 - 지난 몇년간 드래프트였든 트레이드였든 들어왔던 - 보다도 성적의 기준을 높게 잡았다. 기대에 비해 부진했던 선수들에 익숙했던 팬들은 루키 2명의 긍정적인 플레이를 흡수했다. 팀은 11승이 늘어났다. 총합은 대단치는 않은 32승이었지만,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긍정적인 의욕으로 이어졌다. 2007년 5월, 사장 겸 GM 스티브 패터슨이 사임하고 케빈 프리차드가 새 GM에 임명되면서 포틀랜드 프런트는 새롭게 단장했다. 프리차드는 로이와 알드리지를 데려온 2006년 드래프트의 설계자로 널리 소문이 퍼졌다. 패터슨은 모든 역경을 견뎌냈지만, 결국 실제로는 욕먹던 전임자 밥 윗싯보다도 더 악당이 되었다. 팬들은 변화에 환호했다.
프리차드가 오랫동안 비난받던 조직을 응원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면서 프리차드에 대한 긍정적 희망은 숭배에 가깝게 변했다. 돌이켜보면 프리차드의 발언은 대개 상투적이었다. "우리는 모든 가능한 드래프티에 대한 책을 갖고 있다. 우리 스카우터들은 알맹이와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해 다함께 일한다. 우리는 프로스포츠에서 최고의 구단주를 갖고 있다." 이런 발언들은 Media Relations 101 handbook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발언들은 세계 모든 팀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포틀랜드 팬들은 프리차드의 발언을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10년이 넘도록 포틀랜드 프런트는 마치 팬들이 생각없는 양떼인 것처럼 운영했다: 팬들에게 티켓을 팔거나 속이려는 경우 외에는 정보에 대해 인색했다.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듯 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말해줄 때까지 알 필요가 없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믿으면 된다.' 곤혹스러운 움직임, 더 많은 정보 요구에 대한 간단한 구두 거절, 악행들에 대한 화자의 할머니조차 납득시키지 못할 화려한 변명, 모든 일들에 뒤이어서 더 많은 티켓이 팔리지 않게 되는 놀라움까지도 포틀랜드 팬들은 익숙해져 있었다. 프리차드가 그 바를 넘기 위해 아주 높이 뛸 필요는 없었다. 프리차드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첫 GM이었으며, 따분한 활자 매체에 발언들을 유보해두는 대신 인터넷과 팟캐스트를 통해 팬들에게 직접 이야기했다. 획기적인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프리차드는 팬들에게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팬들과 더불어 이야기한다는 생각을 전달했다. '나는 여러분만큼 골수팬이다'는 항상 먼저 나오는 연설사항이었다. 오랫동안 고통받은 포틀랜드 팬들은 황홀해했다. 마침내 누군가가 알아들었다. 마침내 뭔가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운이 포틀랜드를 향하고 있다는 어떤 증거가 팬층에게 더 필요했다면, 프리차드 임기 3주째에 그것이 나왔다. 포틀랜드가 3년 연속 로터리이긴 했으나, 성적에 상응하는 자리보다 항상 한단계나 두단계 밀리는듯 했다. 그것은 임의이며 횡재였으나, 그렇다해도 걱정스러웠다. 최근에 로터리에서 계속 죽을 쒔던 팀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였다. 그때문에 미네소타는 로터리 지옥에서 수년간 고생했다.
2007년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는 당연하게 6번째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도 괜찮았지만 1번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픽을 뽑는 행운의 팀은 자기 세대에서 미래의 센터인 그렉 오든을 뽑을 기회가 생기게 된다. 현재 NCAA 준우승팀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주축인 오든은 고등학교 이후로 합해서 약 6경기 정도를 결장했다. 오든은 믿을 수 없는 민첩성, 근육 위에 근육을 갖춘 정통 7풋의 짐승이었다... 공격에서 갈고닦을 필요가 있는걸 제외하면 빅맨에게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앞의 얘기는 무시해라. '덩크 덩크 덩크 덩크 덩크 덩크 덩크'에서 얼마나 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겠는가? 어쨌든 오든은 아마도 멤피스나 보스턴으로 갈 것이었다. 멤피스 팬들은 기도하며 모퉁이에서 기다렸다. 보스턴 팬들은 자신들의 전형적인 방식대로 왠지 오든은 태어날때부터 우리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2007년 5월 22일, 포틀랜드 팬들은 축제를 보기 위해 TV와 컴퓨터 주위에 모여있었다. 새 필자 하에서 1년을 보낸 Blazersedge도 정통 매체로서 생존 가능성의 시험대에 막 오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이곳에 함께 모여 오늘날까지 사이드바에 기념해두고 있는 오픈 쓰레드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분이 스크롤을 내려서 코멘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안절부절 못했다. 잭팟 기회는 5%로 크지 않지만, 엄청난 잭팟이었다! 13번부터 7번까지 플래카드가 하나하나씩 나왔다. 포틀랜드의 자리가 다음 차례였다. 다음 봉투에서 포틀랜드의 로고가 뜨지 않는다면, 최종 3위 안에 들어간다는걸 뜻했다. 하지만 그건 결코 일어나지 않을... 오 성자와 천사들이여 밀워키다! 포틀랜드를 건너뛰었다! 블레이저스가 TOP3다!
밀워키 뒤에 멤피스와 보스턴이 나타났을 때는 속이 뒤틀렸다. 그들 모두는 일이 꼬였다... 대개 포틀랜드의 역할이었다. 그리고는 광고가 나왔다. 고문이다! 이제 돌아왔다. 3번픽은... 애틀랜타! 블레이저스가 top2다! 그럴 수 있을리가 없... 시애틀! 시애틀이 2번픽이다! 블레이저스가 로터리에서 이겼다! 포틀랜드가 오든을 잡는다! 포틀랜드가 오든을 잡는다!
얼마나 많은 대문자를 쓰든 간에 여기서 내가 그 감정을 재현할 방법은 없다. 여러분은 그냥 그 쓰레드를 읽어봐야 할 것이다. 여지껏 가장 순수하고 기쁘며 전적으로 자발적인 해방의 순간 중에 하나였다. 10초만에 4개의 핑퐁볼은 수십년간의 헛수고와 분노와 언짢은 감정들을 지워버렸다. 이제는 농구의 신조차도 포틀랜드에게 미소짓고 있었다. 더 확실한 조짐이 있을 수 있을까?
갑자기 드래프팅과 드래프트픽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담긴 케빈 프리차드의 책들은 눈앞에 보이고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연구를 요하지는 않았다, 알지 않는가. 이번 해에 모든 이의 드래프트 보드 꼭대기에 오른 두 이름은 오든과 케빈 듀란트라는 텍사스 대학 출신의 급부상하는 스타였다. 듀란트는 홀쭉했고, 숙련되었으며, 천사와 같이 우아했다. 오든은 완력을 갖춘 탱크였다. 포틀랜드는 워크아웃에 둘다 초청했다. 듀란트는 올스타이자 아마도 득점왕이 되겠지만 오든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상품이며 NBA 우승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센터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무도회의 여왕이 구혼자를 고르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강조하기 위해 광고판 켐페인을 벌여야 할 정도로 얌전하게 플레이했다. 팬들은 한번은 오든, 두번은 듀란트를 위해 경적을 울릴 것을 권유받았다. 사실 선택은 거의 정해졌다. 1984년의 사례가 있긴 했지만, 포틀랜드는 더 작은 포지션에서 강했고 수많은 득점 포텐셜들이 있었다. 포틀랜드는 센터가 부족했다. 포스트에 있고 리바운드하고 덩크 머신으로, 로이의 돌파와 알드리지의 매끄러운 페이스업 게임이 음이라면 양을 제공하는 그런 센터 말이다. 오든은 수년간 주목받아왔다. 오든은 자신의 성공을 입증해왔다. 또다른 20득점 선수는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렉 오든 같은 선수를 얻을 또다른 기회는 정확히 그 시즌에 다시 로터리를 이기는것 외에는 결코 갖지 못할 터였다. 신인상 수상자가 뒤에 버티고 있고 전체 1번 지명이 있으니, 포틀랜드는 적어도 족히 15년은 로터리를 볼 계획을 하고 있지 않았다.
2007년 6월 28일, 데이비드 스턴은 연단에 올라 그 운명적인 이야기를 말했다. "2007년 드래프트 1번픽으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오하이오 주립대의 그렉 오든을 지명한다."
남쪽 교외 어딘가에서 벤 골리버(역주: Blazer's Edge의 필진)는 두번 경적을 울렸다. 그 소리는 전반적인 환호 속에 묻혔다.
그렇지만 포틀랜드 역사상 가장 바쁜 GM에게 오든 픽은 드래프트날 사업의 유일한 조각이 아니었다. 프리차드의 다음 움직임은 '약간의 놀람, 큰 안도'로 분류될 수 있었다. 포틀랜드는 문제가 많은 F 잭 랜돌프를 댄 디카우, 프레드 존스와 함께 뉴욕 닉스로 보내고 F-C 채닝 프라이와 G 스티브 프랜시스를 데려왔다. 포틀랜드는 결국 프랜시스를 바이아웃해서 그 교환을 Z-Bo를 제거하기 위한 3대1 트레이드로 만들게 된다. 이것은 알드리지에게 출발하기 위한 길을 열어줬다. Jailblazers 시대로부터 마지막 트러블메이커를 치워버린 것이기도 했다. 포틀랜드는 07-08 시즌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2007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의 마지막 중요한 움직임은 2년 연속 피닉스로부터 픽을 사서 다시 한번 스페인 선수를 얻는 것이었다. 이번 상품은 루디 페르난데즈로 누군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랜돌프의 평균 20득점을 잃은 것에 대한 잠시 동안의 논의가 이어졌지만, 오든 매니아 속에 곧 잊혀졌다. 파이오니어 광장에 수천명의 팬들이 오든을 환영하기 위해 나타났으며, 드렉슬러-포터 시대의 전성기 이후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포틀랜드 팬들은 다음년도뿐 아니라 모두가 궤도에 오를 3년 후의 라인업에 대해 드러내놓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오든, 로이, 알드리지와 마텔 웹스터, 트레비스 아웃로, 재럿 잭, 조엘 프리즈빌라, 프라이, 어쩌면 페르난데즈까지의 조연들 사이에서, 이 팀은 기술, 득점, 수비, 사이즈에 있어 믿을 수 없는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여러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이번에는 잘 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열차는 역을 한번 떠나기도 전에 탈선하게 된다.
포틀랜드 팬들은 머릿속에서 캔디와 미래의 트로피가 춤추는 상상을 하며 2007년 여름휴가를 떠났다. 팬들은 선수들이 다시모인 바로 그때 다시 모였고, 수년간 중에 가장 신나는 싸움이 될 것이 확실한 시즌 앞에 프리시즌 워크아웃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청천벽력이 쳤다. 그렉 오든이 픽업 게임에서 들것에 실려나왔다. 판정은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이었다. 오든은 시즌아웃되었다. 갑자기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적을 두번 울리고픈 충동을 느꼈다.
실망이든 아니든, 시즌은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오든을 두둔했고 "우리는 내년에 만나게 될거야"라고 말하면서 경기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올해는 랜돌프에 의지하지 않는 첫해가 될 것이었다. 어린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밝혀지듯이, 아주 잘했다. 로이는 평균 19득점 5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하면서 자신의 루키시즌이 전혀 플루크가 아님을 증명했다. 로이는 경기에서 가장 올어라운드한 선수 중 하나이자 농구 인사이더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으로 칭송을 받았다. 알드리지도 18득점 8리바운드로 강한 인상을 줬다. 그들 둘을 오든이 뒷받침한다는 상상은 아직은 포틀랜드 팬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두 스타 뒤에는 트레비스 아웃로가 3점슛과 4쿼터 득점에서 상당한 향상을 보였으며, 자신의 재능이 오랫동안 약속해왔던 스타가 되려고 하는듯 했다. 재럿 잭은 PG보다 SG 포지션 쪽으로 좀더 기울었는데, 로이가 2번에서 목을 조여오면서 자신의 이유에 약간 손상을 입었다. 스티브 블레이크는 정확한 3점과 그외에는 비켜서있는 좋은 센스를 보여줬고, 유능한 셋업맨 역할을 했다. 제임스 존스도 갑자기 외곽이 강해진 팀에 장거리슛을 더해줬다. 하지만 포틀랜드는 꾸준히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인사이드 펀치와 수비가 부족했다. 조엘 프리즈빌라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지만, 그의 블루칼라적 노력으로도 충분치는 않았다.
포틀랜드는 경기 템포를 늦추고 하프코트에서 자신들의 스타들에게 슛을 집중시킴으로서 경험미숙과 빅맨의 부족을 커버했다. 이는 효과적이지만 예측 가능했다. 포틀랜드는 시즌 초에 빛나는 13연승을 폭발시켰으나, 13연승을 하고도 18승 12패의 성적이었다... 괜찮았지만 결코 세상을 놀래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성공을 반복할 수는 없었고, 비슷한 정도로 이기고 져서 시즌을 41승 41패로 마감했다. 그해에 8번시드 덴버가 50승이었던 것은 서부가 얼마나 훌륭했었는지를 상기시켰다. 듀란트의 슈퍼소닉스는 20승에 그쳤으며,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07-08 시즌의 전체적인 인상은 희망적이었다. 총 승수는 2년 연속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9승이 늘었다. 포틀랜드의 스타들은 발전하고 있었다. 서포팅 캐스트는 하나나 둘 정도의 벼락스타가 나타날 가능성을 보여줬다. 느린 페이스 때문에 가끔은 보기가 괴로울지라도, 팀은 전적으로 호감이고 카리스마가 있으며 응원하기만 해도 좋았다. 2년전 30개팀 중에서 20위권에 머물던 관중수는 리그 3위로 껑충 뛰었다. 포틀랜드는 다시 들떴다. 그리고 꿈... "오든 없이도 이렇게 잘 한다면, 오든이 돌아왔을때 무슨일이 벌어질까?"라고 속삭이던 그 달콤하고 놀라운 꿈.
실제로는 어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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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든 선수 자체의 포텐으로보면 리그에서 탑일텐데. . . 유리몸이라서. . 건강히 시즌을 한번 치루는 모습을 보고 싶내요. 알드리지의 성장은 오든에게 많은 도움을 분명 줄텐데. . .
20경기 남짓 뛰었던 2번째 시즌(09-10)은 가능성을 보여줬고 그점에 희망을 품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그것도 시간이 꽤 지난터라... 모르겠네요.
오든의 포텐셜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다만 유리몸을 극복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4년째 부상인가요?? 참 아쉽네요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을 두번이나 받은지라 극복이 될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물론 여전히 24세의 젊은 나이이긴 합니다만..
애초에 기대치만큼은 아니어도 견실하게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는 있었는데 그마저도 불투명하니 안타까운 일이죠
데뷔때 이미 두 무릎이 다 망가졌던 유잉도 클래스를 유지했는데.. (두 무릎이 성했다면, 4대센터중에 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거 같은 ㅠ_ㅠ) 오든도 그 클래스를 보여줄 수 있겠죠.
망가졌다의 기준이 좀 다르죠... 유잉이 루키시즌부터 32경기, 다음시즌 19경기를 결장하긴 했지만 (3년차엔 전경기, 4번째 시즌엔 80경기 출장) 오든은 4년간 80몇경기 '출장'입니다. 데뷔 이후 세 시즌을 통째로 결장한 셈이고 유잉과 비교하면 같은 기간동안 결장경기가 네배가 넘죠. 첫 네 시즌동안 결장경기를 보면 빌 월튼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그의 행보를 예측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죠
와우~ 요즘 들어 조금씩 빨리 올라오는 것 같네요. 언제나처럼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아 오든..... ㅜㅜ 대형센터의 화려한 등장을 기대했는데....
드래프트 당시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기대를 받았죠..
포틀랜드가 오든을 뽑은 걸 지금와서는 실책이었느니 잘못된 선택이니 저기 듀란트 봐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시엔 정말 당연한 선택이라고 모두들 생각했죠
오든... 아직 이 형(?)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
습니다. 힘내시오 말 놓기 어려운 동생님.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