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아주 복잡한 감정이며, 한 가지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상실에 대한 반응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슬픔은 아주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슬픔의 감정은 사람에 따라 격렬하게 나타날 수도 있고 깊숙이 잠재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실 또는 상실의 가능성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등
주변 모든 이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심지어 애와농물조차 상처를 받습니다.
주위 모두가 상실감을 느낍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서로 멀어질 수도 있고 더 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여인은 남편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해서가 아니라, 투병 생활을 하던 남편과 이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어떻게 갈등이 시작되었는지 설명했고, 그것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남편이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밤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잠이 들었다가도 다시 깨어 그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어요.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의 소진된 상태였어요.
깨어 있는 상태로 누워서 이 사람이 숨을 멎는 날엔 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이대로 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신경 쇠약에 걸리게 되었고, 죄의식 속에서 이혼하고 말았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건강을 회복했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난 누군가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이 곁에 있으면
모든 이의 관심이 그 사람에게만 집중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모두들 그의 몸 상태가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에만 신경을 썼어요.
그때 나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이봐요, 난 어떡해야 하죠?' 하고 말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거죠. 난 환자가 아닌데, 죽어가는 사람은 바로 남편인데,
어떻게 내가 도와달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계속 입을 닫고만 지내다가 결국 무너져 버린 거죠."
살인이나 전염병, 돌발적인 재난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우리의 슬픔은 가중됩니다.
죽음이 가져온 상황보다 분노 때문에, 또는 사건의 갑작스러움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모든 슬픔의 감정은 복잡합니다. 그것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 바이러스가 번지던 1980년대 초,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스무 명 넘게 떠나보냈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의 감정이 상실의 감정치고는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분명 그들을 사랑했는데, 왜 별로 슬프지가 않지?' 그는 이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후에도 15년이 넘도록 그는 사랑하던 친구들의 죽음에 제대로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그는 두려움에 떨며 잠에서 깨어나, 미친 듯이 집 안을 뒤져 그때 죽은 스무 명의 사진을 찾았습니다.
한순간에 슬픔이 무서운 기세로 덮쳐 왔습니다. 슬픔은 그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준 것입니다.
우리는 각각 다른 시기에 각각의 방식으로 상실을 경험합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저마다 유예기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그 감정들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그 감정들은 어딘가에 안전하게 숨어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를 여읜 아이들이나 십대들에게 흔히 있는 일입니다.
어른이 되어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기 전까지 그들은 그렇게 큰 슬픔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슬픔은 종종 우리가 준비가 되어 그것을 꺼낼 때까지 유예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새로운 상실이 과거의 슬픔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또는 나중에 다른 상실을 경험할 때까지 현재의 상실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940년대에 흔했던 '전쟁 신부(전쟁터에 나간 군인과 결혼한 신부)' 중 한 사람이었던 모린은
당시 병무청으로부터 남편의 사망 통지서를 받고 망연자실했습니다.
학생 커플인 모린과 롤랜드는 일본이 진주만 폭격을 감행한 몇 주 뒤, 롤랜드가 입대하기 직전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들이 결혼하던 해에 롤랜드는 공군 후련을 마치고 해외에 파병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망 통지서가 날아온 것입니다. 21세에 과부가 된 모린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는
곧바로 다른 주로 이사해 직장을 구하고,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재혼을 했습니다.
그후 세 딸을 낳았고, 과거는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새 남편은 모린의 전남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세 딸이나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롤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그의 사진을 걸지도 않았고, 전의 시댁 식구들이나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중 어느 누구와도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50년이 지났고, 두번때 남편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사별한 두 남편을 향한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감정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거실에 두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걸어 두었습니다.
첫사랑과 두번째 남편의 사진을. 그러면서 마침내 자신이 겪은 상실감과 슬픔을 정리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하던 사람, 특히 뒤섞인 감정을 느낀 부모님을 잃었을 때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상실감을 헤쳐 나가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는 자신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게 아주 심하게 대했어요. 말 그대로 폭군이었죠 그런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왜 슬퍼해야 하죠?"
메리 셸리의 유명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기가 만든 인조인간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은 채,
비참하고 고통스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그 유명한 괴물을 만들어 냅니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살해되었을 때, 괴물은 울음을 터뜨립니다.
자신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준 사람이 죽었는데 왜 그렇게 슬피 우느냐는 물음에 괴물은 간단히 대답합니다.
"그는 내 아버지였으니까."
책임을 다해 우리를 돌봐 준 사람들의 죽음에 우리는 슬픔을 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야 할 사랑을 주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도 마찬가지로 슬퍼합니다.
나는 이런 경우를 수없이 봐왔습니다. 심하게 구타 당한 아이가 병원에서 엄마를 애타게 찾지만,
엄마는 아이를 때린 죄로 구치소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올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냉혹하게 대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슬프게 느껴진다면 슬퍼해야 합니다. 충분히 그 상실을 느끼고 슬퍼해야 하며,
그들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그들의 죽음이 무시되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실의 감정이 복잡하든 단순하든, 우리는 자신만의 시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치유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지금쯤 상처가 치유되었어야 해."라거나
"치유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슬픔의 방식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삶의 어느 한 지점에 묶여 있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한 우리는 치유될 것입니다.
상실의 슬픔을 이겨 내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재현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것을 치유해 냅니다. 상실로 상처받았다면, 상실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상실감을 잊으려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봅니다.
그러다 보면 누구의 도움없이도 홀로 설 수 있게 됩니다.
인생 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