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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공공복지 연구소 (公共福祉 硏究所) 황순형
 
 
 
카페 게시글
┃----쉬어가세요┃ 스크랩 바윗돌 - 정오차
빨간모자 추천 0 조회 263 08.06.06 23: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바 윗 돌  

 

                                                                                     정오차

 

                                               찬비 맞으며 눈물만 흘리고 하얀 눈 맞으며 아픔만 달래는 바윗돌

                                              세상 만사 야속타고 주저 앉아 있을소냐 어이타고 이내 청춘 세월속에 묻힐소냐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한맺힌 내청춘 부서지고 부서져도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저하늘 끝에서 이세상 웃어보자  하 하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저하늘 끝에서 만세상 웃어보자
                                              아 아 바윗돌

 

 

  

 

 

                                              안개낀 아침에는 고독을 삼키고 바람부는 날에도 설운맘 달래는 바윗돌

                                              세상만사 야속타고 주저앉아 있을소냐 어이타고 이내청춘 세월속에 묻힐소냐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한맺힌 내청춘 부서지고 부서져도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저하늘 끝에서 이세상 웃어보자 하하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저하늘 끝에서 이세상 웃어보자
                                             아~~아 ~~~바윗돌
 


 

 
 

 

 5·18 이듬해인 1981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곡이었던 정오차(50)의 ‘바윗돌’은 곧바로 방송 금지곡으로 묶였다.
한 인터뷰에서 “5·18 때 죽어간 친구들을 추모하며 만든 곡”이라는 사실을 밝힌 게 발단이었다.
광주일고 졸업후 한양대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정 씨는 1980년 꽃같은 목숨을 잃었던 ‘친구들’을 노래로 위로했었다.
‘5월 광주’를 기억케 하는 노래들이 있다.
그 노래를 만들고 부른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대학가요제 출전을 준비하던 정 씨는 어떤 노래를 만들까 고민하다 ‘광주의 아픔’을 떠올렸다.
친구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죽어갔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광주’는 잊혀져 가는 것같았기 때문이다.
“무섭고 암울한 시기였기에 희생자 묘는 방치돼 있었어요.
사람 손을 타지 못해 황폐해진 묘와 비석을 ‘바윗돌’로 형상화했고, 바윗돌이 굴러 굴러 다시 한번 민주화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가사를 썼죠.” ‘세상만사 야속타고 주저앉아 있을 쏘냐, 굴러 굴러 굴러라 굴러라 바윗돌’이라는 가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바윗돌’이 금지곡으로 묶이면서 방송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정 씨는 방황하기도 했지만 전공을 살려 은행원이 됐다.
직장 행사 등에서 노래를 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대학가요제 출신들과 ‘7080 대학가요제 입상자 모임’을 결성, 꾸준히 무대에 올랐던 정 씨는 2005년 암 진단을 받고 위 70%를 잘라내야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지난 연말부터는 공연팀에 합류해 다시 무대에 서고 있고, 6월에는 불우이웃돕기 공연도 갖는다.
현재 KB국민은행 디지털밸리지점에 근무하고 있는 정 씨는 음악의 꿈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팬들이 ‘정오차 팬클럽’(cafe.daum.ner/joc2000)을 만들어 그를 지원해주는 것도 든든한 힘이다.

                                                     
                                                                                                                   광주일보(2008.5.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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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차'라는 한양대 학생이 대학가요제에서 <바윗돌>이라는 노래로 상을 받던 장면과 그의 마지막 TV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81년도에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정오차는 일주일인가 한달 후에 한 TV 쇼 프로그램에 나왔다가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당시 TV 쇼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 
<바윗돌>이라는 노래가 뭘 의미하는 건가요?
 
[정오차]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노래입니다.
그 친구의 묘비를 보다가 이 노래를 만들었어요.
<바윗돌>은 그 친구 묘비를 의미합니다.
 
[아나운서]
아.. 그렇군요. 주저리 주저리.. 그럼 노래를 들어보죠.
 
그 살벌한 81년에 망월동에 묻힌 광주항쟁의 전사를 기리는 노래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아버렸던 것이다.
인터뷰 다음날 그 노래는 금지곡이 되었고, 금지곡 사유는 '불온사상 내포'였다.
 
대학가요제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금지곡.
 
70년대말 대학의 저항 문화에 맞서 내놓았던 정권의 특별 상품이 그렇게 이용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아마도 뭣 모르고 그 노래에 대상을 수여한 심사위원이란 사람들도 어딘가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지나 않았을까 싶다.
 
출처:http://blog.jinbo.net/neosc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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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이 노래는 광주 출신의 정오차가 광주항쟁에서 숨진 그의 친구를 기리기 위해 만든 노래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금지곡이 되었다.
'구르는 바윗돌'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죽은 친구의 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힘찬 의지?

이 <바윗돌>을 통해 정오차는 5공 초기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장기적인 낙관을 가지고, 조심스럽지만 힘찬 투쟁의 의지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이와 비슷한 정서를 담고 있는 노래가 있다. <불씨>다.
 
< 불씨 >

그 누가 나를 / 사랑한다고 해도 이젠 사랑의 불꽃 / 태울 수 없네
슬픈 내 사랑 / 바람에 흩날리더니 뜨거운 눈물 속으로 / 사라져버렸네
텅빈 내 가슴에 / 재만 남았네 불씨야 불씨야 / 다시 피어라.

(한돌 작사·작곡 / 신형원 노래 / 1982)
 
<불씨>는 5공 초기 젊은이들의 좌절감과 패배감을 노래하고 있다.
'불씨'는 야망과 정열과  투쟁과 항쟁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불꽃은 타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자기변명, 자기 정당화에 불과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두고 보자는  최소한의 자존심, 바로 불씨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끝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불꽃은 꺼져버렸지만 또 타오를 수 있는 불씨만큼은 가슴 속에 살아있기에 '절대적인 힘'에 부딪쳐 물러나도 권토중래를 기약한다는 자기 위안의 의미는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에 대학가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불씨>는 혁명을 연상시킨다하여 금지곡이 되었다.
 
                                                                                        출처:노래와 소리로 보는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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