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다. ‘무엇인가를 짐작하다’라고 할 때다. 이 말이 원래 술을 따르는 행위라는 점은 제법 잘 알려져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앞의 글자는 ‘짐작할 짐’이라는 대표 새김을 해놓고, 그 밑의 설명에 ‘술 따르다’의 의미를 덧붙였다. 뒤의 글자는 ‘술 부을 작’ ‘잔질할 작’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구분하는 뜻이 있다. 둘 다 원래는 술을 상대에게 따르는 행위다. 그러나 斟은 상대의 술잔에 술을 채우지 않는, 조금 부족하게 따르는 행위다. 그에 비해 뒤의 酌은 술을 넘치게 따르는 일이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다 안다. 모자라도 어딘가 섭섭하고, 가득 채우자니 어딘가 결례라는 점을.
따라서 남에게 술을 잔에 따라주는 요체는 ‘斟酌’의 딱 중간이다. 모자라지도 않게, 또 넘치지도 않게 말이다. 그래서 이 ‘斟酌’이라는 단어는 여러 갈래의 뜻을 얻는다. 우선 술을 남에게 따라주는 일, 나아가 상대를 고려하는 일, 사안의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중(輕重)을 따지는 일, 상대 또는 현상의 상황을 체크하는 일 등이다.
따라서 전체의 뜻은 헤아림, 살핌, 생각함 등이다. 모두 신중을 요하는 일이다. 섣불리 일을 서둘러 그르치거나, 완고하게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워 상황을 망치는 일을 경계하는 단어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의 전모 또는 속내를 미리 헤아릴 때 이 말을 자주 쓴다.
수작(酬酌)이라는 말도 있다. 앞의 글자 酬는 술을 권하는 행동, 뒤의 酌은 술을 마시는 일을 가리킨다. 따라서 酬酌은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 일이다. 나아가 상대를 헤아리며 교제하는 일, 더 나아가 아예 나쁜 뜻으로 “무슨 수작을 부리냐?”할 때의 그런 나쁜 행동이나 꾀 등을 일컫기도 한다.
‘짐작’이나 ‘수작’이나 원래의 뜻은 헤아림이 큰 취지다. 헤아려 상황을 살피며, 때로는 상대의 사정까지 감안해 서로의 차이를 좁힌다는 뜻이다. 교섭(交涉), 그리고 타협(妥協), 아울러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의(相議)의 개념이 들어있다.
가까스로 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넘겼다. 이런 저런 과정이 복잡하게 얽혔다가 마침내 제 길로 들어섰으니 다행이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여의도 의정자들이 교섭과 타협에 그리 밝지 못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의정의 단상에서 내려와 쉬이 찾는 술자리에서 그들이 이런 ‘짐작’과 ‘수작’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다.
술 따를 때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그리고 상대를 충분히 헤아리면서…. 그래야 ‘또 무슨 수작이냐’는 국민의 핀잔 정도는 면할 수 있지 않겠나.
[한자 풀이]
斟(짐작할 짐, 짐작할 침): 짐작하다, 헤아리다. 술 따르다. 요리하다. 조리하다.
酌(술 부을 작, 잔질할 작): 술 따르다. 잔질하다. 잔에 술을 따르다. 술을 마시다.
酬(갚을 수, 갚을 주): 갚다, 보답하다. 잔을 돌리다. 술을 권하다. 응대하다.
[중국어&성어]
斟酌 zhēn zhuó: 헤아리다. 술을 마시다. 고려하다. 자세히 따져보다. 감상하다.
斟酌损益 zhēn zhuó sǔn yì: 앞뒤 사정을 잘 헤아리다. 손익을 따져 상황을 잘 관리한다.
应(應)酬 yìng chóu: 우리도 ‘응수하다’는 말을 쓴다. 이 글자다. 원래는 술자리에서의 대응이다.
특히 酬가 ‘술을 권하는 행동’이니 이에 대응(應)하는 것은 결국 남과 사귀는 교제(交際)를 의미한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 대응하는 일이라는 뜻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