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03](월) [동녘이야기]
[성소부부고 톺아보기] 038# / ✦권5 문부2 서(序)
손곡집(蓀谷集) 서(序)
https://youtu.be/4OzrNXYDk5Y
오늘은 손곡집(蓀谷集) 서(序)를 읽을 차례입니다. 손곡은 이달(李達)의 호로 자는 익지(益之)입니다. 손곡 말고도 서담(西潭), 동리(東里)라는 호를 쓰기도 했읍니다. 아버지 이수함(李秀咸)의 얼자1)로 태어나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었읍니다.
손곡 이달은 교산 허균의 둘째 형인 하곡 허봉과 가까이 지냈으며 허봉의 추천으로 동생인 난설헌과 교산의 스승으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후에 교산 허균은 스승인 이달의 시를 모아 손곡집을 펴냈고, 스승의 인물을 다룬 일대기로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도 펴냈읍니다. 이제, 교산 허균이 남긴 손곡집(蓀谷集) 서(序)를 읽습니다.
우리나라가 문운(文運)이 크게 빛나 시로써 이름난 학사 대부가 거의 수백 명이다. 모두 스스로 이르기를 ‘사람마다 영사(靈蛇)의 보물을 잡았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숲같이 무성하다.
간단히 헤아려 보면 세가지 길이 있다. 화평 담아하고 원적균칭(圓適均稱, 원만하고 딱 들어맞아 균형을 이루고)하여 혼연히 일가(一家)의 말을 이룬 사람은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을 들 수 있고, 낙봉(駱峰) 신광한(申光漢, 1484~1555)과 영가부자(永嘉父子)2)가 그 화려함을 떨쳤다.
그 다음은 창대(昌大) 망망(莽莽)하고 넓은 재주를 넉넉히 쌓아 한 시대의 대방가(大方家)가 된 사람으로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점필(佔畢) 김종직(金宗直, 1431~1492), 허백(虛白) 성현(成俔, 1439~1504)과 같은 무리가 웅대하였다. 그 다음은 높고 가파르며 생각이 치밀하여 아름답고도 험하기를 귀하게 여긴 사람으로 눌재(訥齋) 박상(朴祥, 1474~1530),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 1491~1570),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1515~1590),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 1532~1607) 같은 여러 거장들이 건장함을 자랑하여 아름다움이 갖춰졌다.
그러나 부드럽고도 두터워 소리는 바르고 격은 높아서 당나라 개원(開元)3)과 대력(大曆)4) 시대의 시에 궤도를 정한 시인은 세상에 적었으니 시를 아는 사람들이 한스럽다고 말하였다. 홍정(弘正)5) 연간에 망헌(忘軒) 이주(李胄, 1468~1504)가 비로소 당시(唐詩)를 배워 침착하고도 고왔으며 충암(冲菴) 김정(金淨, 1486~1520)이 이어서 일어나 당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과 전기(錢起)의 소리를 냈으니 이 두 분은 같은 반열로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아깝게도 오래 살지 못한 것을 한탄해야 하겠다.
융만(隆萬)6) 연간에 이르러는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 상공이 성당(盛唐)의 이백(李白)을 받들 줄 알아 읊은 시들이 자못 맑고도 높았으니 본보기로는 비록 부족하지만 고무되기에는 넉넉하였다. 뒤늦게 최경창(崔慶昌, 1539~1583)과 백광훈(白光勳, 1536~1582)을 얻어 드디어 청초한 시를 크게 펼쳤으니 이른바 과섭(夥涉)이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에게 길을 열어준 것7)과 같지 않은가.
이제, 한 반쯤을 읽었읍니다. 여기에서 마무리를 짓고, 다음에 마져 읽어야 될 듯싶네요. 여기서도 교산 허균의 박학다식한 면을 엿보게 됩니다. ‘손곡집(蓀谷集) 서(序)’인데 손곡 이달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그 주변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지요. 이제, 속곡 이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차례입니다. 다음 시간에 마져 읽도록 하겠읍니다.
이런 오늘도 그져 이렇게 일상을 펴 갈 수 있어 고마움뿐입니다. 정말, 고마워요.
1)적자(嫡子)는 양반 아버지와 정처(正妻)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며 서자(庶子)는 양반 아버지와 양인(良人) 신분의 첩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고 얼자(孽子)는 양반 아버지와 천인(賤人) 신분의 첩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입니다.
2)영가(永嘉)는 안동의 옛 이름으로 흔히 권씨를 가르킵니다. 권씨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이름난 시인은 양촌 권근(陽村 權近, 1352~1409)과 지재 권제(止齋 權踶, 1387~1445)이 있읍니다.
3)당나라 현종의 연호(713`741)로 이백과 두보가 활동한 성당 시대를 가르킵니다.
4)당나라 대종의 연호(766~779)로 두보가 두드러지게 활동하던 시대를 가르킵니다.
5)홍(弘)은 홍치(弘治)로 명나라 효종(孝宗)의 연호(1488~1505)이며 정(正)은 정덕(定德)으로 무종(武宗)의 연호(1506~1521)입니다.
6)융(隆)은 융경(隆慶)으로 명나라 목종(穆宗)의 연호(1567~1572)이며 만(萬)은 만력(萬曆)으로 신종(神宗)의 연호(1573~1620)입니다.
7)과섭(夥涉)은 진나라 이세(二世) 때에 초나라 장소 진승(陳勝)으로 과섭(夥涉)은 진승의 자입니다. 진승은 밭갈던 농부였는데 오광(吳廣)과 함께 군사를 일으킨 중국 최초의 농민봉기를 이끌었으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라는 구호를 내걸어 큰 호응을 얻게 되었지요. 결국, 초나라(장초국=張楚國)을 세워 진의 멸망을 이끌어 냈으며 이를 계기로 항우와 유방이 등장하게 되었고, 한나라가 세워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첫댓글 한 주를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교산 허균이 남긴 문집, 성소부부고를 읽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소부부고의 손곡집 서를 읽었읍니다.
손곡은 이달의 호입니다.
손곡 이달이 남긴 시를 모아 시집, 속곡집을 엮은 교산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글을 읽은 것입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교산 허균은 박학다식합니다.
그런 생각을 다시금 확인했던 시간이었읍니다.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