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영향
일제강점기의 두 배가 넘는 8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려는 사회 전반에 걸쳐 몽골의
영향을 받았고 그 흔적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지리적으로 고립된 제주도에서 몽골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게 제주도
말입니다. 우리 속담 중에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죠. 그만큼
제주도가 말을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는 뜻인데요, 이 유래가 몽골의 지배에서 나온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말이 필요했던 몽골은 제주도에도 200여 필 정도의 말을 데려와 키웠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초지가 없이 숲이 우거져 있어 말이 달리기가 불편했기 때문에, 한라산
고지 200미터부터 600미터 사이의 구간에 불을 질러 나무를 모두 태워버립니다.
그러고는 풀을 심어 넓은 초원 지대를 조성하죠. 이런 곳을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든 초지대라고
해서 2차 초지대라고 부릅니다. 한라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넓은 초원은 몽골 지배의 산물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한반도에는 이런 초지대가 많지 않은데, 말을 키우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제주도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좋은 말을 길러내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거듭납니다.
몽골 지배의 흔적은 우리나라 지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당시 고려가 몽골에 영향을 준
문화 중 하나가 매를 키우는 풍습이었어요. 매를 애완용으로 키웠던 고려의 유행이 몽골로 번져
나중에는 고려에서 매를 키워 몽골에 바치게 되는데요. 당시 매를 키웠던 곳을 '응방'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응방이 있었던 곳이 오늘날 서울의 응암동, 응봉동이에요. 응암의 한자를 풀면
'매 바윗골'이라는 뜻이거든요. 이처럼 지명이라는 건 한번 붙여지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역사를 알려주는 힌트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에도 몽골어가 있답니다. 일단 궁중 풍습과 관련된 용어들이 있습니다.
몽골 공주들이 우리나라로 시집오게 되면서 여러 가지 몽골의 언어도 따라 들어옵니다.
왕과 왕비에게 붙이는 '마마’, 여자 상전의 존칭이었던 '마누라' 임금의 음식인 '수라', 궁에서
시중을 드는 여종을 지칭하는 '무수리'등이 그 예입니다. 또 몽골어에서 '치'는 직업을 뜻하는
말인데요, '벼슬아치'나 '장사치'에서 접미사 격인 '치'는 '다루가치(몽골에서 파견한 관리)'
'조리치(청소부)' '화니치(거지)’ 등의 몽골어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앞서 몽골인들이 매를
좋아했었다고 말씀드렸죠? 매의 종류인 '보라매'나 '송골매'도 몽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의식주에 걸쳐 다방면에서 몽골의 유산을 찾을 수 있어요. 요즘에는 많지
않지만 예전엔 결혼할 때 여자가 족두리를 쓰고 볼에 연지 곤지를 찍었습니다. 이것이 몽골에서
들어온 풍습입니다. 불교 국가인 고려에서는 원래 육식을 즐기지 않았으나 유목민족인 몽골에
의해 속에 고기를 넣은 만두가 보급되었는가 하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인 소주 또한 몽골이
일본 정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들여온 것이랍니다.
- 설민석의 ‘한국사 특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