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대서양에서 작전을 펼치는 CV-59 포레스탈. 본격적인 슈퍼캐리어 시대를 개막한 기념비적 항공모함이다. <출처: navsource.org>
유럽과 미국에서 매년 두 차례 개최되는 SC(Supercomputing Conference)에서 선정한 연산속도 500위 이내의 컴퓨터를 슈퍼컴퓨터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슈퍼컴퓨터는 특정 모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연산 능력을 가진 컴퓨터를 의미한다. 만일 지금 사용하는 PC도 40년 전이었다면 충분히 슈퍼컴퓨터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슈퍼컴퓨터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당연히 바뀌게 된다.
그런데 가장 큰 항공모함을 슈퍼캐리어(Supercarrier)라고 정의하는 점은 컴퓨터와 일견 비슷하지만 제2차 대전 당시만 해도 당대 최대의 항공모함들을 특별히 슈퍼캐리어라고 칭하지는 않았다. 사실 슈퍼컴퓨터처럼 학술적으로 규정된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비공식적인 구분이지만 일반적으로 슈퍼캐리어는 제2차 대전 후 본격 등장한 만재배수량 70,000톤 이상의 초대형 항공모함을 의미한다.
비록 이러한 기준이 주관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이상을 슈퍼캐리어라고 보는데 전문가들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슈퍼캐리어라고 부르는 괴물을 보유하고 운용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2017년, 영국 해군의 신예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Queen Elizabeth)가 취역하면 이런 프레임이 바뀌게 되겠지만, 지금까지 슈퍼캐리어는 제2차 대전 후 등장한 미국의 정규 항공모함을 의미한다.
20세기 중반부터 전통의 해군 강국인 영국을 추월한 미국은 지금까지도 바다의 패권을 굳건히 거머쥐고 있다. 그 중 핵심은 그 어떤 이의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 항공모함 전력이다. 항공모함이 바다의 제왕 노릇을 하던 제2차 대전 당시에도 엄청난 전력을 구축하였지만 전후 선보인 슈퍼캐리어는 미국의 독주를 보다 확실하게 이끌었다. CV-59 포레스탈(Forrestal)은 해상 패권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상징한 역사적인 항공모함이다.
1985년 카리브 해 일대에서 작전을 펼치기 위해 출항하는 포레스탈. <출처: navsource.org>
미완으로 끝난 괴물들
1955년에 취역한 포레스탈은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최초로 실전에 배치된 슈퍼캐리어라고 할 수 있다. 70,000톤을 기준으로 이미 진수되었던 항공모함도 있었고, 도중에 취소되기는 했지만 건조에 착수하였던 선배 함도 있었기 때문이다. 배수량으로만 따진다면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건조가 중단되었던 야마토(大和) 급 전함의 3번 함 선체를 이용하여 전쟁 말기에 탄생한 구 일본 해군의 시나노(信濃)가 최초의 슈퍼캐리어라 할 만 하다.
1944년 11월 19일, 완공된 시나노는 만재배수량이 72,000톤으로, 1961년 등장한 최초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CVN-65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이전까지 가장 컸던 군함이었지만 시험 운항에 나선지 불과 열흘 만에 미 해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하였다. 그런데 설령 실전에 투입되었어도 개조된 선체를 이용하다 보니 함재기 운용 능력이 여타 항공모함의 절반에 불과하여 단지 덩치만 컸을 뿐이지 성능 상으로 슈퍼캐리어가 되기에는 태생적으로 어려웠다.
성능이 미흡하지만 크기만으로는 최초의 슈퍼캐리어라 할만한 시나노. 완공 열흘 만에 시험 운항 도중 격침되면서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건조에 착수한지 불과 5일 만인 1949년 4월 23일, 전격적으로 제작이 취소된 미 해군의 CVA-58 유나이티드 스테이츠(United States)는 시대를 잘 못 타고난 불운아다. 제2차 대전의 경험을 통해 항공모함의 효용성을 절감한 미 해군은 대규모 비행대의 운용이 가능한 최신 항공모함을 당국에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제작에 들어간 만재배수량 83,000톤에 길이 332m의 슈퍼캐리어가 바로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였다.
하지만 전쟁 중 제작된 엄청난 양의 기존 함정들도 퇴역, 폐기 혹은 공여했을 만큼 군비 감축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여서 여기저기서 신조함 건조를 반대하는 소리가 컸다. 특히 공군이 핵폭탄을 이용한 전략 폭격으로 가상 적국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군의 입지가 흔들렸다. 결국 이런 여러 상황 때문에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미완의 슈퍼캐리어로 기록되었다.
불발로 끝난 CVA-58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의 조감도. 현측 엘리베이터, 4기의 사출기 그리고 관제탑이 없는 혁신적인 구조였지만 기본적으로 제2차 대전 주력 항공모함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냉전이 이끈 탄생
하지만 새롭게 시작된 냉전은 그렇게 사라질 것 같았던 미 해군의 꿈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전략 기동 타격 전력으로써 항공모함의 역할을 다시 한 번 크게 각인시켰지만 그 사이에 바뀐 전쟁 환경으로 말미암아 기존 항공모함의 여러 문제점들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제트시대의 도래는 필연적으로 함재기가 커지도록 만들었고 당연히 항공모함의 크기도 커져야 했다. 아무리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항공모함이 많아도 결국 새로 건조하는 것 외에는 크기를 늘릴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한 슈퍼캐리어가 포레스탈을 시작으로 1952년부터 순차적으로 건조되었다. 이후 총 4척이 건조된 최신예 항공모함은 초도함의 이름을 따서 포레스탈 급으로 불린다.
이 함명은 제2차 대전 후 트루먼 정부의 해군력 감축 정책에 극렬히 반대하다가 국방장관에서 해임되었고, 기대를 모았던 신형 항공모함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의 전격적인 건조 취소에 실망하여 1949년 자살한 제임스 포레스탈(James Forrestal)을 기려서 명명되었다. 평소 그의 주장대로 오늘날도 미국은 해군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이용한 전략적 우위확보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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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도 항공모함 제작이 이루어지는 전통의 뉴포트뉴스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포레스탈. 건조가 시작된 직후인 1953년 사진이라 용골과 선측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출처: navsource.org> 2 해군력 강화 주장이 좌절되자 실의에 빠져 자살까지 한 초대 미 국방부 장관 제임스 포레스탈. 그의 이름을 따서 함명이 결정되었다. |
우여곡절
이렇게 최초의 슈퍼캐리어로 등극한 포레스탈은 최후의 제2차 대전 형 항공모함으로 당시까지 최대였던 미드웨이(Midway) 급 보다 만재배수량이 10,000톤이 더 나간 75,000톤에, 비행갑판이 325미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단지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여 설계부터 최신의 기술과 기법이 총 동원되었다. 기존 에섹스(Essex) 급이나 미드웨이 급은 전후 개장하여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개조함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점을 교훈 삼은 것이다.
포레스탈은 처음부터 경사갑판(Angled Deck), 현측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함재기의 신속 이함이 가능한 4기의 사출기 등을 장착하였다. 이후 세부적으로 많은 진화가 계속 이루어졌지만 미국 항공모함을 상징하는 이러한 크기와 구조는 2016년 취역 예정인 최신 항공모함 CVN-78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이후 등장한 슈퍼캐리어의 전형이 된 기념비적 선도함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많은 개량이 있었지만 경사 갑판처럼 포레스탈의 기본적 구조는 차세대 항공모함인 CVN-78 제럴드 포드까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는 의미와 같다. <출처: navsource.org>
포레스탈은 1993년까지 38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대서양, 태평양, 지중해를 오가며 총 21차례 일선 배치가 이루어졌고 수많은 실전에도 참여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남중국해에 배치 된 미국의 항공모함들이 고정적인 항공기지 역할을 한, 이른바 양키스테이션(Yankee Station)의 한 축을 담당하며 북베트남 폭격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후 1981년 리비아 시드라만 봉쇄나 1982년 미 해병대 베이루트 전개 등에 참여하였다.
최초의 슈퍼캐리어답게 포레스탈은 사연도 많았다. 1963년에 21차례에 걸쳐서 이착함 실험을 실시한 C-130 수송기는 현재까지 항공모함에서 뜨고 내린 최대 크기의 항공기로 기록되고 있다. 거대한 갑판 덕분에 이착함은 가능하지만 항공모함에서 이 정도 크기의 항공기를 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무리 슈퍼캐리어라 하더라도 운용할 수 있는 함재기의 크기는 결국 제한이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1967년 7월 29일, 베트남 해역에서 발생한 화재는 비극적이었지만 많은 교훈을 안겨준 사고였다. 함재기에 장착된 로켓이 오작동으로 발사되면서 폭발이 벌어졌는데, 초기 진화에 실패하며 이틀간 계속된 불길로 134명 사망, 161명 부상, 항공기 29기 전소, 30기 파손의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였다. 덕분에 Forrest Fire, Firestal, Zippo 등의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게 되었지만 이후 함재기 운용 방법, 함정 소방 방재 기술의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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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3년 실시 된 C-130의 이착함 실험. 현재까지 항공모함에 뜨고 내린 가장 거대한 비행체를 운용한 기록을 남겼지만 단지 실험으로 끝났다. 2 1967년 폭발사고로 발생한 화재 진압 장면. 이틀간 계속되었던 화재는 이후 항공모함, 함재기 운용 및 소방 기술의 변화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처음 가는 길을 개척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도 많았다. 좌현에 위치한 4번 엘리베이터의 위치가 함재기 이착함로 끝에 설치되어 실제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로, 갑판 구조를 대대적으로 변경한 후속 모델인 키티호크(Kittyhawk) 급에 가서야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처럼 오늘날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슈퍼캐리어는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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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현의 4번 엘리베이터 위치가 이착함로 끝에 위치하여 정작 사용할 수 없었고 이 문제는 후속 모델인 키티호크 급에 와서 개선이 되었다. 이처럼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출처: navsource.org> 2 단돈 1센트에 고철로 팔려 브라운스빌에서 해체 중인 포레스탈. 개척자의 허무한 마지막 모습이다. <출처: navsource.org> |
2015년 현재 미국의 항공모함을 제외하고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러시아의 쿠즈네초프 급(중국의 랴오닝 포함)인데, 배수량이 62,000톤 정도니 1950년대 만들어진 포레스탈이 무기사에 어떤 역사를 개척하였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1975년 현대 미국 항공모함의 표준이 되는 핵 추진 방식의 니미츠(Nimitz) 급이 취역하면서 어느덧 시대에 뒤떨어진 구형 항공모함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덩치가 커진 만큼 보다 많은 함재기를 탑재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지만 소모되는 것도 많아 작전 기간이 특별히 많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결국 4척의 포레스탈 급은 1993년 7월, 3번함인 CV-61 레인저(Ranger)를 시작으로 1998년까지 순차적으로 퇴역하였다. 포레스탈도 1993년 9월 퇴역하였고 잠시 훈련함으로 사용되다가 단돈 1센트에 팔려 2013년 고철로 해체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새로운 시대를 연 개척자의 허무한 종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레스탈 전투단의 항해 모습. 슈퍼캐리어와 다양한 호위 전력으로 이루어진 항공모함 전단은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많이 등장한다. <출처: navsource.org>
제원
배수량 81,101톤(만재) / 길이 325m / 폭 73m / 속력 33노트(시속 61㎞) / 승조원 5,540명 / 함재기 F-4, F-8, F-14, A-1, A-2, A-3, A-4, A-5, A-6, A-7, F/A-18, E-2, EA-6B, S-2, S-3, C-1, C-2 등 평균 70~100여기 탑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