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숫자 153에 담긴 선교 비밀
사도 4,1-12; 요한 21,1-14 /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2024.4.5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사기지은 네 가지를 종합적으로 발휘하시어 제자들의 고기잡이 일을 거들어 주셨는데, 놀랍게도 대박이 났습니다. 그분이 뜻하지 않게 풍어 기적을 일으켜 주신 뜻은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당신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면 풍성한 선교 성과를 얻도록 거들어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호수에서 어려서부터 물고기를 잡아 왔으므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갈릴래아 호수에서 밤새 허탕만 쳤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망연자실해 있는 그 제자들에게 마치 생전에 그러했듯이,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보라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복음사가 요한은 이 풍어 기적 사건을 보도하면서, 후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매우 중요한 숫자 표징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뜻하지 않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들은 모두 153마리였습니다. 밤새 허탕 친 같은 호수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그물을 내렸더니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큰 물고기들이 이렇게 많이 잡혔다는 교훈을 기록해 놓은 것인데, 이 숫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숫자 153은 각 자리 수를 각각 세제곱하여 더한 값이 도로 원숫자가 되는 신기한 숫자입니다. 또한 153이라는 숫자는 1부터 17까지 더하면 나오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17은 10과 7을 더한 숫자이고, 그 당시에 10은 이방인들이 사용하던 십진법의 마지막 숫자이며, 7은 유다인들이 사용하던 칠진법의 마지막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153이라는 숫자에는 각 숫자를 세제곱한 합이 도로 원 숫자가 되는 신기함과 어느 진법에서든 완전함을 갖춘 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 153은 제자들이 부활신앙으로 무장하여 전개할 사도직 활동으로 거두게 될 풍성한 선교 성과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 풍어기적으로 이미 여러 차례 발현체험을 겪기는 했지만, 막상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하던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려던 사도 양성의 마지막 코스, 즉 졸업시험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풍어기적으로 확신을 얻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두려움 없이 성전으로 나아갔으며, 그 문 옆에서 불구자를 만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 소문이 퍼져서 장정만도 그 수가 5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사도 4,4).
그런데 보편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이러한 선교 성과는 한민족의 역사 안에서 한국 초대교회를 이루었던 천주교인들의 삶에서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바 있었으니, 첫째 양상은 한민족의 구도전통에 따라 하느님을 흠숭하는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었고, 둘째 양상은 이 증거 행위를 국법 위반이라고 단죄하면서 신앙을 박해하는 악에 용감하게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양상인 진리 증거에 있어서 이벽과 그 동료 선비들은 오로지 말씀과 성사의 은총에 철저하게 의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벽은 1784년에 세례를 받은 후 문중박해로 치명을 하기 까지 청계천 수표교에서 시작한 교리 공부 모임을 김범우의 명례방 한의원으로 옮기면서 교리로 복음을 전하면서 세례를 주었는데, 1년 동안에 무려 한양 선비 1천여 명을 입교시켰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앙과 뜻을 이해하지 못한 문중의 박해로 그가 숨지자 동료 선비 20여 명이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는데, 10명을 추려서 이벽이 하던 선교 활동을 지속하기로 결의하고서 1790년까지 불과 4~5년만에 전국 각 지방 출신의 명망 있는 선비들은 물론 중인, 상민, 천민과 부녀자들을 다 합하여 무려 4천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벽이 한 해 동안 거둔 선교 성과를 그 동료 선비들이 4년여 동안에 이룩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790년에 북경 구베아 주교가 제사금지령과 함께, 사제 없이 세례를 주는 평신도 모임이 신생 교회를 이룰 경우에 이단적인 교회가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체시킨 후, 뒤이어 입국한 주문모 야고보 사제가 평신도 지도자들의 모임을 ‘명도회’(明道會)라 이름짓고 선교 활동을 비밀리에 수행하게 하니,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기까지 신자 수가, 조상제사금지령에 실망하여 떨어져 나간 양반 신자들을 빼고도, 십년 만에 만여 명까지 늘었습니다. 한 해에 천 명 꼴입니다. 이 시기에도 천진암 강학회 출신의 선비 신자들이 교리를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했음은 물론이고, 다만 세례 성사만 비밀리에 주문모 신부가 주었을 따름입니다. 아무튼 평신도 교리교사의 역할과 성직자 사제의 역할이 박해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었던 이 시기의 놀라운 선교적 성과를 보면, 오늘날 우리 교회가 과연 어떻게 선교를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교훈을 주는 역사적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양상인 저항에 있어서도 이 선교적 마법은 위력적이었습니다. 하느님 믿는 신앙을 죄악이라고 단죄하는 조선 왕실과 유림, 특히 노론 벽파 벼슬아치들의 간악하고 잔인한 박해에 대하여 천주교 신자들은 그가 아무리 무식한 천민이거나 유학을 배우지 못한 부녀자들이라 하더라도, 정약종이 순한글로 지은 ‘주교요지’ (主敎要旨)라는 교리책과 이벽이 더 간결하게 지어 놓은 ‘천주공경가’ 등을 거의 암송할 정도로 통달해 있었기 때문에 치명으로써 저항하였습니다. 이 저항의 기간이 백 년이고, 치명자의 수효가 관변기록상 2천여 명, 신자들의 구전상 2만여 명입니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지배층의 통치 이데올로기에 피지배층이 저항한 반란도 있었고(고려 망이 망소이의 날, 조선 홍경래의 난, 동학농민혁명 등), 외적이 침입했을 때는 민초들이 의병을 일으켜 대항한 저항도 있었지만(임진왜란), 무기 하나 없이 또 어느 누구에게도 폭언조차도 행사함이 없이 평화로운 믿음과 진리를 담은 교리로만 저항한 역사적 사례는 반만년 역사상 이때가 유일합니다. 그리고 이 저항은 마침내 신앙과 양심의 자유, 만민평등과 남녀동등의 진리가 만천하에 공표되고 해방 후에는 제헌헌법에까지 규정됨으로써 신앙의 승리로 귀결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보편 초대교회와 한국 초대교회 모두에서 일어난 현상을 보더라도, 뚜렷해진 역사적 교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바의 성공을 보증해 주십니다. 선교적 마법의 숫자 153이 상징하다시피, 나자렛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가 행하는 사도직은 비록 시작이 미미하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며 속도가 더딜할지라도 그 끝은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목표, 지속적인 노력, 성과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자세가 필요할 뿐입니다. 교회 사도직이 신기하고도 완전하게 하느님의 일로 거룩한 변화를 이룩하는 경위가 이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