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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시즌으로 들어가는 포틀랜드 팬들의 희망과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09년 봄에 포틀랜드는 오랜 공백을 깨고 플옵에 복귀했다. 최종 결과 - 휴스턴 로켓츠에게 혈투 끝에 패배 - 는 실망스러웠지만, 그것은 모두 과정의 일부였다. 브랜든 로이와 라마커스 알드리지는 당당한 스타로 떠올랐다. 포틀랜드의 서포팅 캐스트는 그날그날에 따라 불안정하기는 했지만 강하고 두터워보였다. 가장 중요한건 프랜차이즈 센터 그렉 오든이 루키시즌의 경험을 쌓았고, 이제 리그를 지배하기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머리 위의 공간은 아직 충분하고 포틀랜드의 성장곡선도 여전히 상승세였으므로, 엘리트 지위로의 도약은 거의 확실해보였다.
2009년 드래프트는 포틀랜드 경영진의 철학적 변화를 알렸다. 몇번의 연속적인 로터리픽과 2년간 드래프트날의 끝내주는 거래를 거친 이후, 이제 포틀랜드는 어엿한 팀이 그래야하듯 20번대 픽을 뽑고 2라운더들을 주물럭거리는 스스로에게 만족해 했다. 1라운드에서는 또다른 스페인 선수인 F 빅터 클레버를 뽑기 위해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포틀랜드는 F 단테 커닝햄과 제프 팬더그래프에 G 패티 밀스까지 3명의 2라운드 선수를 지명했고, 그 과정에서 세르지오 로드리게즈만을 잃었다.
포틀랜드는 드래프트날 포텐셜에 열광하는 대신, FA를 위해 큰 움직임을 아껴두었다.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필라델피아의 PG 안드레 밀러를 낚아챈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만 저니맨이었던 밀러는 곧바로 포틀랜드 라인업에 빠져있었던 경험을 주었다. 밀러는 10시즌의 경험이 있었다. 4명의 잠재적 동료 선발들의 경험이 다 합해서 8시즌이었다.[역주: 당시 로이 3, 알드리지 3, 바툼 1, 오든 1] 포틀랜드의 또다른 중요한 계약은 주완 하워드로 리그 15년차였다. 고대의 PF는 코트 위의 어시스턴트 코치이자, 프로다움과 영리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동안의 짧은 시간을 메울 목적으로 영입되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지만, 이 움직임은 포틀랜드의 시즌에 중요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밀러, 하워드와 계약한 것은 초기 단계의 코어를 높은 수준의 베테랑들로 받쳐주려는 포틀랜드의 새로운 노력을 더욱 잘 드러냈다.
이 모든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름 최대의 움직임은 포틀랜드의 새로운 슈퍼스타인 로이와 알드리지에 관한 것이었다. 둘다 연장계약이 가능했다. 어느 쪽이든 제한적 FA일지라도 다음해 여름 FA시장에 나서는걸 포틀랜드가 꺼려했기 때문에, 둘다 많은 돈을 받을 것으로 보였다. 포틀랜드 팬들은 길어지는 이야기의 우여곡절마다 고뇌했다. 팀에서는 세게 몰아붙이는듯 했고, 두 선수는 더 유리한 조건을 주장했다. 로이가 맥시멈 계약을 하고 알드리지도 그에 준한 계약을 하면서, 결국 모든게 잘 풀린 걸로 드러났다. 포틀랜드 팬들은 박수를 보내면서 다시 한번 농구로 관심을 돌렸으며, 앞으로 10년의 대부분은 이 콤비로부터 나올 양질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블레이저스 진영의 모든 시선은 2009년의 트레이닝 캠프에 레이저처럼 집중되었다. 밀러에다가 마텔 웹스터가 복귀하면서 이제 포틀랜드는 몇년만에 처음으로 정당한 포지션 경쟁을 맞이했다. 그 경쟁들은 논쟁을 몰고 왔다. 슬로우 스타터로 악명높은 밀러는 진지한 감독인 네이트 맥밀란의 눈밖에 났다. 시즌이 시작하면서 밀러가 오랜만에 처음으로 벤치에서 나온 반면, 스티브 블레이크는 선발 자리를 유지했다. 바툼이 어깨 연골파열로 무기한 아웃되면서, 마텔 웹스터 vs 니콜라스 바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불만족한 PG들이든 사라진 SF들이든 누가봐도 짐승처럼 보이고 있는 오든의 발전을 가릴 수는 없었다. 준비가 됐든 안됐든 굴러갈 시간이었다.
시즌 첫경기는 지난 포스트시즌에서 포틀랜드를 아주 거칠게 다뤘던 휴스턴 로켓츠와의 대결이었다. 포틀랜드가 11점차로 승리하면서 트레비스 아웃로는 23득점을 했다. 포틀랜드 팬들은 생각했다. "맙소사. 만약 아웃로도 미쳐준다면 이번 시즌은 마술이 될 수 있겠어" 오든의 성적은 뒤죽박죽이었으며, 26분간 2득점 7턴오버 5파울은 5블락 12리바운드와 대조를 이뤘다. 다음 2경기에서 빠르고 근육질인 덴버의 프론트라인이 오든을 나쁘게 보이도록 만들었고 이어서 휴스턴이 반격의 펀치를 한방 먹이자. 탄식이 뒤따랐다. 그러나 오든은 오클라호마시티 상대로 더블더블을 하며 폭발했고,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오든은 분명 리바운드 머신이었고 곧잘 블락을 추가했다. 공격리바운드 덩크가 오든 최고의 득점옵션이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포스트 게임이라도 상대의 주의를 끌고 가끔씩 더블팀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했다. 오든이 신을 낼때 팀은 더 잘 플레이했다. 다음 2주 동안 오든의 알찬 퍼포먼스는 포틀랜드의 6연승을 이끌었다. 경기에서 오든과 함께 하는 포틀랜드의 수비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만약 공격이 정체된다면, 그렇다, 로이와 알드리지(또는 아웃로와 웹스터)가 결국 몇개의 슛을 성공시킬 것이었다. 인생은 즐거웠다.
불행히도 아웃로가 11월 14일 샬럿 밥캣츠와의 경기 도중 왼쪽 발에 피로 골절을 호소하게 된다. 아웃로는 몇달간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누군가 궁금해할 경우를 대비하자면, 그것으로 포워드 2명이 쓰러졌다. 포틀랜드는 여전히 승리하고 있었으니, 누가 정말로 그런 종류의 것을 세고 있었겠는가? 그것이 뎁스가 쓰이는 용도다. 그렇지 않은가?
시즌에서 포틀랜드의 정점은 당연히 11월 24일 122-98로 시카고 불스를 물리친 경기였다. 오든은 24득점에 12리바운드 2블락을 했다. 포틀랜드의 성적은 11승 5패가 되었다. 거의 직후에 3연패를 당한 것은 PG 자리에 대한 더 많은 의문을 일으켰으며, 스티브 블레이크는 그 외에는 화려한 선발 라인업에서 유일하게 약한 고리로 취급받고 있었다. 이제 오든이 전력으로 공헌할 준비가 되었으니, 포틀랜드의 베스트 파이브를 선발로 내보낼 때가 되지 않았겠는가? 블레이크가 헤메는 동안, 밀러는 차례를 기다렸다.
포틀랜드의 세상이 무너지게 될 12월 5일 토요일에는 그것이 뜨거운 논란이었다. 포틀랜드가 한달간 3번째로 휴스턴과 만났을 때, 오든은 코트에서 뛰어올랐다가 왼쪽 무릎에 금이 갔으며, 2개의 스크류를 박아야 했고, 시즌 1/4까지 온 시점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다시 한번 그 빅맨(오든)은 끝났다. 다시 한번 포틀랜드는 비상사태에 놓였다.
조엘 프리즈빌라는 항상 그렇듯이 유능한 수비수이자 리바운더임을 입증했다. 겨우 9경기 후에 그마저도 시즌아웃 부상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제 포틀랜드는 중앙을 맡는데 있어 2라운드 출신들과 전에 유니폼을 입은 치어리더 역할을 하던 주완 하워드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 그룹의 공격적인 한계에다 밀러의 점프슛 거리의 제약이 더해지면서 포틀랜드의 중장거리 득점원들에게 더욱 부담이 가중됐다. 웹스터, 루디 페르난데즈, 베일리스는 갑자기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기회를 동반한 높은 수요가 자신들에게 생겼음을 깨달았다. 베일리스가 가장 많은 가능성과 발전을 보여줬다. 다른 선수들은 탁월함과 퇴보가 뒤섞였다. 점퍼에 너무 의존하면서 포틀랜드의 공격은 새로 승진한 밀러가 확고하게 장악했음에도 마구잡이가 되어갔다. 포틀랜드는 어느 정해진 경기에서도 105점 또는 85점을 득점할 수 있었다. 오든과 프리즈빌라의 공백으로 수비의 핵심이 사라졌다. 한때 포틀랜드는 꾸준히 상대팀들을 80점대로 묶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대팀이 90점대 중반 혹은 그 이상을 기록하는걸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포틀랜드는 상당한 크기의 부상으로 로이와 페르난데즈를 잃게 되었으며, 로이의 부상이 무릎인 것은... 특히 두려운 부분이었다. 그때쯤에 포틀랜드 팬들은 넌더리나는 놀라움에 손을 들어버리고 있었다. 바툼, 아웃로, 오든, 프리즈빌라, 로이, 페르난데즈... 09-10시즌 중반에 포틀랜드의 플레이를 보는건 마치 비틀즈 재결성 투어의 티켓을 샀는데 오노 요코와 ELO의 세명의 멤버가 무대에 선 것만 보게 되었더라 하는 것과 같았다.
오든이 부상당한 때부터 3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포틀랜드의 가장 긴 연속 승리 혹은 패배는 4연승이었고, 딱 한번만 달성했다. 그 외에는 1승2패 혹은 그 반대였다. 팀은 아무 진전이 없었다. 변혁이 필요했다. 그것은 블레이크와 아웃로를 클리퍼스로 보내고 C 마커스 캠비를 데려온 2월 중순의 트레이드라는 형태로 다가왔다. 캠비는 그때까지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클리퍼스는 이미 중앙에 크리스 케이먼이 있었고 캠비의 계약은 만기가 다가오는데다 재계약에는 막대할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웃로와 블레이크를 잃는 것은 그 시점에서 부수적인 일이었다.
2월 중순에는 니콜라스 바툼도 돌아왔다. 웹스터가 주로 슛과 standing을 주어왔던 팀에 바툼은 에너지를 주었다.
포틀랜드는 새로운 선발들이 온 이후 17승 6패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로스터에 있는 거의 모든 주요 선수들의 부상이 주된 이야기였던 시즌에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50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포틀랜드는 6번 시드로 포스트시즌에 돌입하여 54승 28패를 한 피닉스 선즈와 만나게 된다.
비교적 작은 성적차이에도 불구하고, 포틀랜드는 피닉스 시리즈에 들어가며 불리한 입장에 있었고, 그것은 피닉스가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포틀랜드의 빅3 중 둘이 - 오든과 로이 - 외출복 차림을 유지했고, 로이는 무릎 수술을 막 받은 터였다. 페르난데즈와 베일리스는 시즌 중에 최고의 순간이 있었다. 베일리스의 그것 중 몇몇은 특히 컸다. 그러나 이런 어린 콤비가 SG에서 로이의 포텐셜과 동급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감히 꺼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드레 밀러의 31득점을 바탕으로 포틀랜드가 피닉스에서 열린 1차전을 잡아내자 팬들은 미친듯이 기뻐했다. 베테랑(밀러)은 점수차를 좁히면서 에이스로 나섰고, 전년도에 휴스턴이 미숙한 포틀랜드를 1차전에서 괴롭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나약한 피닉스를 괴롭혔다. 베일리스가 18득점을 올리면서 밀러의 피지컬함에 상응했다.(베일리스가 로이의 적합한 대체자일지도 모른다!) 알드리지가 22득점을 했고, 바툼이 18득점을 더했다. 지금껏 포틀랜드가 언더독에게 졌던 거의 모든 시리즈가 이런 1차전 업셋이라는 모습으로 시작했음을 포틀랜드 열성팬들은 기억해냈다. 희망이 더 환하게 타올랐다.
2차전은 얘기가 달랐다. 피닉스는 밀러에게 집중했고, 큰 선수 - 특히 주름진 베테랑 그랜트 힐 - 를 붙이는 비교적 단순한 전략을 써서 밀러의 돌파를 차단하고 긴 팔로 패싱 옵션들을 방해했다. 오픈 점퍼만 남게 되자 밀러는 다시 인간으로 보였다. 베일리스 역시 1차전의 영웅적 활약을 되풀이하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포틀랜드가 작거나 가냘픈 SG들을 세워두고 있다는 사실을 피닉스가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피닉스가 119-90으로 포틀랜드를 지워버리고 시리즈를 동률로 만드는 동안, 제이슨 리차드슨이 29득점으로 미쳐줬고 그랜트 힐이 20득점을 더했다.
그럼에도 포틀랜드는 1승 1패로 홈에 돌아왔으며, 어떤 홈코트의 마법을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있었다. 밀러가 2경기 연속으로 흐지부지하고 리차드슨이 42득점으로 폭발한 3차전에서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어드밴티지는 다시 피닉스에게로 돌아갔다.
4차전에서 포틀랜드는 수술한지 8일만에 복귀한 브랜든 로이로 인해 감정적으로 고무되었다. 로이는 선발로 나오지 않았고 경기에서 야투 4-10만을 기록했다. 그러나 로이의 위협은 피닉스 수비수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에 충분했다. 알드리지가 31득점으로 이점을 누렸고, 시리즈는 다시 동률이 되었다. 로이가 리차드슨을 맞상대할 모든 종류의 run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알드리지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상대로 잘해줄 때 포틀랜드는 기회가 있었다. 포틀랜드 팬들은 기도했다.
놀랍게도 선즈의 빅맨들이 흐름을 바꾸면서 로이와 리차드슨 모두 피닉스에서 열린 5차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마커스 캠비의 파울 트러블과 포틀랜드의 빅맨 뎁스 부족은 상대편 센터들에게 무대를 만들어줬다. 전 포틀랜드 소속 채닝 프라이가 외곽슛으로 20득점을 올렸고, 자레드 더들리가 림에 약간 더 가까운 곳에서 19득점을 추가했다. 이들은 '나를 두렵게 하는' 목록에서 첫 두 이름이 아니었지만, 이 경기에서 이들의 득점 총합은 포틀랜드의 최다 득점자인 알드리지와 밀러의 그것을 넘어섰다. 그것은 베일리스가 내쉬, 리차드슨, 스타더마이어의 득점을 받아쳐야 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선즈가 107-88로 수월하게 승리하는 동안, 피닉스의 트리오는 놀랍게도 베일리스의 총 득점을 간신히 넘겼다. 이제 포틀랜드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격렬하게 하기 위해 홈에서의 6차전을 잡아야 했다.
브랜든 로이가 선발 라인업에 복귀한 것으로는 그 승리를 건지기에 충분치 않았다. 로이의 참여 - 절뚝거리고, 느리고, 외곽 중심인 - 가 사실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팀에 해를 끼친다는 얘기가 몇몇 쿼터에서 속삭여졌다. 포틀랜드의 선발 5명은 경기에서 겨우 14-48의 야투를 기록했을 뿐이었다. 웹스터와 페르난데즈의 커다란 퍼포먼스(각각 19득점과 16득점)로도 포틀랜드를 그 수렁에서 빼낼 수는 없었다. 소동이 가라앉았을때, 피닉스는 99-90으로 승리했고 시리즈를 가져갔다.
포틀랜드가 영리함에서 뒤졌는지, 재능에서 뒤졌는지, 혹은 건강에서만 뒤졌는지를 가려내기는 어려웠다. 아마도 답은 '각각에서 어느 정도'였을 것이다. 어쨌든 2연속 1라운드 탈락은 실망스러웠다.
슬픈 결말에도 불구하고, 2009-10 시즌은 무엇보다도 플루크 시즌으로 보였다. 놀랄만한 부상들이 시즌을 지배했으며, 플옵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제외한 리그 어떤 팀도 포틀랜드가 부상으로 날린 경기수의 합에 근접하지 못했다. 더구나 포틀랜드의 고통들은 전략적으로 배치되어 라인업의 심장부를 타격하는듯 했다. 누구도 예전에 이와 같은 것을 봤던걸 기억할 수 없었다. 논리적으로 그것은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뜻했다. 파괴의 넓은 길이 났음에도, 팀은 여전히 50승을 거두고 플옵의 한 자리를 확보해낼 수 있었다. 팀 성적과 많은 보조선수들의 양호한 성과는 희망의 불씨를 계속 타오르게 했다. 오든의 복귀, 로이의 복귀, 나머지 팀원들의 적당한 건강이 있다면, 이 팀의 미래는 여전히 눈부시도록 밝았다. 휴식이 언젠가 포틀랜드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만 된다면...
현재로서 가장 안전한 방책은 악몽의 시즌은 재워두고, 더 훌륭하고 부상이 없을 내일에 깨어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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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거의 끝을향해 달려가는군요. 09-10시즌 포틀랜드 부상병동은 나중에는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정도더군요. 오든-프리즈 연속 시즌아웃 콤보는 정말이지...
그런데 주완 하워드가 그렇게 잘해줄지는 몰랐습니다. 시즌후반에는 거의 밀러와 캠비가 팀을 이끌었던 기억이 나는데 리그에서 가장 젊고 유망하다고 평가받던 팀을 노장들이 주축이 되서 이끄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습니다.
나중에는 선수들이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었죠. 이제는 누군가가 빠지는게 이상하지 않다고...-_-
계속되는 빅맨들의 큰 부상으로 로이가 오버페이스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게 안그래도 불안했던 몸상태를 빠르게 악화시킨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주완옹은 전혀 기대도 안했는데 엄청난 가격대성능비를 보여주셨죠;; 어수선한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았고, 몇몇 좋은 기억들을 선사했습니다.
밀러-캠비도 초기에는 잡음이 있었지만 시즌 끝날 때쯤에는 완전히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요. 베테랑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시즌이었죠..
속수무책 흑사병이 퍼지듯 도저히 손을써볼 방법이 생각조차 안나는 시즌 09시즌이엇습니다.. 근데도 저정도 성적으로 마친거보면 용하다는 생각도 들기도햇구요.. 슬프다는 말로도 표현안되는 먹먹했던 기억이 나네요.. 심지어 전 포틀의 아무런 팬심도 없엇는데말이죠..
드라마로 치면 시즌1,2,3,4까지 찍었다고나 할까요.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죠...
마지막에는 기어이 50승을 찍는데 정말 그 시즌에 겪었던 모든 감정이 한데 뭉쳐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 들더군요.
잘 봤습니다. 님이 올려주신 시리즈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포틀랜드의 2000년대는 정말 드라마네요. 영광->추락->더 추락->부활->비상->삐끗->?? 그동안 관심깊게 보던 팀은 아니었는데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네요
전체적인 흐름상 06년에 바닥을 치고 이후는 대세상승기였는데 부상이라는 악재 때문에 별다른 성적을 못 냈네요.
지금은 좀 어중간한 위치인데 머지않아 어느 쪽으로든 결말이 나올듯 싶습니다. 뭔가 새로운 동력을 받아서 위로 치고 올라가던지 아니면 다시 리빌딩의 길을 택하던지 간에요..
아 이때... 포틀병원이라 했던거 같은데...ㅠ 그러나 그 부상들이 아직도 남아있으니...ㅠㅠ
09년 12월 이후 1년여간 무릎수술만 10번이 있었죠 -_-;;
이제는 무릎 얘기만 나와도 지긋지긋합니다 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