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르손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평생 큰 굴곡 없이 살았나보다’ 싶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얼룩져있다. 일용 노동자로 전전한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폭언을 일삼았다. 자식들과 먹고 살기 위해 어머니는 끊임없이 일했지만 집안은 너무 가난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라르손은 우여곡절을 거쳐 열여섯 살에 스톡홀름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졸업 후 유명 잡지에 캐리커처를 그렸고 신문사에서 그래픽 아티스트로 일했으며, 서른 즈음 파리 외곽에 있는 스칸디나비아 예술가들의 거주지 그레 쉬르 루앙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아내가 될 예술가 카린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과 함께 라르손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상처가 많았던 라르손에게 그림은 삶의 원동력이었다. 결혼하면서 카린 아버지에게서 스웨덴 외곽의 조그만 농가를 받았는데 부부는 이 공간을 목가적으로 가꾸었다. 이곳에서 무려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으니 자연 속에 파묻힌 농가가 얼마나 시끌벅적했을까? 이때부터 라르손은 유화를 버리고 투명한 수채화 기법을 사용했다. 아내와 여덟 명의 자녀가 있는 전원생활은 작품의 무궁무진한 주제가 되었다.
라르손의 아들 에스베욘을 주제로 한 작품 ‘숙제하는 에스베욘’을 보자. 숙제가 갑갑한 것은 어느 나라 어린이나 마찬가지인가보다. ‘아, 지겨워. 빨리 끝내고 나가 놀아야지’ 하는 생각뿐인 것 같다.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은 빨리 놀러 나오라고 유혹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의자를 뒤로 젖힌 모습을 보니 숙제가 어지간히 하기 싫은 모양이다. 에스베욘 옆 거울에는 숙제에 관심 없는 옆얼굴이 비쳐있고, 그 모습을 그리는 아버지, 칼 라르손의 모습도 보여 흥미롭다. 북유럽 특유의 실용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 생생한 색감은 이렇게 집을 꾸미고 싶은 욕구마저 생기게 한다.
실내에서 발길을 옮겨 밖으로 나가자 북유럽의 여름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족과 함께 하는 가재잡이’에서 보듯 스웨덴에서 8월은 가재 파티를 하는 시기다.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가재 껍질을 깨고 살을 파먹곤 한다. 갓 잡은 싱싱한 가재가 수북이 쌓여있는 탁자를 그림 하단에서 과감하게 자른 구조가 인상적이다. 아이들은 강가에서 가재를 잡느라 열심이고, 맑고 투명한 수채화는 북유럽의 신선한 공기를 전하는 것 같다. 숙제를 얼른 하고 나와서 이렇게 가재를 잡으며 놀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것 같다. 자연 구석구석이 신나는 놀이터다.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강가의 가재 잡이를 보며 자연 속에 묻힌 북유럽 여름 풍경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라르손이 보여준 목가적인 시골 풍경, 북유럽 특유 가구와 실내 장식, 주방용품, 예술 공예는 스웨덴에서 출발한 다국적 기업 ‘이케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작품 속에 묘사된 라르손의 집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의 집이 되어 관광객 발길이 끊이질 않는 명소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 또 다른 상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라르손은 이와 반대로 스스로 행복을 찾고 누렸다. 평화롭고 소박한 전원생활 속 가족의 일상을 그리며 깊은 상처를 치유했던 것이 아닐까? 오랜 상처일 수도 있고 따스한 기억일 수도 있는 가족. 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조금은 길어지는 8월, 요즘 우리 가정은 애정보다도 프로젝트 공동체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라르손의 작품 속에서 “황금·소금보다 소중한 게 지금”이란 말을 찡하게 느껴본다.
이지현 문화칼럼니스트
<그림 설명>
(위)칼 라르손 <숙제하는 에스베욘>,1912년, 종이에 과슈, 74×69cm, 개인 소장
(아래)칼 라르손 <가족과 ,함께 하는 가재잡기>, 1897년, 수채화, 33×49cm, 스톡홀름국립미술관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6-08-22 (월)